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폐가
이 집은 강화군에 있는 한옥이다. 원래는 시골 폐가였다. 이 집이 이름을 갖게 된 때는 2024년 초였고, 원래는 이름이고 뭐고 쓰레기만 가득한 시골 폐가였다. 쓰레기는 대문앞부터 쌓여 있었고, 집안에도 여기저기 버려진 살림들이 뒹굴고 있었다. 옆엔 보리밥집이 영업을 하고 있었고, 그 집에서 보리밥을 먹으면서 그 폐가를 살 결심을 하게된다. 이 때가 2021년 7월이었다.
강화도 폐가를 보았을 때, 나는 강화도가 좀 추운 곳이라는 것을 알았다. 집이 한글 미음자를 기본으로 하고 대각선 부분이 각각 트여 있었는데 트인 곳은 다시 얼기설기 만든 문으로 봉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미음자 집 오른쪽 옆으로는 축사가 쓰러져 가고 있었다.
참고로 나는 강화에 아무런 연고가 없다. 친척도 없고, 친구도 없으며, 아이들 어릴 때 딱 한 번 놀러 갔고, 2019년부터 전업주부 생활을 끝내고 다시 사회에 나가기 전에 마을 공동체 지원사업으로 강화 답사를 두 번 진행한 일이 있는데 그것이 강화와 나의 인연의 전부이다. 물론 모두 관광지를 다녔지 시골 마을에 간 적은 없다.
여튼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이 집의 소유자에 내 이름을 올리게된다. 그 때 알았다. 은행들은 이런 시골땅을 담보로 대출을 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신한, 국민 이런 이름을 들어본 은행들은 아파트를 담보로 하는 대출을 사업 영역으로 하지, 시골 토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나는 신한은행이랑 꽤 오래 거래를 했지만 이 땅을 담보로 대출을 받지 못했다. 은행에 잘 아는 사람이 있으면 가능하다던데, 난 은행권에 그 정도로 친한 사람은 없었다. 당연하지, 전업주부로 15년 이상 생활을 했던 내가 무슨 은행에 빽이 있겠나. 결국 지역농협에서 인생 최초로 억대의 대출을 고금리로 받아 채무자로서의 의무과 지주로서의 권리가 결합된 새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2021년부터 2022년이 다 끝날 때까지 강화도 폐가는 그냥 폐가로 남아 있게된다. 대출이 있는 삶이라는 것은 조용하게 숨만 쉬어도 이자가 나가는 시간들을 의미한다. 하루하루 몇만원씩 이자가 필요하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은 계속 안정되게 숨을 쉴 수 있는 용감함과 쉽게 사라지지 않을 직장이다. 특히 후자가 더 중요한데 평범한 사람은 많은 돈은 아니지만 일정하게 직장만 있다면 숨은 심호흡과 명상으로 어찌저찌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직장이 사라진다면 그때는 숨만 쉬기 위해서도 도사가 될 필요가 있다.
지주인 내가 어떤 수익도 내지 못하고 강화도 집에 이자만 꼬박꼬박 내면서 2023년이 되었을 때, 사회적기업가양성과정이라는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사업에 응모한다. 그리고 나는 이때부터 도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