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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플콩 Mar 20. 2022

양말 사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

아이보리 색 바지를 입고 맨발로 거울을 보면 퍽이나 마음에 든다. 이 바지는 가을, 겨울용 바지니까 목이 긴 양말을 신어야 하는데 검정, 브라운, 오트밀 컬러, 그리고 당근 거래하면서 고맙다면 받은 캐릭터 양말까지 전부 4개뿐인 나는 뭘 신어도 꼭 마음에 들지가 않는다. 마음에 드는 바지가 양말만 신으면 농촌에 밭매러 온 패션으로 변신한다. 양말 때문에 나갈 때마다 스트레스라니. 그럴 땐 양말을 한켤례 사면되지만 나는 옷을 산지 3년이 지났음에도 괜찮은 양말을 찾지 못했다. 천 원, 비싸 봐야 만 원인 양말 하나 사는데 무슨 시간이 이렇게 드는 걸까. 신을 때마다 불쾌한 양말을 신으며 뭘 감수했던 걸까. 


오늘 떠오른 주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 양말이니 몇 자 적어보려 곰곰이 생각했다. 명색이 미니멀리스트니까 물건 개수 늘리기 싫어서라던가, 검색해서 물건을 사는 게 귀찮아. 는 표면적인 문제이고 나는 실패하는 게 두려웠던 것 같다. 양말 한 개를 사면서 배송비 2,500원을 내야 한다는 게 아까웠고, 도착한 양말의 재질이나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헤질 때까지 신어야 한다는 생각에 더 피곤해질 것 같았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양말이 뭐라고? 싶어 져 장목 양말을 검색해 1,400원 대의 적당한 가격의  흰색 장목 양말 3켤례를 결제했다. 드디어 질렀다.


도착한 양말은 부들부들했고 발에 여유 있게 맞았고 종아리의 절반까지 올라오는데 살짝 흘러내려 자연스러운 주름을 만들어 내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러니까 1500원과 5분 정도의 시간을 투자해 3년을 찾아 헤맨 양말을 구입했다는 것이다. 마음에 안 드는 점이라곤 종아리 절반까지 올라오는 양말 덕분에 다리가 두꺼워보인다는 정도? 그 부분은 긴 바지를 입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해결되었고 높이 올라오는 길이 덕분에 새어 들어오는 바람을 꼼꼼히 막아주는 점은 또 하나의 장점이 된다.


실패 그게 뭐라고. 실패하면 다시 하면 되지,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이면서도 나 스스로에게는 꽤나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고 있었나 보다. 고작 양말 하나 사는 일에도 이만큼의 스트레스를 받는 걸 보면.

홧김에 구입한 양말은 3년의 고민이 허무해질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실패하더라도 구매라는 결정을 했기에 괜찮은 양말을 만났다. 고민이 짧았다면 좋았겠지만 지금도 좋다. 나는 아마 3년의 시간 동안 내 안에서 좋은 양말의 기준을 열심히도 찾았기에 오늘의 결과를 만들어 낸 게 아닐까? 양말이 애매한데.라고 느낀 순간부터 내 고민은 시작되었고  양말을 구매하는 명확한 기준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모험하는 시간을 쌓았을 것이다.


딱히 취향이 없어요.라는 애매하고도 흐린 선 같은 대답을 하고 싶지 않다. 작은 거 하나하나가 나의 선택이기에 긴 시간을 들여 나만의 기준을 찾는다는 게 괴롭지만 결국엔 명확한 사람이고 싶다는 게 오늘 나의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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