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아마 완성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다. 한 해를 돌아보며 나는 얼만큼 성장하고, 버려냈는지 정리해보고 싶은 결산 글. 구구절절 적다 지우다를 반복하겠지. 그래도 한번 기록으로 남겨보자. 그냥 줄줄 쓰면 재미없으니 인터뷰를 한다고 생각하고 적어봤다.
2023년 계획은 무엇이었나?
올해는 온전히 육아와 정체성 찾기가 화두였어요. 일에만 미쳐서 살았던 기간이 워낙 오래된터라 아이를 잘 케어할 수 있을지, 일하는 것 처럼 아이를 재촉하진 않을지 걱정되는 마음도 컸죠.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나의 정체성 찾기가 먼저라고 생각했어요. 신앙을 중심으로 정체성을 찾고, 준이의 1학년 생활을 큰 탈 없이 마무리하고 학습기반도 잘 만들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했죠. 아, 자격증도 따고 싶었어요. 결국에 자격증은 여러 이유도 시도하지 않았지만 의미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경제, 돈공부, 책읽기, 운동하기 같은 일상을 단단히 하는 계획들을 가지고 있었어요.
무엇을 가장 먼저 했나요?
2월19일이 육아휴직 시작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3월에 입학하는 준이의 학교 생활 준비가 가장 먼저였어요. 입학식 일주일 전 부터 학교갈 시간에 맞춰서 아이를 깨우고 패딩을 둘러입고 학교 운동장을 한바퀴씩 돌고 들어왔어요. 학교가는 길을 익히고, 학교라는 공간이 어색하지 않도록 먼저 둘러본거죠. 운동장에 뭐가 있는지 살펴보면서 학교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줬어요.
3월이 빨리 오더군요. 그리고 아이도 집에 빨리오더라구요. 그렇게 일찍올지 몰랐어요. 그래도 점심을 먹고와서 다행이었죠. 급식이 안맞는지 매번 밥만 잔뜩 먹고 오긴 했지만요. 언젠가는 잘 먹겠지 하고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했어요. 준이가 집에오면 휴식시간을 주고 오후부터는 공부를 도왔어요. EBS 만점왕 시리즈를 사서 국어, 수학을 가르치고, 책도 읽었어요. 도서관도 같이 가서 책도 빌려오고 학교생활에 필요한 것들이라면 챙겨주려고 애썼던것 같아요.
준이가 잘 따라오던가요?
저도 아이와 이렇게 붙어있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매우 서툴렀고, 공부를 가르치다가 답답하면 화를 내기도 했어요. 도대체 이해를 못하는 아이를 보면 어찌나 속이 터지던지. 그런데 그건 제 문제더라고요. 지금 돌아보면 준이는 충분히 잘 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준이는 엄마랑은 놀고만 싶고 공부방에 가고 싶다고 했어요. 방법의 전환이 필요했죠. 그런데 고민이 됐어요. 3월에 영어학원을 한달 보냈는데 수업이 답답했는지 교실 밖으로 자꾸 나오고 5명이 수업하는 소수정예 수업이었는데도 선생님이 자기의 이야기만 들어주길 바라는 행동들이 있어서 결국 그만두고 학원을 보내기 어렵겠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래서 공부방은 선택하기 꺼려졌죠.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가 가게 둘 순 없었고, 준이가 문제있는 아이로 찍히는 것이 싫었어요. 그래서 패드로 학습할 수 있는 홈런을 시작했죠. 홈런의 학습 자료는 학교 선생님들도 많이 사용하셔서 준이에게 익숙한 콘텐츠들이 많았고 재미있어서 스스로 잘 하더라고요. 좀 수월해졌어요. 둘다 숨이 트이는 것 같았어요.
학교 교과는 홈런으로 하고, 영어는 윤선생영어를 했어요. 저는 오래된 학습지를 신뢰해요. 그만큼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도 어렸을 때 윤선생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선생님이 준이에게 휘둘리는 모습이 종종 보였어요. 너무 여리여리하고 순한 선생님이었는데 준이의 산만한 자세를 잘 잡지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선생님 교체를 해달라고 했어요. 너무 극성인가 하실 수도 있지만 준이의 특성상 단호할 때는 단호하게 해줘야 제대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고학년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바뀌었고, 나이가 많은 분이라 준이를 잘 다루시더라고요. 지금까지도 잘 배우고 있는거 보면 잘 선택했다고 생각해요.
