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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아와 삶에 관한 역발상

언젠가 네게 좋은 이야기가 될 수 있길

by 모호씨

이데아는 완벽이 아니다
이데아는 불완전한 순수히 우연적인 사건이다
우리는 앎을 지향한다
우리는 무엇을 저장하고 무엇을 반복하고 무언가를 물려준다
저장하고 반복하고 남기고자 하는 우리는 영리해야 한다
의심할 여지없이 유한한 우리가 존재하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무엇들과의 만남을 압축해내어야만 한다
말은 펼침과 압축의 원리를 지닌다
문장을 문장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한시간 쯤 떠들어대는 그의 말을 머리 속에 필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우리는 언제나 사건을 재창조한다
자연은 우리에게 직접 오지 않는다
우리는 변형 모사하여 창조할 수 있을 뿐
우리는 세계가 아니다
찌를 치고 흘러가는 자연에서 의미만을 낚아낼 수 있을 뿐
낚인 고기의 이름은 어부가 붙인 것 크기도 어부가 말하는 것
자연은 고기의 이름이 필요치 않다
고기는 썩어도 어부가 낚은 고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름 때문에 크기와 모양 때문에
우리는 사건을 모방하여
사건을 유사하게 재현할 수 있는 기본 법칙을 발견하고
사건을 저장하고 반복하고 또 물려주기까지 한다
달은 원도 구도 아니다
해도 사과도 원도 구도 아니다
하지만 달을 모사해 원과 구의 법칙을 만들 수 있다
터져 나는 비의미들의 실재에서 우리는 의미를 고안해내어야 한다
알고 반복하고 전달해서
너와 나를 조금 더 안정시키는 것
시간의 강물에 너를 나를 잃지 않는 것
팔로 만져 너를 느끼기 위해
내가 아는 너를 떠올릴 수 있게 너를 고안하는 것
실재의 끝없는 혼돈 속에서
오늘을 일기로 마무리하는 것
펜을 굴리면서 삭제 생략 오류를 감내하면서
이야기를 구성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
오늘은 완벽하지 않지만
일기는 완벽하다
이데아는 오히려 혼돈이고
삶이 다만 완벽이다
그 이상은 없다는 한에서 삶이야말로 다만 완벽이다

W 심플.
P John Cobb.



2017.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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