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천감성러
내가 성북천이라는 하천을 처음으로 걸어 본 건 약 12년 전이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낙산 산꼭대기에 살았는데 근처에 낙산성곽이 있었다. 성곽길에서 앞쪽으로 가면 동대문, 뒤쪽으로 가면 한성대입구역과 혜화역 사이로 내려가게 되는데, 뒤쪽 길을 따라 한성대입구역 근처로 가면 성북천이 나온다.
성북천은 보자마자 친근한 느낌이 드는데, 아마도 '휴먼스케일(Human Scale)'을 단박에 느끼기 때문인 것 같다. 하천의 폭이 좁아 건너편과의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고, 양옆으로 늘어선 상가들은 위압적이지 않은 높이로 물길을 따라 흐른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풍경을 성북천 말고 어디에서 봤는지 기억에 없다. 대개의 하천은 거대한 제방이나 질주하는 도로에 가로막혀 그 앞의 돈으로 바른 아파트나 빌딩에서 감상하는 '상품'이 되어 버리는데, 성북천은 지하철역에서 나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내려갈 수 있고, 걷다가 올라오면 카페나 노포, 편의점과 주점으로 1분 이내에 걸어서 갈 수 있다.
나는 한강을 좋아하지만 자주 가지는 못한다. 한강에 가려면 반드시 8차선 도로와 삭막한 나들목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북천은 나같이 한강의 거리감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나 같은 사람들을 '성북천감성러'라고 부르고 싶다.
성북천감성러들의 레이어는 다양하다. 공연을 마치고 온 얼굴이 익지 않은 배우들과 작가들, 부모님으로부터 용돈을 받아 빠듯하게 생활하는 대학생들, 그리고 천변 주변의 주민들까지. 그래서 성북천 주변으로는 감각적이고 세련된 카페나 브런치 집부터 투박한 시장통까지,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들이 존재한다.
대한민국에서 대학을 가장 많이 품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짐작하는가? 바로 성북구다. 성북천 물길 따라 한성대, 성신여대, 고려대, 한예종 등이 줄줄이 포진해 있다. 성북천이야말로 젊은 사유와 고민이 흐르는 진정한 '대학천'인 것이다.
고개를 들면 낙산 성곽이 보이고, 달리는 차에 대한 부담 없이 들를 수 있는 가게들, 아담한 물길과 천변의 다양한 사람들. 누구든 성북천에 오면 이 친근함에 설득당할 것이다. 바로 나처럼 말이다.
따뜻한 봄날, 성북천을 따라 흐드러지게 핀 벚꽃 사이로 '사서고생(私書庫生)'이라는 알림을 보게 되면 망설이지 말고 들어오시라. 우린 같은 성북천감성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