엄마가 아닌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것에 대해 묻고싶어요.
네,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죠. 전 크리스찬이예요. 아주 어렸을 때 부터 교회에 다녔지요. 엄청 열심히 다녔어요. 소위 말하는 교회언니 중에서도 더한 사람이었죠. 그런데 그렇게 긴 시간을 교회에 올인하고 청년 시절을 보내도 해결이 안되는게 있었더라고요. 열정만 부렸지 깊은 내면을 잘 들여다보지 않았었나봐요. 그러다가 3년 전 다니던 교회에서 트러블이 생기고 1여년을 아웃사이더로 보내다가 다른 교회로 옮겼어요. 그러고 나서도 1년을 넘게 없는 사람처럼 지냈죠. 한개의 교회였는데 몇년 전 분립을 해서 지역 교회 5개로 나뉘어졌어요. 우리 가족은 5개 중에 집이 가까운 마포구에 있는 교회로 갔다가 일이 생긴 후 동대문구에 있는 교회로 옮겼어요. 그렇게 보면 그 교회에 총 다닌 기간은 10년정도 되는데 인사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다고 말하면 저도 참 개인주의로 살아왔나봐요. 공동체를 중요시 여기는 곳인데 말이예요.
그렇게 조용히 지내다가 가까운 곳에 살고있는 목양 담당자가 저와 신랑을 만나자고 했어요. 그 시기가 휴직 시작하고 두달 정도 지난 4월 쯤이었어요. 그분은 많은 것을 묻기보다 스스로 내 속의 이야기를 꺼내게 들어주셨고, 일과 육아, 정체성과 삶에 대해 고민하는 저에게 같이 풀어가보자고 하셨죠. 그동안 교회에서 여러 역할을 맡는 것에만 이야기를 들어왔지 저의 정체성의 회복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만나지 못했던 것 같은데 참 감사했어요.
12주 동안 [풍성한 삶의 기초]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제가 누구인지, 나와 하나님, 세상, 공동체의 관계를 정리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 결과 나는 기획자, 팀장, 엄마, 아내 라는 명칭보다는 '박재은'이라는 하나의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이것이 개인주의적인 개인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박재은으로서 살아가면서 세상에 어떤 영향력을 끼치고 사람을 사랑하고 아끼며, 받은 사랑을 실천하고 살아야할지 정리가 되었죠. 언젠가 어느 순간에 잠시 흔들릴 때도 있겠지만 이제는 그래도 일에 휘둘리며 도대체 왜 이러고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은 많이 줄어들 것 같아요. 다시 정체성으로 돌아오며 마음을 잡을꺼예요.
공부나 운동 등등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어요.
공부는 우선 책읽기로 시작했어요. 경제, 자기계발, 소아청소년발달, 기타 분야를 중심으로 읽으려고 했어요. 처음에는 교보문고에서 책을 사서 읽었는데 자꾸 쌓아두는 것도 부담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밀리의 서재를 이용했어요. 신간이 별로 없긴 하지만 그래도 제가 읽고 싶은 책들은 대부분 있더라고요. 유용했죠. 올해도 계속 볼 계획이예요. 책을 읽다보니 은연중에 머릿 속에 들어가는 지식들이 있어서 예전보다는 경제 뉴스를 보더라도 이해가 좀더 되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진 것 같아요. 너무 우물안에만 있었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앞으로는 더 적극적으로 읽으려고해요. 읽은 책 목록을 적어볼게요.
