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중 누군가가 아프면 의례 걱정이 앞서고 병원을 데려가고, 도움을 주고, 할 수 있는 간호를 하는 것이 일반이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 신랑이나 준이가 아프다고 하면 걱정보다는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앞설 때가 있다.
심지어 신랑에게는 '당신은 어른이니 스스로 알아서 병원에 가고 관리하기 바란다.' ' 나는 나중에 당신이 아프면 요양원에 보내고 나는 열심히 돈을 벌겠다.'는 말을 하곤한다. 그런 상황이 당장 닥치지 않아서 할 수 있는 교만한 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어느 순간 나는 왜 이런 마음이 들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나를 보며 신랑은 '너는 공감이라곤 1도 없는 차가운 사람. 기대하지도 않는다!'며 심술을 부린다.
어제 자전거를 타고 수영장을 가는 길, 자전거 기어를 가장 높게 설정해두고 허벅지에 힘을 쏟으며 심장이 터질듯이 달리고, 수영장에 도착해 숨이 턱에 찰 때까지 질주를 한다. 건강하고 싶은가, 건강해야 뭐든 할 수 있으니 체력을 키우려는 건가. 딱히 몸을 만들기 위해 시작한 것도 아닌데 왜이리 열정을 부리고 있나.
접영을 배운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선생님은 오! 오늘 컨디션이 너무 좋으신데요?! 오! 오늘 정말 잘하시네요! 자세가 잡혔어요!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갑시다. 오리발 준비하세요!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오던 길. 다시 자전거 패달을 밟다가, 내가 아픈 사람을 보면 외면하고 싶은, 그동안 신랑에게 준이에게 가졌던 마음의 이유를, 그리고 뭔가 열정을 부리고 '열심히'하는 이유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이유를 들여다 본다.
잠시 과거로 돌아가 보면. 은행 지점장이셨던 아빠 덕에 기사있는 집에서 매주말마다 여행을 다니고, 남부럽지 않은 청소년 시절을 보내던 중. IMF로 인해 아빠는 명퇴를 하셨고, 받은 퇴직금으로 골프용품 매장을 오픈하셨다. 그렇게 나의 리즈시절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저 골프가 좋았지, 장사의 기질이 없던 아빠는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으셨고, 점점...점점... 그래 그렇게 되었다. 차라리 치킨집을 하셨다면 남는 닭이라도 맛있게 먹은 추억이라도 남았을텐데 십여년을 골프샵을 하시는 아빠를 두고 나는 지금껏 내 골프채 하나, 골프공 하나가 없었고, 연습장 한번 나가보지 않았다. 그렇게 골프는 나에게 피하고 싶은 운동이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을 IMF와 함께 보내면서 항상 멈추지 않고 수업을 다니는 엄마를 보았고(엄마는 종이접기 지도사범), 그러다 아동복 옷가게도 잠시 하고 동네에서 사람들을 불러모아 옷을 팔기도 하는 엄마는 참 열정적이었다. 엄마는 신기하게도 아픈 적이 없었다. 아니 아파도 아프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을 거다. 결국 아빠는 대출금을 값지 못해 집을 경매로 넘기게 되었고 우리는 그렇게 ... 되었다. 혼자 집에 있던 날 집이 경매로 넘어간다던 등기우편을 받아들었을 때, 그때의 기분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닮아가며 나도 정말 교과서처럼 '열심히' 노력했던 것 같다. 해야할 일을 잘 해내기 위해 잠을 줄이고, 열정을 부렸고 그 덕분에 미술학원에서는 "너가 앉은 자리에는 풀도 안난다며?!"라는 말을 들으며 원하던 대학교에 합격하는 기쁜 순간도 맛볼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힘들어도 멈추지 않고 달리는 법을 배웠다. 힘들 때에 힘들다고 말하면 안된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각인 시켰다. 기왕 할꺼면 제대로 하자며 남들과는 다르게 살겠다는 그 수 많은 결심들. 그것 때문에 나는 내가 사랑하는 가족의 아픔조차 공감하거나 위로하기 어려운 그런 차가운 마음을 갖게된건 아닌가 문득 자전거 패달을 밟고 달리다가 깨닫게 되었다.
그런 나를 바꾸고 싶어 애써 쉬려고 했던 올 한해를 마무리 할 즈음
이걸 깨닫게 된 이유가 뭐였을까.
요즘 준이는 운동틱이 생겨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동안 ADHD 약 부작용으로 가끔 틱이 생기기도 했지만 지금처럼 심하게 딸꾹질을 하듯 몸을 들썩이며 했던 경우는 없었기에 이번에도 저러다 말겠지 했는데. 벌써 3주를 채우고 있다. 그런 준이를 보며 나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대체 왜 저럴까. 머리로 이해하려고 했지 지치고 힘들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어제, 밥을 먹는 동안 어깨를 들썩이면서 불편하게 먹는 준이를 보다가 갑자기 마음이 울컥해졌다. 힘들텐데, 자기가 왜 이러는지 이유도 모를텐데... 배에 힘을 주는 습관이 생겼다며 종종 배가 아프다고 말하는 준이가 많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틱은 모르는척 하는것이 좋다고 하니 나는 그것을 핑계로 그동안 준이의 어려움을 피하고 싶었고, 외면하고 있었던건 아닌가.
약 부작용에 근육의 이상 움직임이라고 하니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못하더라도 긴장된 근육을 풀어주는 스트레칭을 같이 해볼까. 저녁을 먹고나서 둘이 손을 마주잡고 몸을 쭉쭉 늘려보고 깔깔깔 거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시간을 맞춰 행동하기를 어려워 하는 준이에게 잔소리를 멈추고 주어진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만큼만 잘 해낼 수 있도록 스케쥴을 조정했다. 학습지도 하나 그만두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도 더 주었다. 아직 눈에 띄에 큰 변화는 없지만 조금씩 나아지겠지.
자전거 패달을 밟다가, 수영을 하다가 나의 열정의 근원을 깨닫게 되었고, 그 열정은 나의 선에서 멈추기로 한다. 준이에게 물려주지 말고, 준이는 준이만의 속도로 갈 수 있도록 나는 멈춰서 바라보기로 마음을 먹는다.
이제 육아휴직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시간은 참 빠르다.
오늘 방과후 수업의 공개수업 날이었는데, 교실에 슬그머니 들어와있는 엄마를 보며 함박웃음을 짓는 준이가 빛이 났다. 저녁을 먹다가 "오늘 엄마가 와서 좋았어"라고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준이에게 더 많은 사랑과 마음을 주고 싶다. 이제는 외면하지 않기로, 깜박깜박 잊을 때도 있지만 너무 열심히 달려가지 않기로 오늘도 결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