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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과 게슈탈트 심리학

게슈탈트 이론으로 본 네티즌 심리


20년 전  작성된 이금룡작가님의 글입니다. 다시 읽어보면 좋은 글이라, 일부를 발췌해 다시 올려봅니다.






본다는 것은 눈이 보는 것을 넘어서는 것이다. 마음은 눈만 가지고는 볼 수 없는 대상들을 본다. ( 로버트 솔소 저, 신현정 외 역, <시각심리학>, 시그마프레스 )


보통 형태 심리학이라고 번역하는 게슈탈트 심리학은 1912년 베르트하이머의 연구로 시작됐다. 게슈탈트(Gestalt)는 우리가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지각할 때 떠오르는 어떤 형태(모양)를 말한다. (중략)


루빈의 잔


게슈탈트 심리학의 가장 기초적인 단계의 논의 중 이른바‘착시’라고 불리는 현상들이 있다. 검정 바탕의 회색은 흰색 바탕의 회색보다 밝아 보이고, 루빈의 컵은 마주보는 사람의 얼굴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거의 모든 인쇄물이 그러하듯,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웹사이트의 모습도 확대해 보면 형상을 알아보기 어려운 수많은 픽셀들의 조합이고, 우리가 보는 영화도 착시 효과에 기댄 수많은 정지 장면의 연속이다.


우리는 사물을 서로 다르게, 혹은 사실과 다르게 보는 것일까? 식탁 위의 접시가 완전한 원으로 보이는 경우는 없는데 어떻게 원으로 지각할까? 왜 흰종이는 그 위에 붉은빛을 비추더라도 하얀색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게슈탈트가 사람마다 다른 방법으로 지각되기 때문이다. 루빈의 컵을 볼 때 지각을 결정하는 요인은 그 사람의 지각적 습관에서 나온다.(중략)


우리가 착시를 경험하게 되는 까닭은 우리의 의식이 기본적으로 통일성, 연속성, 유사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웹페이지를 볼 때 만일 동일한 사이트 내에서 페이지를 이동한다면 우리의 의식은 페이지 구성의 통일성, 연속성, 유사성을 요구한다. 대부분의 웹사이트의 인터페이스(특히 그래픽유저인터페이스. GUI)는 이를 기본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전경과 배경


착시 효과에서 조금 더 나아가 ‘전경’ 과 ‘배경’에 대해 살펴보자. 전경은 앞에 떠오르는 형상이고 배경은 전경 이외의 형상이다. 개인은 전경과 배경을 조직화하여 지각의 장(場)을 마련하고 의식 속에 받아들인다. 배고픈 사람은 음식이 전경이 되고 그 이외의 것은 모두 배경이 된다. 개인은 자신의 현재 욕구를 기초로 게슈탈트를 형성하여 지각한다.


Sky and Water


백지에 그려진 원은, 배고픈 이에겐 빵이고, 아이에겐 공이고, 어떤 이에겐 돈으로 지각된다. 개인이 전경으로 떠올렸던 게슈탈트를 해소하고 나면 그 전경은 배경으로 물러나고, 새로운 게슈탈트가 형성되어 전경으로 떠오른다. 미해결 과제는 계속 전경으로 떠올라 새로운 게슈탈트 형성을 방해한다. 미해결 과제를 연기하고 미룰 경우 내 희망과 상관없이 전경으로 계속 떠오르게 되고 이 과정이 반복되면 심리학적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웹사이트를 방문할 경우 우리는 왜 팝업창이나 플래시 배너광고(리치미디어 광고라고도 불림)에 거부감을 갖는 것일까. 나는 해당 페이지의 콘텐츠를 전경으로 인식하려고 하는데, 나의 의도(지각)와는 상관없이 광고나 팝업창이 강제적인 ‘전경’으로 느닷없이 출현하기 때문이다.


어떤 과제(사건)를 완료하는 것을, 떠오른 전경을 배경으로 보내는 과정이라고 볼 때, 완성된 과제보다 미완성된 과제가 기억에 오래 남는 현상을 차이가닉 효과 (Zeigarnik-Effekt) 라고 한다. 개인은 미완결된 상황을 완결 지으려는 경향이 있다.


게슈탈트 심리학에서는 이를 지각 반응의 경제 원리, 즉 절약 원리로 설명한다. 완성된 과제와 미완성된 과제에 기억을 동일한 양으로 배분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것이라, 인간의 지각은 미완성 과제에 기억을 보다 많이 할당함으로써 효율성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블로그나 게시판이나 홈페이지에 어떤 글을 작성했거나 다른 이의 글에 댓글을 남겼을 경우, 이에 대한 다른 네티즌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여러 번 그 페이지를 다시 찾거나 열람하는 것은 일종의 미완성 과제에 대한 기억 효과 때문일 것이다. 만일 만족할 만한 답변이나 댓글이 달렸다면 그 순간 이후 차이가닉 효과는 반감될 것이다.



많은 윈도우를 띄우고 멀티태스킹을 하면서 동시에 여러 명과 동시에 메신저를 하고 있는 네티즌은 전경과 배경을 수시로 바꾸게 된다. 하지만 수많은 윈도우가 떠 있어도 전경은 항상 하나일 뿐이다.(중략)



볼테르의 흉상 혹은 두 명의 수녀


전체는 부분의 합 이상이다.


전경과 배경을 이해하고 나서 이를 확장해 보면, 게슈탈트 심리학의 선언문과도 같은 문구, ‘전체는 부분의 합 이상이다.’ 에 이른다.(중략)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지각되는 각 대상들과의 관계에 주목한다는 말이다. 생활은 ‘관계’로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한 딜타이의 말처럼 말이다. 게슈탈트 심리학이 구조주의 이론과 자주 관련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관계’ 때문이다.


우리는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의 파란(녹색)불을 보고, ‘파랗다’ 라고 인식하는 게 아니라, ‘가도 된다’ 혹은 ‘빨간불이 아님, 정지하지 않아도 됨’ 이라고 인식한다. 바쁜 출근길에 계속 빨간 신호에 걸려서 짜증났던 증권사 직원이 주식 전광판이 온통 빨갛게 점등되는 걸 보고 기분이 좋아진다. 빨간 것이 빨간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모든 것은 결국 관계의 문제이고 맥락의 문제로 수렴되는 것이다.(중략)


게슈탈트 심리학은 ‘차이’와 ‘관계’와 ‘맥락’의 이론이고, ‘통찰’의 학문이다. 웹을 탐험하고 어떤 사이트를 방문하는 과정에서 마주치게 될 게슈탈트가 과연 어떤 관계속에서 내게 ‘전경’으로 떠오르는지 한 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생략되지 않은 원문을 읽고 싶다면 아래 글을 읽어보세요.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8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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