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복잡할 때 글을 쓰면 복잡한 글이 나온다
1.
어제 새벽. 신랑이랑 크게 싸웠다. 미뤄두었던 시댁 부모님의 생신과 어버이날에 대해 어떻게 할지 대화를 나누다가 이상한 부분에서 대화가 꼬이기 시작하더니 나는 인정도 없는 파렴치한 인간이 되었다. 신랑은 시댁 이야기만 나오면 연민 모드에 빠져 깊고 깊은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나는 해결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상태에서는 매우 냉정해지고 해결방법을 찾아 실행하는 편인데 정 반대인 남의 편은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마음속의 걱정이 보이질 않으니 그저 나는 공감능력 '0'인 사람처럼 보이나보다. 다시 시작된 형님의 투병으로 아버님과 어머님의 생신 축하 모임은 계속 취소가 되었었고, 어찌하면 좋을지 상의를 하던 차에 이런 상황이 생기니 나는 당황스러울 뿐이다. 그렇다고 생신 당일에 그냥 지나간것도 아닌데 말이다. 정작 아들은 본인이면서 왜 나한테 난리를 부리는 것인가.
아침, 짜증이 났지만 어차피 그냥 지나갈 것도 아니고 그냥 지나갔다가는 더 난리를 칠테니 신랑이 자고있는 사이 식당을 예약하고 어머님과 형님에게 알려드렸다.(형님은 다행히도 요양원에서 회복해서 어제 집에 돌아왔다.) 예전 같았으면 같이 사네 못사네 며칠동안 끌며 더 싸웠겠지만 요즘 준이가 세 가족이 뭔가 같이 하는걸 너무 좋아하고, 엄마 아빠 목소리가 조금만 높아지면 달려와 "싸우더라도 이따가 화해하고 잘 지내면 되~" 라며 인생 조언을 하곤해서 그만 두기로 했다. 이게 지지고 볶고 사는건가. 지겹다. 지겨워도 어쩌겠나 내가 선택한 인생인데 누굴 탓하랴... 공기가 좋다하니 창문 열고 청소나 해야겠다.
2.
작년 이맘 때 여름이 오기 전 펌을 했다. 그 날도 아울렛에 갔다가 신랑과 싸웠던 날이다. 너무 화가나 혼자 좀 걷고싶어 먼저 가겠다고 나와 걷던 중 미용실이 보이길래 들어가 앞머리까지 전체 머리를 뽀글뽀글하게 펌을 해버렸다. 그러고 1년이 지났다. 여전히 머리는 컬이 있는 상태. 그때만큼 뽀글거리지는 않고 적당한 웨이브라 그냥 두어도 나쁘지 않은데 요즘들어 머리를 펴고싶은 생각이 자꾸 든다. 거울을 봐도 일년동안 같은 모습인 내가 지겹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사실 나는 내 일상이 지겨운 것 같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하루가 재미가 없고, 의미있게 보내야지 생각했던 육아휴직이 매일 돌아가는 루틴 앞에서 지겨워진 것 같다. 준이를 케어하는 것은 매우 보람되는 것이지만 '나'라는 존재에 대한 정체성의 혼란이라고 해야하나... 집 가까운 곳으로 이직을 하고 싶어 취업 사이트를 다시 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뭔가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그나마 즐거움을 하나 찾아본다면 이 곳에 글을 쓰는 일. 문득 떠오른 글감에 망설이지 않고 맥북을 열어 주르륵 써내는 일이 나에게 즐거움을 준다. 머리를 펴고 싶다가 글 쓰는 재미를 상기시킨다. 그렇게 내 일상이 별게 없다는 것, 참 지겨운 인생이다.
3.
나는 크리스찬이다. 하지만 오랜 기간 교회를 다니고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 누구하나 전도해 본적이 없고, 질문을 받았을 때 또렷하게 대답을 할 수 있는 깊은 믿음을 가지고 있진 않다. 교회 안에서 여러 역할을 하면서 소진 되었던 경험도 있고, 그 곳도 인간들이 모인 곳인지라 실망도 하고 관계의 어려움도 겪곤 해서 지금 다니는 교회도 너무 깊이 가진 말자 생각을 한다. 그런데 요즘 휴직을 하고 시간이 많아지면서, 준이를 키우고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면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 많아진다. 시기도 아이러니하게 넷플릭스에서 JMS 사건이 대두되면서 신앙에 대해, 믿음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하게되었다.
자연스럽게 다시 삶을 정돈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복권처럼 모든 것을 이루어주는 것이 믿음이 아니다. 요행을 바라며 천국가고 싶다고 나의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 신앙이 아니다. 내 삶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 내 주위에 있는 이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큰 방향을 잡고, 그 길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믿음이고 신앙이라 생각한다. 그러다보면 늘 불안이 높은 내 마음도 안정을 찾겠지, 좀더 열린 마음으로 주변을 돌보고 아낄 수 있겠지. 팍팍한 인생길을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걸어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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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지겨운 삶을 살아내는 것을 그만두고,
새 종이에 다시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건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나간 시간이, 선택이, 삶이 달라진다면...
그럴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