아이와 나의 관계를 위한 한 발 후퇴
요 며칠 깊은 잠에 들지 못했다.
10시쯤 아이를 재우고 살금살금 걸어 나와 낮 동안 어질러진 집을 정리하고 끝내지 못한 계획들을 살핀다.
나는 주부니까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내일을 잘 맞이하기 위해 준비를 하는 셈이다.
아이가 종일 어질러둔 집안을 쭉 둘러보곤 바쁘게 움직여본다. 늦은 시간이니 빗자루를 들고 바닥의 물건들과 먼지를 한 곳으로 모아 탈탈 털은 물건과 장난감을 제자리에 두고 먼지도 싹 훔쳐낸다. 그리곤 거실 한편에 요가매트를 깔아 둔다. 아침에 일어나 조금이라도 스트레칭을 하기 위한 장치를 만들어두는 것이다. 마무리가 되면 티브이를 켜 올림픽 채널을 틀어본다.
쇼트트랙, 컬링, 스피드스케이팅 등 내가 모르는 종목들까지 괜히 우리나라 선수가 출전하면 눈길이 간다.
결승전이라도 진출하는 날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잘 마시지도 못하는 맥주를 한 캔 홀짝 거리기도 했다. 시간은 밤 12시를 향하고 내일 새벽엔 또 어떻게 눈을 뜨나 걱정은 되지만 종일 아이를 챙기고 밥을 차리고 틈틈이 무언가를 시도한 나를 위로하고 응원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 위로가 쌓일수록 같이 쌓이는 게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피로. 당연한 일이었다.
눈 뜰 때마다 어제의 나 새끼야 뭐가 그렇게 즐거웠니. 한 치 앞을 못 보고 오늘의 나를 이렇게 괴롭게 하느냐고 툴툴대며 무겁게 내려앉는 눈꺼풀과 도대체가 일어날 생각이 없는 몸을 억지로 끌고 나와 물을 끓이면서 오늘은 꼭 일찍 잘 거야 라는 말을 내뱉는다. 스트레칭을 마치고 이제 책 읽어야지 하고 자리에 앉는 순간, 나와는 다르게 숙면을 취한 아들내미의 외침 소리가 들린다. "엄마! 아빠가 또 괴롭혀!" 잠에서 깬 남편이 내 빈자리에 누워 아들을 끌어안았으리라. 그 손길이 엄마가 아닌걸 눈치챈 아들도 잠에서 깨어났겠지. 왜 남편은 새벽마다 아이를 깨우는 걸까 부글부글 끓어오르지만 아빠에게 곁을 내주지 않는 아이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시간이 그때뿐이니 남편이 안타까우면서도 미운 이중적인 마음이 든다. 덩달아 아이도 밉다. 네 아빠라고~!
그렇게 거실로 튀어나온 아이는 자신의 요구를 들어줄 때까지 나에게 같은 말을 쏟아낸다.
"엄마 배고파요. 배고파 밥 주세요. 밥!" 밥을 한 그릇 담아내고 아이의 반찬을 정성스레 준비해서 내어주면
"이거 말고! 안 먹어!" 하고 가버린다. 한 30분 뒤쯤엔 또 쪼르르 와서 "배고파! 배고파!" 그럼 또 그 소리가 듣기 싫은 나는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 아들이 말한 소시지를 구워준다. 2-3개 정도 집어 먹더니 또다시 자리를 뜬다. 그리곤 또 "엄마 배고파요 내가 계란 프라이해서 먹을래요" 안된다고 설득도 해보고 달래도 보고 엄한 목소리를 내보기도 하지만 울고 짜증 내는 소리가 듣기 싫어 함께 주방으로 가서 손을 씻고 계란을 깬다.
어찌 보면 벌써 세 번의 식사를 먹은 아들은 자신이 만든 간장계란밥도 몇 숟갈 먹지 못하고 자리를 뜬다.
내 잘못이다. 징징대는 소리를 참아내지 못한 나는 내 무덤을 판 거나 다름이 없다.
그 와중에 깨끗했던 집은 다시 난장판이 되어있다. 이것저것 사진을 찍어 내려면 또다시 청소가 필요하다.
가끔 밖에 나가 뛰고 들어오면 아이도 피곤한지 티브이 화면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는데 집안에만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이도 나도 점점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아 안 되겠다. 오늘은 계획은 미뤄두고 낮잠을 푹 자야겠다.
안 자려는 아이를 위해 베란다에서 실컷 뛰어놀다 들어와 둘이 꼭 끌어안고 3-4시간 푹 자고 일어나야겠다.
나의 개인 시간도 물론 소중하지만 지금 그보다 소중한 내 아이와의 관계를 위해 잠시 나의 컨디션을 챙겨야겠다.
너에게 한 번 덜 화내고 두 번 더 웃어줄 수 있다면 다른 무엇이 중요하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