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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오 Apr 16. 2020

시일기_내가 부서져도 모호함은 틀린 것이 없다

오늘 날씨 맑음

괴로운 것은 아직도 물에 뜨려는 마음을 못 버려서이다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는지 모르는 눈을 꼭 감은 아이

독 같은 삶이라 마시곤 곧 뱉고 마신곤 곧 뱉고 했었지

나의 폐에는 방들이 많아 나는 달력마다 꿈을 꿨고

꿈만큼 나는 꼭 울었다

고통 끝에 내가 울고만 것은

내 죽음이 치유라는 소식

물에 녹으면

나는 우선 움츠린 몸을 풍선처럼 펼 것이다

그리곤 아주 느리고 부드러운 폭발

귀지를 불어내는 입김처럼

고작 이름표 같은 것에 모여있던

겁 많은 조각들이

공간에 흩날릴 것이다

너는 이제 보이지 않는다

두 개의 선으로 젓가락처럼 집어야 하는 눈들에는

쉬어라

더는 빠지지도 더는 나뉘지도 않는 바다가 되리



괴로운 것은 밤이 왔음에도 끝내지 못한 일과

밤에 다 잠겼는데 도통 자려고 하지 않는 아이

눈을 감으면 놓칠 파티가 있는 듯

하지만 깊은 밤에도 잠에 들지 않으면 좀비가 되고 만다

좀비가 되어 산 살을 쫓게 된다

생살을 먹는데 맛은 모른다

피범벅이 된 입과 손을 닦을 줄도 모른다

그냥 무한한 배고픔만 느끼며

냄새에 민감하고 소리에 민감해서

밤에 다 잠겼는데 끝내 잠들지 못한다


어디를 향해 뛰어야 하는지 모르고

달리고 있던 마음만 더 강하게 느낀다

결승선은 퇴근을 하고

치킨에 맥주를 마시곤

냄새 가둔 발로 잠이 들었는데

나는 이제는 있지도 않을 선을 향해 달린다

달리는 마음은 낮의 마음

가만히 선 해를 밀어내야 하는

표면의 마음

그만 멈추면 된다

풀섶에라도 누워 벌레가 나를 나눠 가져도 억울해하지 말라

나는 속임수이다

나의 고통도 나의 성실함도


나는 지구의 날씨이다 

표현이고 말이다

순간이고 감정이다

흩어져 내리면 틀린 적이 없는 거대한 모호함이 된다

나는 그 모호한 것의 완벽해져 가는 표현들의 한 조각이다

내가 부서져도 모호함은 틀린 것이 없다


울지 말라

너무 아프지 말라


레오



2020.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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