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교하는 준이의 뒷모습을 본다. 매번 교문에서 까불거리며 뒤돌아가는 나를 불러세우던 준이는 오늘따라 말없이 쑤욱 들어간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말해주진 않았지만 얌전히 들어가는 준이의 뒷모습에 마음이 울렁인다. 학교, 선생님...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공교육 멈춤의 날.
준이의 학교는 재량휴업을 하진 않지만 오늘 하루 특별수업을 한다고 한다. 빈자리의 담임선생님이 눈에 띄지 않도록, 눈치 보지 않아도 되도록 외부 강사와 프로그램을 섭외해 학년별 활동을 계획하고 지난주에 공지를 받았다. 주변에 체험학습을 신청하며 안보내는 부모들이 있어 나도 동참해야할까 생각했다가 학교를 보냈다. 담임선생님이 계시던 그렇지 않던, 선생님의 선택을 존중하며, 준이는 어떤 환경이든 뭐라도 배워오겠지.
기존의 교장선생님의 퇴직일이 8월31일. 지난주 금요일에 새로운 교장선생님이 오셨다. 휴가나 병가를 낼 때 상사의 눈칫밥 없이 선생님들이 좀더 편안한 마음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었겠다 싶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퇴직하시는 교장선생님은 감사의 편지로 인사를 대신하셨다. 편지의 내용은 의례 그렇듯 그동안 감사했고, 덕분에 ... 그러나 편지는 무거웠다. 하고싶은 묵직한 말들이 문장 속에 숨어있는 것 같았다. 안타까움이 담겨있지만 단어와 단어 사이에 직접 적지 못하신 많은 말들.
준이의 반 카톡방은 조용하다. 오늘 하루 선생님이 어떤 선택을 하시던 누구하나 탓하거나 이렇다 저렇다 의견없이 각자의 방식으로 선생님을 이해한다.
준이의 담임선생님은 중년 즈음 경력이 꽤 있으신 선생님이다. 자칫 우당탕탕 할 수 있는 준이를 매우 잘 다루시며 마음을 어루만져주시는 선생님이다. 교실에서 갈등이 있을 때에도 아이들끼리 풀어갈 수 있도록 중재하시고, 잘잘못을 가려주시는 분이다. 준이도 선생님께 애착이 있고 나 또한 의지하고 있다. 지난 주말 무슨 대화였는지 준이는 “우리 선생님은 혼내기도 해” 라고 하는 말에 우리 부부는 “그래, 잘못했으면 선생님이 혼낼 수도 있지! 그래야 배우지!”라고 말해주었다. 요즘같은 시대에 게다가 학군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바르게 가르쳐주시는 선생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1학기를 마칠 무렵 놀이터에서 친구와 갈등이 있던 순간 한 엄마가 나에게 와서 그동안 준이와 있었던 일들을 말했고, 담임선생님 연락이 없으시던가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선생님은 친구와의 갈등상황에 대해서 연락을 주신적은 없었기에 그 자리에서 “들은 것이 없으나 죄송하다” 라며 사과를 하고, 별도로 선생님께 자초지종을 알아보기 위해 연락을 해보았다. 선생님은 중립적인 입장에서 준이와 그 친구의 상황을 설명해주셨고, 준이가 그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행동했던 상황이 아니었기에 문제될 것이 없어 연락을 안주셨다고 한다. “제가 그 엄마에게 다시 통화를 해서 사과해야 할까요?” 라고 물었을 때는 오히려 “이미 사과를 하셨으니 그럴 필요까진 없을것 같다. 통화를 하신다면 선생님이 별 문제가 아니어서 연락을 안하셨다고 하시던데요?”라고 말하라며 준이의 탓을 하지 않도록 말씀하셨다. 전화를 끊고 괜히 선생님이 중간에서 곤란해지실 수도 있겠다 싶어 그 엄마에게 아무 연락은 하지 않았고, 그 뒤로 문제 없이 그 친구랑도 잘 지내고 있다.
ADHD 자녀 둔 부모는 항상 노심초사 한다. 부모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 그 때는 전적으로 선생님을 믿을 수 밖에 없다. 일부러 가해하려 하지 않았더라도 벌어지는 정황상 을이 될 수 밖에 없다. 아직 그렇게 문제될 상황이 있진 않았지만 늘 불안한 우리에게 선생님은 협력자이고, 준이에게는 또 다른 부모이기도 하다.
오늘 하루 선생님이 자리를 비운다고 아이들의 인생이 달라지지 않는다. 사람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고, 선생님은 학생에게 어떤 존재이고, 학생은 선생님께 어떻게 해야 하는지 태도를 배우고, 무엇을 존중하고 배워야 하는지 아이들도 한걸음 자라는 시간이 될 것이다.
교실이 건강하길 바란다.
나 또한 건강한 생각을 가진 부모이길 애쓸것이다.
준이가 돌아오면 건강한 학교생활에 대해서 대화를 나눠봐야겠다.
한줄요약 : 우리 아이들의 첫 사회 생활, 학교가 건강하기를, 회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