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오 Oct 05. 2018

기다리는 식구들에게 나는 여전히 실망입니다

오늘 날씨 비

비가 옵니다

남국의 산 이름이 모아온

재료들에 주방은 이미 분주하겠습니다만

기다리는 식구들에게 나는 여전히 실망입니다


생각을 해야해

내가 여기 비어있다 해도

내 벌린 입에는 물이 거의 모이지 않는다는 걸

비어 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낮아지는 것

한 계단 내려가

그들의 겨드랑이를 보고

또 한 계단 내려가

그들의 젖꼭지라도 보고

다시 한 계단 내려가

그들의 배꼽도 보고

나의 정수리 숱없는 머리 속을 내보이는 일은

분명 견디기 힘들 만큼 수치이겠지만

마음보다는 물이 아들의 피에 더 가까워서

구걸 하는 이의 경험칙 엎드림처럼

내려가고 또 내려가서

다들 내가 개미다 할 때

그 곳에 가장 더럽지만 가장 싼

거의 공짜의 물이 있다는 것을


여섯번 째 다리마저 허우적대면

사람들이 빨대로다 물들을 뱉어 줄거야

이천원짜리

심지어 오천원짜리 커피라도 기꺼이

우습거든

아깝지 않겠지 밑으로 내보내는 것들은

심지어 못 참지


나무는 사실 꺼꾸로 서 있는 거야

입은 언제나 가장 더러운 곳에다 박고 있지

그곳에는 언제나 가장 싼 물들이 모여들거든

다 마신 커피컵 속의 얼음들이나

거하게 술에 취한 아저씨가 못 견딘 오줌들이나

청소하고 버린 물

우산에 튕기는 물들

바퀴에 눌러 터지는 물들

찢어진 내장이 뱉어내는 물들

심지어 내 여섯번 째 다리가

자존심처럼 털어낸 몇 방울의 물들까지도

하지만 나무는 우리보다 더 오래 살아남고

언제나 우리보다 더 먼 곳에서부터 보이지

숲은 사실 나무만으로 그리는 그림이고

사람은 작아서 소리조차 숲 너머로 들리지 않는 걸


현명함은 그렇게 일찍 가르치기가 싫은 것


비가 옵니다

남국의 산 이름이 모아온

재료들에 주방은 이미 분주하겠습니다만

기다리는 식구들에게 나는 여전히 실망입니다


W 레오

P Lily Banse



2018.10.05

매거진의 이전글 되돌아 나올 방법도 모른 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