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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 번씩만 안고 갈게1

쌓다 무너뜨리고 그러나 결국은 쌓고 바라보기

by 모호씨
영화 "걸어도 걸어도" 중


장례식을 생각하면 왜 검은 정장과 검은 우산이 보기 좋게 늘어선 미국식 장면 혹은 스님의 불경 소리가 울려 퍼지는 절 안, 검은 망사를 늘어뜨린 채 울고 있는 예쁜 여자와 넋이 나간 채 퍼져 있는 대머리 아저씨가 있는 일본식 장면이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아버지는 포크레인이 할머니를 완전히 지워 버릴 때까지 가는 나뭇가지 하나 붙들고 그 곁에 서 계셨다. 엄마의 재촉에 산을 내려가 삶은 고기를 쉰 김치에 싸 먹고 올라가 봐도, 엄마가 볼 일을 볼 동안 곁을 지켜주다 다시 산을 올라가 보아도 아버지는 그 모습 그대로 그 곁에 서 계셨다. 잡초도 아직 없을 무덤을 몇 번이고 쓰다듬다 잔돌 몇 개를 빼내어 던지시고는 아이처럼 흙에 안겨 우셨다. 흙을 안으신 거겠지만 내 기억에는 흙에 안긴 것처럼 남았다. 나는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가슴이 떨렸었다.


외할아버지의 가시는 모습은 직접 보지를 못했다. 그 시절 나는 매우 어렸고, 성당의 수련회에 가 있는 동안 외할아버지의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지셔서, 엄마와 아빠는 나를 데리고 갈 여유도 없이 급히 서울의 병원으로 가셔야만 했기 때문이다. 뒤늦게 외할머니가 "그래 너도 봐라." 하며 틀어주신 외할아버지의 장례식 비디오. 내가 보는 동안 엄청 울어서 외할머니가 기특하다 효자다 칭찬을 해 주셨는데.. 사실 그때의 나는 외할아버지가 그리워서 울었다기 보다는 흐르는 텔레비전 안의 모습들이 그만 무서워져서 울었었다. 엄마가 너무 우니까.. 우리 엄마가 모래 끼얹는 삽을 말리시며 너무 우니까.. 나는 무서웠다. 나는 그런 게 정말이지 무서웠다.


그랬다. 아빠도 그 날 아들이었고 엄마도 그 날 딸이었다.

그랬다. 그런데 나는 그 날 그러질 못했다.


영화 "걸어도 걸어도" 중


W 상석.

P Jonathan Kos-Read, 영화 "걸어도 걸어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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