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온도_나의 언어는 -30℃

언어의 온도(이기주) 다시 읽기

by 오붓한일상

이기주 작가의 글을 좋아한다.

에세이를 쓴다면 나도 그렇게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작가의 책 중 [언어의 온도]를 가장 처음 접했던 것 같다. 그 이후에도 발간된 도서들을 애정하며 모두 읽으며 담담하면서 군더더기 없는 작가의 글은 일상의 소재를 통해 마음을 쿵...하고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다.


[언어의 온도]를 열면 서문에 이런 질문이 있다.

'당신의 언어 온도는 몇 도쯤 될까요'

서문을 조금 발췌한다면


언어에는 나름의 온도가 있습니다. 따뜻함과 차가움의 정도가 저마다 다릅니다.

온기있는 언어는 슬픔을 감싸 안아줍니다. 세상살이에 지칠 때 어떤 이는 친구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고민을 털어내고, 어떤이는 책을 읽으며 작가가 건네는 문장에서 위안을 얻습니다.


용광로처럼 뜨거운 언어에는 감정이 잔뜩 실리기 마련입니다. 말하는 사람은 시원할지 몰라도 듣는 사람은 정서적 화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표현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상대의 마음을 돌려세우긴커녕 꽁꽁 얼어붙게 합니다.



나의 언어의 온도는 몇도쯤 될까?


요즘 나는 가능성과 희망의 말 보다는, 가능성을 말하긴 하지만 가능성을 현실화 하기 위한 너무나도 실무적인 언어들을 주로 말하고 있다. 부정적인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으니 그것을 극복하고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야 겠다! 뭔가 결의에 찬 말 안에 불안함이 뭍어난다고 해야하나. 아니면 회사에서 하던 습관을 집에서도 하고 있다고 해야하나.


예를 들면 어떤 가능성을 두고 '잘 될꺼야' 라고 희망의 말을 하기 보다 그럼 어떻게 해야되는데? 그래서? 그 다음은?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따지며 성공과 실패의 잣대를 들이미는 것이다. 이런 말들이 일 할 때는 나에게 매우 효과적이고 긍정적인 실적을 줄 수 있지만, 요즘 나의 일과가 주로 육아와 살림이라는 현실에 있어서는 매우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이것 또한 부정적인 예측인지는 모르겠으나)


신랑의 언어를 빌려 말하자면 '부정인자 좀 빼고 말해~' 좋은 이야기를 했는데 하나하나 따지면서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말하고 있는 내가 얼마나 답답해 보일까 싶다. 때로는 아주 차갑게 딱 잘라 말하기도 하는데 이럴 때는 '세상 제일 ㅆ가지'라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밖에서 그러고 다니진 않지만 더 따뜻해야 할 집에서 이러니 나도 슬슬 내 말들에 문제가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


준이에게도 어느 순간, 내가 마치 팀원을 대하는 듯이 '오늘은 이걸 해야하고, 언제까지 이걸 해야하고, 여기까지 해야해'라며 '해야할 일'들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나에게 휴직 기간 이라는 시간의 한계가 있어서 그런지 휴직이 끝날 때 까지 여기까지 준이의 생활습관을! 공부 습관을! 완성시켜야지! 라는 목표가 작동하는 것 같다. 궂이...그래야만 하나.


이렇게 글을 쓰다보니 한편으로 내가 강박이 생겼나 궁금해진다. 일에 쏟았던 에너지를 반복적인 일상에 쏟고 있으니 뭔가 생각대로 이끌리지 않으면 불안한 생각과 통제욕구가 올라오는 건가. 나 스스로 지칠 때가 있다. 때로는 숨을 트이며 좋은 이야기, 긍정적인 생각, 편안한 휴식을 누리고 싶은데 잘 안되고, 그게 언어로 표현이 되니 나 스스로도 들으며 이제는 바뀌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다시 [언어의 온도]로 돌아가서, 위에 쓴 나의 말들을 생각하며, 위에 적지 못한 더 많은 말들을 떠올리며 나의 언어의 온도를 생각해본다. -30℃ 쯤 되지 않을까? 남극 온도가 그쯤 되고 체감온도가 -50정도라고 하니 내 말을 듣는 상대는 남극의 체감온도를 느끼지 않을까 싶다. 더운 여름 잘된거라고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하나.


말을 하기 전에 생각하자. 감정에 휩쓸리지 말고 이성의 끈을 놓지 말자고 다짐한다.(다짐은 맨날 한다. 수천번 수만번) 목표를 눈 앞에 세워두지 말고 일상을 바라보며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웠던 나의 말들을 되찾고 싶다. '지금 해야만 하는 일', '달성해야 하는 것'에 집중하기 보다 내 눈 앞에 서 있는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면 언어의 온도는 조금 올라가겠지. 그렇게 하나하나 연습해보자.


책장에 꽂아두었던 [언어의 온도]를 오랜만에 꺼내 다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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