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하기보단 인정하고 나를 사랑하는 방법
남들은 모르는 나의 귀여운 순간들
이번 주 글쓰기 주제를 선정하게 되었다. 선정 후 반발을 많이 받았다. 남을 귀여워하는 건 쉽지만 자신을 귀여워한다는 건 낯선 개념이어서 그렇겠지? 주제를 바꿔보자는 말에는 또 별다른 반응이 없었던 것 보면 이 낯설으면서도 당황스런 주제를 멤버들이 꽤나 마음에 들어 하는 게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다.
예전부터 나는 워낙 덜렁거리는 성격이었던 탓에 크고 작은 실수가 잦았다. 장소나 시간을 착각하는 건 기본이고 현금이나 물건도 곧 잘 잃어버리곤 했다. 학교에선 과제 제출일자를 깜빡하고 회사에선 꼭 챙겨야 하는 업무도 깜빡했다. 한때는 그런 내가 밉고 싫었지만 지금은 살뜰히 챙겨줘야 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한다.
나를 대하는 마인드가 달라지게 된 계기를 되짚어 보자면 2020년 퇴사를 하고 난 뒤부터였다. 서른 살 2월 말 나는 퇴사를 했고 처음으로 가정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일을 한다는 핑계로 살림도 대충, 육아도 대충 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모두가 나를 워킹맘이라며 위로했고 그래도 된다는 면죄부를 주었으니까. 나 스스로도 나는 워킹맘이니까 아이도 남편도 이해해줘야 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퇴사를 하고 코로나로 재취업이 애매해지면서 내가 견고하게 다져 둔 워킹맘이라는 입지가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재택근무를 하는 남편, 가정보육을 해야 하는 아이, 온 가족이 24시간 한 달을 꼬박 붙어 있으면서 삼시 세 끼를 차려내야 했고 식구들이 만들어내는 빨래와 먼지 어질러진 집을 치우기 위해 나의 모든 시간을 쏟아야 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관두자 매달 들어오던 월급이 사라졌고 남편에게 생활비를 받아써야 했다. 나만을 위한 소비가 가족을 위한 소비로 바뀌면서 나의 자존감은 박살이 났다. 세상에, 커피 한 잔 마시는 일이 이렇게 눈치 보이는 일인가? 입고 나갈 옷을 사야 하는데 생활비가 부족하면 어쩌지? 하는 고민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돼버렸다.
어쨌든 우울해만 하고 있을 순 없으니 내 살길을 찾아야 했다. 불어난 식비를 줄이기 위해 식단표를 짰고 냉장고 파먹기를 시도했다. 넘치게 구매하던 식재료를 그날그날 먹을 만큼만 구입했다. 그래도 남는 식재료를 보면서 지금까지 얼마나 낭비하면서 산거야 라는 깨달음도 얻었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아이가 눈 뜨기 전 청소를 했다. 빗자루로 먼지를 쓸고 남아있는 설거지를 해치웠다. 장난감을 제자리에 두는 것만으로도 집안일이 반으로 줄어드는 느낌을 받는다. 빨래를 걷어 제자리에 두고 수건을 가지런히 접어두었다. 나의 여유시간이 늘어나니 남편과의 싸움이 반으로 줄었고 아이와 수월한 놀이가 가능했다. 같이 놀고 나선 스스로 장난감을 정리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럴 때마다 어깨가 으쓱해졌다. 뭐야, 나도 잘할 수 있잖아. 어쩌면 회사 일보다 살림이 내 체질인 듯! 이란 생각을 하고 있을 때면 자꾸만 웃음이 났다. 내심 속으로 이것 좀 했다고 으쓱하는 내 모습 좀 귀여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를 끝내고 사진을 찍는 내 모습 귀여워! 어린이집에 챙겨 보낼 준비물 미리 챙겨놓고 뿌듯해하는 나 너무 귀엽다. 필요 없는 물건 당근 마켓으로 판매한 나 귀여워. 아이 옷에 얼룩 지우고 어깨춤추는 나 너무 귀엽잖아! 라며 나 스스로의 덕질을 하기 시작했다. 나를 귀여워하기 시작하면서 박살 났던 자존감이 회복되고 있었다.
나는 귀여운 게 좋다. 아기자기한 물건도 좋아하지만 더 정확히는 귀여운 사람이 좋다. 학교 다닐 때도 애교가 넘치는 친구들에게 늘 맥을 못 추었다. 귀여운 친구가 내 이름을 부를 때면 귀찮은 듯 돌아보면서도 입꼬리가 늘 올라갔던 것 같다. 그런 내가 스스로를 귀여워하다 보니 몸이 좀 더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고 작은 것 하나라도 해내고 나서 나를 칭찬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예전엔 덤벙거리는 모습들이 너무 싫었다. 또 잊어버렸어? 진짜 구제불능이다.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한 건 스스로를 귀여워했기 때문이겠지. 요즘엔 ‘김지선이 김지선 했네.’라고 덧 붙이곤 다음부턴 잘 챙겨줄게!라고 다짐하고 챙겨야 할 일들은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잘 보이는 곳에 붙여 둔다. 나를 귀엽다고 생각하다 보니 더 챙겨주면 되는 친구라는 마음이 들어 작은 실수쯤은 쓴소리 없이 넘어갈 수 있다.
그렇게 시작하면 된다. 나에게만 완벽한 잣대를 들이밀며 실수 하나도 용납하지 못해 스스로를 미워하는 것보단 ‘그럴 수도 있지, 다음엔 꼼꼼하게 챙겨줄게.’ 라며 다독이고 아주 사소한 일을 하더라도 ‘그까짓 게 뭐라고!’라는 ‘말 대신 힘들었을 텐데 잘 해낸 거 기특해.’라고 어린아이를 돌보듯이 대해주는 것. 다섯 살 아들은 말 한마디를 해도 귀여운데 나에게만 왜 그리 가혹했을까. 나를 조금 더 사랑하게 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는 걸, 어쩌면 내가 꽤나 귀여운 존재라는 걸 인정하는 것부터 이지 않을까? 남들이 뭐라던 나는 귀여운 사람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