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크루 . 슈퍼크루
우리는 같은 배를 타고가는 크루입니다.
CREW 크루
1. 승무원 (전원) (→aircrew, cabin crew, flight crew)
2. (배나 항공기에서 장교나 간부들을 제외한) 일반 승무원[선원/사병]
3. (특히 배의) 승무원[선원]을 하다
배 이름을 라라크루즈라고 붙여볼까요?
오늘 슈퍼크루는 나다. 이른아침 단톡방이 '땡~'하고 울렸다. 마음에 은근한 부담이 스멀스멀 들어온다. 며칠동안 글을 적지 못했는데 오늘은 집중해서 밀린 글을 적어봐야지. 또 결심을 한다. 수영장에 가기 전 맥북을 열어 몇 글자 끄적이다 덮었다. 머리가 복잡하니 다녀와서 쓰자. 열심히 물장구를 치고 돌아왔다. 다시 맥북을 열었다. 며칠 묵혀둔 '준이와 자전거' 이야기를 썼다. 그런데 이걸 슈퍼크루 글로 공유하고 싶진 않았다. 배가 고프다. 밥 먹고 다시 맥북을 열어야겠다.
밥 숟가락을 몇술 뜨지 못했는데 '지잉~ 지잉~' 발신자가 ㅇㅁ초등학교다. 뭐지?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는다. 준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우당탕탕 소리를 질렀나?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1-2초 동안 온갖 생각이 들어온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여기 ㅇㅁ초등학교 보건실인데요. 준이가 머리랑 목이 아프다고 와서 열을 재보니 37.6이네요. 10분 쯤 간격을 두고 다시 재도 안떨어져서 집에가서 쉬고 병원을 가는게 좋을 것 같아요."
아악... 순간 막막해지는 느낌.
"알겠습니다. 데리러 갈께요."
먹던 밥을 대충 덮어두고 옷을 챙겨입고 학교로 간다. 아침에 멀쩡히 학교에 잘 간 아이가 아프다고? 왜? 순간 나는 나쁜 엄마라는 생각을 한다. 애가 아프다는데 이유가 뭐든 챙겨야 하는거 아닌가...
보건실에 가니 힘이 없는 준이가 나를 반기며 책가방을 챙긴다.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집으로 왔다. 점심을 못먹었다고 하길래 집근처 본죽에 준이가 좋아하는 호박죽을 주문하고 찾으러 나왔다. 내 밥은 이미 식었다. 죽을 받아 슈퍼에 들러 아플때는 이온음료를 마시게 하면 좋다는 말이 생각나 토레타 큰병을 무겁게 들고 집에왔다. 준이는 다시 살아났다. 먹고 좀 쉬게 하려고 잠옷으로 갈아입히고 나왔는데 거실에서 그림을 끄적이며 놀고있다. 한자 선생님도 오시지 말라고 했는데 얼굴을 생글거리며 영상을 보고 싶다고 한다. 내가 당한건가...! 아니지, 크게 아프지 않으니 다행이라고 여겨야지. 생각을 다시 고쳐먹는다.
따뜻한 호박죽을 꺼내주고, 내 밥도 전자렌지에 다시 데운다. 카레를 부어놓았었는데 카레와 밥이 한몸이 되었다. 에휴... 먹는 둥 마는 둥 배를 채우고 한그릇 뚝딱 비운 준이의 그릇과 함께 설겆이를 한다. 잠이 온다. 점심을 먹고 느긋하게 앉아 글을 쓰고 싶었는데 이게 뭐람. 괜히 준이를 원망한다.
먹고나니 괜찮아진 준이에게 방과후 로봇 수업을 가라고 은근슬쩍 말해봤다. 해맑게 웃으며 "갈래!" '넌 대체 어디가 아팠던거니. 왜 집에 온거니'라고 묻고 싶었지만 참는다. 5분 뒤 수업 시작이라 옷을 부랴부랴 갈아입게 도와주고는 "뛰어!" 베란다에 나가 "차 조심해~!!" 학교로 갔다. 방과후 수업이 공개수업이라고 하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50분. 이제 글을 쓰자.
한동안 공연을 준비하고 현장을 뛰어다니느라 앉아있을 시간이 없었다. 아침까지 결과보고서를 마무리 하고 이제 일이 다 끝났으니 하루는 편안하게 쉬며 글도 쓰고 늘어져야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순식간에 분주하게 보낸 뒤 벌써 2시반이 되었다. 하루가 다 지났네, 조금 뒤 공개수업에 다녀오면 에너지는 더 바닥이 나겠지. 휴우... 밥을 이상하게 먹어서 그런지 속이 답답하다.
오늘 슈퍼크루는 나다. 라라크루에서도 슈퍼크루이지만, 오늘은 우리 집에서도 슈퍼크루가 된 기분이다. 틈없이 할일이 많은 슈퍼크루 말이다. 눕고싶다. 슈퍼크루가 된 날 뭔가 제대로된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순간순간 일상을 잘 살아내는 것 만 잘해도 다행이다. 나를 칭찬하고 싶다.
우리는 같은 배를 탔습니다. 라라크루즈에 승선하신 여러분과 오래오래 즐겁고 싶습니다. 글이 부족해도, 글이 뜸해도, 내릴 수 없는 크루즈 위에서 오래오래 즐겁게 글을 써보렵니다.
#라라크루
#라이트라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