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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오 May 01. 2020

파리시_꿈에 용을 보았다

오늘 날씨 비바람

흔들이는 나뭇잎 

오른쪽에서 왼쪽으로만 불어대는 바람

이쪽에서는 그치고

길 건너에서 흔들린다 조금 더 옅은 색 나뭇잎들

아랫단이 찢어진 세차장의 깃발

붉은 깃발이 가렸다가 내놓았다가 하는

엘 아 베 아 쥬 으

자전거를 굴리는 빨간색 반바지의 남자

두 팔을 갈비뼈에다 붙이고 무릎도 안 쓰면서 뛰어가는 추월당하는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커다란 흰 마스크

다 마시지도 다 뱉지도 못하는 그 또한 거친 펄럭임

그의 느린 발은 신기한 왜곡이다

(다른 장면을 다 잊었다)

사월에 본 선명한 무지개만큼 

무겁게 매달렸다가 가볍게 떨어져 나가는 저 흙은

내가 마시지 않는 공기

나의 창 안은 안전한가

며칠간은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비도 자주 내렸다

지금은 어둑한 나의 아침

멀어진 것들과는

안녕의 악수도 포옹도 나누지 못했다

문득 그리운 

그 날들의 공기

방심했던 날들의 힘이 다 빠진 턱들

창을 때리는 굵은 빗방울들

젖지 않는 나의 바닥은 얼마나 안전한가

나는 기준이 없어 맞지도 틀리지도 않는 시계를 가지고 있다

나는 몇 번의 질문의 연쇄에도 도무지 찾지 못하는 시공간의 사람이 되어 간다

창가에 한 남자가 서 있다

배경 때문에 좁아진 조리개가 그의 등을 검게 칠한다

나는 흰 페이지 위에 '뛰어내린다' 고 썼다

단호한 예술가의 결정처럼

그치만 이유를 몰라

그는 머뭇거리고

나의 글도 커셔 자국만 깊어진다

꿈에 용을 보았다

사람들을 불태우며 날아다니더니

우리 옛집 앞 공원 계단 앞에 앉아 불쇼를 한다고 사람들을 모았다

함정인 것 같다며 나의 팔을 당기는 사랑에게 끌려나가면서도

나는 입김이 새는 용을 보았다 

끝내 눈도 마주쳤다

가부좌처럼 앉아 큰 창만 보는 내가

성공을 꿈꿨다는 것이 우습다

몽정을 한 속옷을 입고 찝찝한 교실에 앉은 듯

나의 얼굴은 참 엉망이겠구나

밤을 다 새우고 우마서먼이 가른 듯한 구름 사이로 삐쳐 나온 노란색 피를 찍고

인생도 글도 결국 주머니를 만드는 것이지

정오가 되어도 잠이 도통 오지 않는 

파리에까지 와서 코로나로 갇혀버린 우리는

컬투쇼에서 나오는 우스갯소리에

서로의 겨드랑이를 간지럽히듯 웃었다

사람이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출연을 해야 하는 나의 그이에게

대사를 하나 써 주었다

남들이 이해할 수 있다면 그건 꿈이 아니라고

드라마가 될지 코메디가 될지

두고 볼 일이다

5주만 세차장이 다시 문을 열었다

새벽 5시에 차를 씻으러 오는 사람을 보았다

기록이다


레오



2020.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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