럭키 LUCKY(김도윤), 아기곰의 재테크 불변의 법칙_아기곰, 몰입(황농문), 불편한 편의점(김호연), 불편한 편의점2(김호연), 공부란 무엇인가(한근태), 마음의 지혜(김경일), 김상욱의 과학공부(김상욱), 우리 아이는 조금 다를 뿐입니다_데보라 레버, 10대 놀라운 되 불안한 외 아픈 뇌(김붕년), ADHD 우리아이 어떻게 키워야 할까(신윤미)
11권 이네요. 적어놓고 보니 별로 없네요. 좀더 분발해야겠어요. 요즘에는 조선미 아주대 정신건강의학교실 교수의 [영혼이 강한 아이로 키워라]를 읽고 있어요. 준이가 커갈수록 내 손을 떠나 자립할 수 있는 걸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스스로 다짐도 하고 실천도 하려고 계속 머릿속에 주입하는 것 같아요. 아이가 왜 이러는지 모르면 가르칠 수가 없잖아요. 계속 화만 낼 수도 없고. 많은 도움을 받는 것 같아요. 특히 준이처럼 ADHD 특성이 있는 아이는 조금 느리기도 하고 빠르기도 하니까 옆에서 속도를 잘 조절해줘야 하거든요.
학습으로 한가지 도전을 한게 있어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육학과에 청소년교육 전공으로 편입 신청을 했어요. 왜 뒤늦게 공부냐고, 그것도 왜 학부냐고, 궂이 학위를 따야하겠냐고 신랑이 한참 구박을 했는데 제 나름 준이의 청소년을 미리 준비해야겠다는 결심이었어요. 그렇다고 제가 이 나이에 정신건강의학과 쪽으로 공부를 시작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제가 하는 일 안에서 청소년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배경을 갖춘다면 예술교육 쪽으로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많기 때문에 신청했어요. 일을하며 배워야 하니 방통대를 선택했고, 3학년으로 편입이 가능하더라고요. 그래서 짧고 굵게 다니려고 편입을 선택했어요. 수업 퀄리티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국립대학교니까 기본을 배우고 이후에는 좀더 깊게 연구하며 다양한 프로그램도 만들어보고 싶어요.
운동은요?
운동은 초반 6개월은 신랑이 끊어놓은 헬스장을 양도 받아서 다녔어요. 시간이 안맞아서 제가 다니게된건데 그래도 꾸준히 하려고 노력했던것 같아요. 그런데 헬스는 혼자하는 운동이잖아요. PT를 받는 건 아니었고, 꾸준히 가서 꾸준히 달리고 근육을 다녀보자는 목적이었어요. 그런데 재미가 없었죠. 사실 몸이 달라질만큼 운동을 하는게 아니었으니 에어팟을 끼고 혼자하는 건 안하고 싶더라고요. 6개월을 꾸역꾸역 다니고 이후에는 수영을 다녔어요. 선생님도 있고 같이 배우는 사람들과 대화도 하니 재미있더라고요. 접영까지 배웠는데 독감에 걸리는 바람에 1월은 등록을 못했고 좀 아쉽게 끝났어요. 한달만 더 다니면 상급반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가 되는거였는데 말이죠. 복직하고 새벽반을 도전해보고 싶은데 시간이 허락할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수영은 아니더라도 뭔가는 계속 하고싶어요. 폐활량이 늘었고, 오래 뛰어도 힘들지 않더라고요. 헬스보다 수영이 더 효과가 있었어요.
여러방향으로 고민을 많이 하신 것 같아요. 자신의 성장과 준이의 성장, 미래 준비까지 말이예요.
지금이 아니면 준비하기 어려울거라고 생각했어요. 나에게 주어진 1년을 알차게 보내고 준비하지 않으면 바빠진 업무에 물리적인 시간조차 내기 어려울 수 있으니 그러고 싶진 않았죠.
준이가 방학을 맞이했어요. 이제 2학년이 되는거죠?
