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고생2:AI시대에 서점이 왠말??

망하려고 작정했냐?

by simple life

AI 시대에 서점이 왠말??

요즘 들어 내가 많이 듣는 말이다. 이 말은 양면적인 의미를 지니는데,

ai시대에 서점이 필요할까 하는 의문과

ai시대 서점이 필요하지만 누가 서점을 하겠느냐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텍스트를 요약하고, 지식을 생성하며, 개인화된 추천을 제공하는 시대에 검색도 안되고, 무겁고, 추임새도 없는 종이책의 수요는 회의적인 것이 당연하다.


자본이 넉넉하여 취미생활로 지적 유희를 위하여 혹은 기업의 브랜드빌딩을 위하여 서점을 여는 것이 아닌 이상, 서점은 수익성을 내기에는 신기(神技)가 필요한 그런 영역이다. 신의 영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나는 관심을 두면 안된다. 그런데 자꾸만 나는 ai가 정교해 질수록 서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예전에 세렌티피티라는 영화를 우연하게 본 적이 있다. 지금도 내가 좋아하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인데, 이 영화로 인하여 세렌티피티라는 단어도 알게 되었다. 세렌티피티는 뜻밖의 행운 또는 운명적인 만남이라는 뜻이다. 정말 이상한 단어다. 행운이라는 것은 정말 우연한 것이다. 그렇지만 운명이라는 것은 우연이 배제되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한 단어에 이 두 가지 모순된 내용이 같이 있다.


인공지능은 사용자의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좋아할 법한' 결과만 내 앞에 놓아둔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내 눈치(?)를 보며 이렇게 대답하고, 내가 삐져서 저렇게 말하면 또 저렇게 하는 것이 훨씬 좋다고 말해준다. 이렇게 내가 선호하는 내용만 반복 학습하면 나는 확증 편향적인 사고를 하게 되고, 나중에는 나와 다른 사고를 하는 사람을 모두 틀렸다고 단정지으며 나 스스로를 정보의 고립 상태에 가두게 될 것이다. 그 똑똑한 ai와 대화를 하면 할수록 나는 고집만 센 노땅이 될 가능성이 더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물리적인 공간인 서점은 세렌티피티가 있다. 특정 분야의 책을 찾으러 갔다가, 혹은 그냥 갔다가 내가 찾는 책을 찾지못해, 옆 책장에 놓인 전혀 다른 분야의 책에 시선이 닿고, 그 책을 빼서 책 표지를 보는 순간, 나는 선택과 사고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리고 이 상태는 클릭 한번으로 지워지는 것이 아니다.

정보에만 세렌티피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분위기가 맞는 서점이라면 우연하게 만난 어떤 사람과 한 두 마디 대화를 통하여 내 문제를 해결하거나 새로운 결정을 하게 되기도 한다.


온라인에서도 세렌티피티는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손에 닿고, 내 눈이 보고, 내 코에 맡고, 내 귀가 듣는 그 총합의 세렌티피티만큼일까?


한동안 나는 눈이 안좋아졌다는 핑계를 대며, 종이책을 좀 멀리하고 오디오북이나 유튜브 강의를 들으며 이것들이 책을 대신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사실 인간의 뇌에는 텍스트를 위한 곳이 없으므로 독서라는 눈으로 텍스트를 감별하는 행위를 하려면 뇌의 다른 부분을 빌려야만 한다. 그러니 책이란 쓰는 것도 어렵지만, 읽는 것도 고통이 수반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유튜브나 오디오북은 그렇지않다. 학교 다닐 때, 말하고, 쓰면서 외우라는 지침을 주는 선생님이 있었다. 나는 외운다는 것 자체를 못해서 끔찍하게 싫어 했지만, 뇌과학적으로는 그 선생님이 타당하다.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물리적 감각과 연동하여 정보를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프루스트가 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책의 주인공이 홍자에 적신 마들렌을 입에 넣는 순간 잊고 있던 기억들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되는 장면은 그 기억들이 모두 물리적 감각과 연동된 경험의 총합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이 먹어서 기억력이 흐릿해져일 수도 있지만 디지털 콘텐츠는 종이책처럼 기억에 남지를 않는다.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디지털 콘텐츠는 휘발성이 강해서 금방 잊혀진다. 당연하다 디지털 컨텐츠는 여러 감각과 얽혀서 기억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기억에 가장 감명깊었던 첫 번째 책은 중학교 1학년 때 읽은 칼세이건의 <코스모스>이다. 두 번째 책은 사마천의 <사기열전>인데 27살에 읽었다. 세 번째 책은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리처드 도킨스가 쓴 책인데 삼십대 초반에 읽었다. 낡아서 벌레가 두려워 지퍼백에 넣어 보관만하고 있는 이 책들을 나는 버릴 수가 없다. 누군가의 추천으로, 세렌티피티로, 취향으로 읽게 된 이 책들을 나의 존재와 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AI시대에 꼭 서점이라고 한다면,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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