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오 Apr 13. 2020

시일기_언젠가 가장 무거운 밤

오늘 날씨 비 온 후 갬

방에는 곧 밤이 찾아온다

죽음처럼 비릿한 붉음을 앞 새우며


네 개의 다리를 묶어주던 탄탄한 바닥은 이제 핏물 속에 다 잠겼다


둥둥 떠 있는 좌표들

별들처럼 아늑한 사이들


아무런 말도 없이

나와 너와 빛조차도 서로가 그저 거기에 있음만 알리며 서 있다


빛을 누가 따르고

누가 누구를 따르고

빛이 또 누구를 따르면서

바쁘다 지친다 했었는데


실은 서로가 줄곳 그곳에 서 있었음을

들키면서 알아채버리는 시간이 있다


밤에는 그리하여 각자의 슬픔만이 있다


밤에 깨어 있는 사람

못 자겠어

가여운 아이

마법의 연기 속에서 정자와 난자를 덩어리를 보고만

마취약에도 잠에 못 들고

고통의 수술을 다 겪어왔구나


나는 달리지 못하는 다리를 가진 가로등

내가 당신에게 와 주리라 기대했던 것을 알아

나 또한 그것을 정말로 원했으니까


애초에 우리는 심장을 안을 수 없는 ‘사람’

우리는 사탕을 지키는 빈 깡통

혹은 빈 깡통에 숨긴 몇 푼짜리 동전들


보여달라고 말해봤자지

내보일 수 없는 맨살을 이길 수도 없는 그 부끄러움

파닥이는 물고기

강렬한 고동이 손 위에서 금세 식어 가는 것을 봤잖아


아침이 온다

바다도 대지도 아닌 이 얕은 곳에는


빛이 우리를 이어주는 고약한 마법의 순간

그 하얀 기만의 밤


일찍 일어나 앉아야지

환상의 손을 내밀어

그대의 이야기라도 잡을 수 있는 시간


잠들 수 있을 만큼 몸을 쓰는 사람들

깔끔한 마무리를 봉지에 담아 돌아갈 수 있는 사람들


밑 마음이 없는 마음

그림자가 없는 눈을 가진

만족이 뭔지 아는 깨끗한 사람들


한 잔의 와인

두 캔의 맥주

눈을 감고 마음에는 불 켜

귀신도 사랑으로 볼 이들

그들만의 달콤한 밤은 낮


콜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창 밑의 우버이츠들

불이 붙는 달콤한 담배들


던져지는 담배

가방 가득 식어가는 한 그릇의 의미를 매고

부르릉 내 창을 때리며 달려가는 이들


완료를 검지로 누르고

누구보다 무거운 가벼운 몸으로 베개를 원할 이

그들만의 달콤한 밤은 낮


하지만 우리의 방에는 길다가 짧아지는 밤이 있다


언젠가

가장 무거운 밤

끝이 없을 거라는 믿음 주는 육중한 파도


뚜껑을 녹이고 사탕을 가져가는 물 안의 물

그땐 우리가 묶인 씬에서 씻겨 내려갈 때


그때는 만나자

파닥임이 움직임이 되는 그런 진짜 밤에는


한낱 이야기였던 나의 사랑이

한 걸음의 운동이 되어

너에게 가 너를 정말 만나고 말 테니


레오



2020.04.12




매거진의 이전글 시일기_그것은 다시 나의 7시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