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엔 언어의 경이로움인가
내가 눈치가 없는 편이다.
내가 눈치가 없다는 말은 어렸을 때 식구들, 이 후 결혼으로 이뤄진 식구들로부터도 자주 듣어왔고 현재도 듣는 말이다 그렇기에 어느덧 스스로 받아들여 난 그런가보다 하면서, 좀 겸연쩍은 상황이 되면 면죄부처럼 상대방에게 말하던 때도 있었다. 그런 상황속에서 물론 나의 눈치없음에 대한 인식이 자기 강화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던 중 오늘 아침에 설거지를 하다가 배려와 눈치의 차이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눈치가 없다는 핀잔은 자주 듣지만 배려가 부족하단 말은 그보단 덜 듣는다는 것이 떠올라서 일까? 어쨌든내가 남을 배려하려면 역지사지(易地思之)가 필요하고 그건 눈치가 있어야 하지 않나. 그러고 보면 눈치와 배려는 거의 동의어가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설거지를 멈출 수는 없으므로 계속 설거지를 하다가 불현듯 정말 불현듯 혹시 타인을 위하는 마음이나 행동이 나 중심이면 눈치이고 타인 중심이면 배려라고 그렇게 부르는 것은 아닐까하는 깨달음이 왔다.
그렇지만 곧 다시 행동을 어찌 무 자르듯 나 중심 타인중심 이렇게 확실하게 분류할 수 있겠나하는 뇌속에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배려나 눈치라는 행동이란 사고에서 비롯하는 것이고, 인간의 사고란 분류가 쉬운 것이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릇은 뽀드득 소리나게 행궜다.
생각 끝에 그렇다면 배려와 눈치는 사람마다 정의가 다르겠구나 하는 당연한 결론아닌 결론을 내렸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언어의 사회성이란 생각보다 확고한 것이 아닌데, 사람은 언어로 사랑도 하고, 자녀도 기르고, 생의 중요한 결정도 내린다. 인간이 언어로 이룬 문명과 학문, 사상등을 보면 인간의 언어가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런 생각들이 아마도 설거지와는 무관할 거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