네, 어제 1월5일 겨울방학이 시작됐고 3월4일에 2학년으로 학교에 가요. 2달동안 엄마없이 생활하기, 2학년 1학기 학습 준비하기로 시간을 보낼 예정이예요. 제가 2월20일부터 출근이기 때문에 부지런히 움직여야해요. 1학년 담임선생님과 최근에 상담을 했는데 복직을 하신다면 그 전부터, 아니 지금부터 학원이나 엄마없는 시간을 연습시켜서 익숙하게 해주라고 하시더라고요. 개학하는 시점부터 하면 반도 바뀌고 교실과 선생님도 바뀌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아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힘들어할 수 있다고 하시면서요. 그래서 얼마전부터 태권도와 수학학원을 등록했어요. 태권도는 운동을 꾸준히 한가지는 했으면 좋겠는데 분위기가 괜찮은 도장을 알게되었어요. 밝고 부부가 관장으로 일하고 있어서 아이를 맡기는데 안심이 되더라고요. 준이도 좋아하고요. 많은 학부모들이 공감하지만 태권도장은 아이를 함께 키워주는 곳이더라고요.
수학학원은 동네에 워낙 너무너무 많아서 고르고 고르다가 몇군데를 상담했어요. 어디는 3년치를 선행을 해야 한다고 겁을 줬고, 2시간동안 문제풀이를 시키는 곳도 있었고, 어디는 3학년부터 받고, 레벨테스트를 받는 등 여러가지 학원이 있더라고요. 2학년 때부터 너무 빡세게 학원을 다니면 금방 질려할까봐(준이가 수학을 싫어하거든요) 해법수학 공부방으로 보냈어요. 여기도 앞서 적었듯이 윤선생처럼 오래된 학습 브랜드이고 여러 노하우가 섞인 교재들이 있어서 일단 믿을 수 있었고요. 가서 상담을 받아보니 선생님이 차분하고 단호하게 안정감이 있더라고요. 매일 1시간 5일을 하는데 부담도 적고 괜찮은 것 같아요. 일주일 보냈는데 생각보다 잘 하고 와서 잘 골랐다고 생각했어요.
준이의 하교 후 시간을 위해서 돌봄교실을 신청했어요. 1월 17일에 추첨을 한다는데 긴장되네요. 제가 퇴근하고 돌아오면 7시30분~8시가 되니 준이가 그때까지 안전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들이 필요해요. 학교수업, 방과후, 돌봄교실, 학원 ... 이 중에 학원을 최소화 하기 위해 꼭 돌봄교실에 되면 좋겠어요. 여러가지 프로그램도 하더라고요. 준이가 뺑뺑이 돌지 않도록 잘 일정을 짜야지요.
육아휴직을 마무리 하면서 어떤 생각이 드세요?
이제 한달 반 남았네요. 최근에는 회사 그룹웨어에 들어가서 최근 문서들도 열람하고 2024년 예산안도 살펴봤어요. 팀장이 부재한 팀이다보니 괜찮은 사업은 다른팀으로 넘어가기도 했고, 맡고싶지 않은 사업이 들어와있기도 하더라고요. 불만의 마음을 가졌다가 힘을 빼자고 생각했어요. 저도 1년을 쉬면서 감이 떨어졌을 수도 있으니 주어진것에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으로 마음을 바꿨죠. 골치아팠던 팀원 둘이 다른팀으로 발령이 나고 새로운 직원들이 들어왔다는 것만으로 감사하기로 했어요.
저에게 1년의 시간은 참 소중했어요. 가장 좋았던 건 준이와 재미있는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는 것이 1번이고요. 준이도 저와 같이 보낸 시간 덕분에 안정감이 많이 생기기도 해서 참 감사해요. 인생에 이렇게 1년을 멈추고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있을까 싶어요. 이제 일을 시작하면 어떤 일상을 살게될지 두렵기도 하고 걱정도 되지만 이제는 마냥 앉아서 짜증만 내지 않으려고요. 순간순간을 성실히 살아내고, 내가 누구인지 생각하고, 무엇을 해야할지 살피는 것을 먼저 할거예요. 내 주위를 사랑하고 아끼는 것도 물론이구요. 성장하기 위한 노력들도 꾸준히 하고요. 차근차근 앞으로 가겠습니다. 지켜봐주세요.
모든 이야기를 적진 못했지만 돌아보며 결국은 감사한 생각만 남는다. 언제쯤 끝날까 싶었지만 모든 것에는 마침표가 있는 법. 남은 기간을 잘 마무리 하고 새로운 기대로 한 해를 잘 만들어가봐야겠다.
수고했다. 박재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