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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오 Jun 29. 2017

하지만 생각없이는 도무지 들을 수가 없는 그런 입

오늘 날씨 흐림


1

너는 그저 나를 바라보지만

나는 무언가 대답을 해야 할 것만 같아 늘

나는 바람으로 네 머리카락을 넘기거나 할 뿐이지만

너는 내게

이름없는 바람이 아니지

나는 생각일 뿐 

나의 역사 따위 흩어져도 된다 여겨

하지만 나는 너를 분명히 바라보고 있어

평가를 바라는

발견을 바라는

그리고 빈 제목란

실체로서 너를

나는 그래 너를 보려고

이름을 벗고 두 손을 든 채 선 밖으로 걸어나왔나봐

여기서는 네가 잘 보여

달리 떠드는 사람도 없지

하지만 생각을 이어도

다만 내가 쉽게 답할 수가 없을 뿐


2

한 아이가 선물을 받았어

그 선물은 귀여운 모양의 인형이었는데

특별하다면 

그건 모양 때문이 아닌

그 인형이 가진 괴상한 기능 때문이었지

그 기능은 어떤 말이든 한번 입력을 해두면

아이가 그 인형을 안을 때마다

아이에게 언제나 그 말을 해주는 것이었지

엄마가 말했어

늘 네가 안으면

인형이 네가 원하는 그 말을 들려 줄 거야

하지만 단 한번 단 하나의 말이니

신중하게 잘 생각해보렴

그리고 언제나 네게 힘이 될 말을 정해보렴

아이는 생각했어

처음에는 괜찮아 라는 말이면 다 될 거 같았지

하지만 선뜩 입력을 할 수가 없었어

그 다음에는 잘했어 또는 지나간다 등의 말을 생각했지만

왠지 자신을 속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것만 같았어

아이는 매일 인형을 바라보며 생각을 했어

뭔가 확실한 것이 있을 것만 같았지

분명하고 정확한

어떤 말이 좋을까

어떤 말 하나면 자신의 모든 슬픔과 아픔을 쫓아내는 

모기향이 될 수 있을까

아이는 결국 그 어떤 말도 듣지 못한 채 하루가 다르게 커 갔지

하지만 그 어떤 위로도 없었던 것은 아니야

아이는 인형을 바라보면서

선택될 수도 있었던 수많은 말들을 떠올리고

스스로 또 뱉어보면서 많은 힘든 밤들을 보냈어

인형은 이제는 발에 채이는 짐짝처럼 되었겠지만

아이는 정해지지 않은 그 입을 아직도 떠올리곤 해 버릇처럼

가장 친절한 입

하지만 생각없이는 도무지 들을 수가 없는 그런 입

말이야


W 심플.

P ian dooley.



2017.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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