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은 낭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어
편안집처럼 감성적인 집은 세상엔 없을거야!
뒤에는 적당한 높이의 산이 배경이 되어주고, 마을 입구 긴 돌담에 쌓여 있는 강화 옛집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채 세련되게 리모델링된 시골집!
일단 나는 네이버에 우리 편안집을 등록했다. 이제 앞으로 네이버에서 예약을 받을 수 있다. 이때만 해도 나는 몰려드는 예약으로 내가 너무 힘이 들어 지역주민을 고용하고 하는 이런 망상에 빠져있었나보다.
그런데 이 집은 우리만 알고 있었던 거다.
강화도에는 한옥스테이가 생각보다 많았다. 나는 한옥체험업만 한옥숙소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이 업계를 전혀 모르는 나의 협소한 시각이었고, 한옥체험업 등록을 하지 않고, 그냥 한옥펜션이나 한옥스테이로 영업을 하는 곳이 많아서 30개도 넘는 한옥스테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스테이마다 리뷰가 작게는 몇십개 많게는 몇백개씩 달려 있었다.
당시엔 깨닫지 못했다. 우리 예약페이지의 상태를. 우리 예약페이지는 내가 찍은 한겨울 횡한 사진에, 리뷰는 하나도 없고, 사람들에게 예약을 하게 꼬시는 문구가 뭔지도 몰라서 "우리는 공간속에 담긴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이런 허망한 말을 적어 놓은 것이다.
네이버에 편안집을 등록하자마 하루에 마켓팅회사로부터 몇통의 전화를 받았는지 모른다. 어떨 때는 무슨 카페 운영자도 나에게 전화를 했다. 다들 우리집을 홍보해주겠다고 자기들에게 돈을 쓰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뭘 홍보해준다는 것인가?
내가 그리고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갖고 이 집을 리모델링한 것인지, 그들이 알까?
집이 리모델링되면서 우리들의 마음도 리모델링된 그 과정들이 많은데 그들이 알까?
돈이 부족해서 공사를 멈췄다가 돈이 생기면 다시 공사를 진행하고, 그러면서 수없이 많은 선택의 갈등과 그 속에서 싹이 튼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을 그들이 알까?
나는 시공간이 혼연일체라고 생각한다. 물론 과학적으로도 맞는 말이지만, 체험적으로도 그렇다. 공간이 사라진다는 것, 그건 그 공간과 엮여 있었던 시간들도 다 사라지는 것이다.
나는 기억한다. 내가 자랐던 동네를.
그 동네는 딱 우리집까지만 포장도로였고, 그 담부터 비포장도로였다. 그리고 우리집 길 옆으로는 깨밭이 있었다. 우리집 지난 비포장도로에서 나는 얼마나 뛰어놀았는지 모른다. 일곱발뛰기, 비석치기, 사방치기, 땅따먹기, 고무줄, 숨바꼭질, 다방구 등등 세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놀이들을 거기에서 했다. 내가 작아서 그 공간이 크게 느껴진 것이지 아마 그 공간은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동네 집앞 빈 터였으니.
한창 강남이 개발되고 있어서 어느날 내 키만큼 큰 관이 우리집 앞에 있었는데, 아마 수도관쯤 되었을 거 같다. 그 관안에 들어가서 소리지르면 울리는 것도 기억한다. 덤프트럭같은 커다란 차가 비포장도로 흙이 말랑걸링 때 지나가면 길에 바퀴자국이 생기는데 그 바퀴자국을 그대로 들어올리는 것이 얼마나 신이 났는지 모른다. 그게 뭐라고 그랬는지 어린시절은 다 커서 기억하면 그저 신기할 뿐이다.
내 어린시절을 보낸 공간을 대학다니던 어느날 다시 가본적이 있다. 왜 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다시 가보았다. 그런데 다 사라진 것이다. 그 공간은 상전벽해란 말 그대로 싹 변해서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 때의 그 아쉬움이란 눈물이 글썽일 정도였다.
나에게 전화하는 홍보회사들은 이런 거 몰라도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들이 해주는 홍보라는 것은 리뷰도 써주고, 방문 횟수도 늘려주는 이런저런 방법들을 동원해서 우리를 네이버 등의 검색에서 상위에 올려준다는 것이었다. 그럼 예약 가능성이 올라가고, 우리가 돈을 잘 벌 가능성도 올라가는 것이었다.
나는 아니 우리는 모두 돈을 벌고 싶었다. 숨만 쉬어도 숫자로 변하는 대출금을 갚아야 했고, 추억과 신념이 작동을 잘 하지 않는 현실에서 살아야 했다.
그렇지만 사실 우리는 편안집 운영방침도 정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집을 고치느라고 돈 모으는 것에만 집중했지 우리 각자가 이 집에 어떤 욕망을 투영하고 있는지 이야기해 본 적이 없다. 우리 내부를 조율하는 것이 먼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