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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오 Apr 05. 2020

시일기_그것은 다시 나의 7시였다

오늘 날씨 맑음

어제는 오랜만의 체기에 오른쪽 관자놀이가 쪼여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버티기만 했다

비상이 아니라며 아끼다가 못 견뎌 꺼낸 흰 알약을 반으로 쪼개 삼키고 

사랑의 관제에 그의 가슴판에다 착륙한 시간은 돌아온 우리의 자정

5유로라서 속는 것만 같아서 사 오지 못한 카드가 맘에 걸렸다

시말서를 써야지 무덤 위에서 입술만 오물거리다 깜박 잠에 들었다

구름이 없는 아침이었다 

빼꼼히 꺼낸 눈으로

내가 해야 할 설거지를 하는 구름 바지를 훔쳐보았다

칼의 물기를 닦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당근을 잘게 썰고 

양파를 까다가 고개를 들어 눈물을 달래는 모습도 바라보았다

커피 5스푼 차가운 물 900 미리리터

팬에 기름을 두르는 바지 뒤로

빨갛게 들어 올라오는 전원은 나의 것

그것은 다시 나의 7시였다

치이익 거리는 내가 겨우 일어나 앉는 유일한 나의 아침 장면

우리의 지겨운 창에는 마트를 오가는 적당히 떨어진 걸음들과

여전히 물기가 마른 세차장이 있다

다시금 자기를 그리고 있는 시곗바늘 둘

역사를 확인하기 위해 나는 당신의 얼굴에서 중력을 찾아본다

마른 가지의 나무가 어느새 흰 꽃으로 다 덮였다

저거 꽃나무더라 몰랐어

봄에 너를 만나 다행이야

어떤 밤이 꽤 길었더라도

눈을 뜨면 그곳이 봄이고 

봄이면 사랑이라는 모를 것 먼저 떠올라 나는

그래 그게 참 다행이야


레오



202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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