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 부모님이 일을 가시면, 집에 있는 책들은 2~3번씩은 다 읽어,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 텔레비전 밖에 없었다. 텔레비전을 얼마나 많이 봤던지, 아버지가 플러그를 못 꼽게 전용 자물쇠를 만드실 정도였다. 물론 나는 빨대로 자물쇠를 따는 법을 찾아내 아버지가 1주 동안 하신 노력을 무력화시켰다.
그런 나에게 정말 큰 시련의 시기가 있었다. '캐샨'이라는 일본 SF애니메이션을 정말 좋아했는데 애니메이션 하는 시간에 맞춰 TV를 틀었는데 갑자기 작고 까만 아저씨 얼굴 사진과 우울한 장송곡 같은 음악만 계속 나왔다. 한두 시간 기다리면 본방송을 하겠지라고 기다렸지만 3일 정도를 그 화면만 나왔던 것 같다. 지금도 그 회색 화면이 기억날 정도로 그 시절 가장 큰 시련이었다.
2.
초등학생 때는 영등포에 살았는데, 집 근처에 큰 맥주공장이 있었다. 공장에서 운영하는 구단이 우승을 했다고 기념품으로 동네주민들에게 야구공과 맥주잔을 나눠줬다. 살면서 처음으로 받아 보는 거라 기분이 너무 좋아 그 뒤로 그 구단의 팬이 되었다.
몇 년 뒤 올림픽이 우리나라에서 열렸는데 우리나라 선수들이 금메달을 딸 때마다 온 동네가 들썩거렸다. 은메달을 따면 우리들은 크게 탄식을 했고, 선수는 세계 2등을 했음에도 단상에서 울었다.
3.
중학생 때 배가 아파 동네 병의원 3곳을 갔는데 장염이라고 하며 링거를 맞았다. 하루가 지나도 차도가 없어 큰 병원에 갔더니 맹장이 터졌다고 했다. 주사를 맞은 후 한숨 자고 나니 병실에 누워있어 그때는 잘 몰랐는데, 내장을 다 꺼내서 씻어내는 대수술이었다고 한다.
친구들이 병문안을 오면서 책을 사다 줬는데… '성자가 된 청소부'라는 소설을 감명 깊게 읽었고, 로드쇼, 스크린 같은 영화잡지도 실컷 보면서 '입원도 나쁘지 않네'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 한창 열광하던 홍콩영화 '첩혈쌍웅'의 주윤발 브로마이드는 내 침대 위에 걸어두었다.(그 겨울 안 어울리는 하얀 목도리를 한창 하고 다녔던 것 같다.) 틈틈이 앞 삼촌 환자가 두고 간 '선데이서울'의 자극적인 기사와 사진들을 신나게 보고 있었는데, 한 간호사 누나가 ‘얘~ 너 그런 거 보면 안 돼~’라고 해서, 그 뒤로는 그 누나가 근무하지 않을 때만 봤다.
4.
고등학교 때는 '한일슈퍼리그'라는 프로야구 한일 연합팀전이 있었다. 학교 선생님들도 보고 싶었는지 수업시간에 전교가 다 같이 보았는데 우리나라가 일본 연합팀을 이기는 순간, 남학교의 전 교실에서 우렁찬 환호가 울려 퍼졌다. 그때까지 우리나라가 일본이랑 비슷하게 사는 줄 알았었다.
TV에서 시위를 하는 모습이 많이 나왔고 어머니가 대학교 가면 시위 같은 거 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런 것보다 친구들이 가져온 '핫윈드'를 함께 공부하는데 관심이 더 컸었다.
5.
대학교 입학 후, 학교가 명동에서 남산 올라가는 길에 있었는데 선배들이 족구나 농구할 때 공이 옆 건물로 안 넘어가게 조심하라고 했다. 그곳으로 공 찾으러 갔다가 못 돌아올 수 있다고... 나중에 알고 보니 거기가 안기부라는 곳이었다;;;
그 시절 어떤 야권 인사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한다.'며 여당총재를 하더니 결국 대통령이 되었다. 하나회라는 나쁜 조직 같은 걸 없애고,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며 경복궁 앞 총독부 건물을 폭파시키길래 멋진 아저씨라 생각했다.
6.
군대를 다녀오고 취업준비를 할 무렵… 어떤 반항아 형이 오토바이 타는 영화가 나왔다. 그 형이 너무 멋져 한 동안 머리를 길러 눈을 살짝 가리는 스타일을 시도했다. 나의 기대와 달리 주변 사람들은 나를 임창정 쪽에 가깝게 보는 것 같아… 역시 그 형은 넘사벽이란 걸 깨닫고 나는 일로 승부해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어제는 다소 늦게 ‘서울의 봄’을 관람했습니다. 이렇게 화가 나는 역사를 어떻게 그동안 모르고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신군부가 집권하던 시절의 기억을 회상해 보니 3S(Sports, Screen, Sex) 정책으로 대중의 관심을 정치에서 멀어지게 하려던 중심에 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시절 기존 사회에 대한 저항 심리로 ‘김성수’ 감독, ‘정우성’ 주연의 ‘비트’라는 영화가 나오지 않았을까 합니다. 저는 ‘서울의 봄’에서 ‘비트’의 저항심리를 보았습니다. (무모하게 철조망을 넘는 '이태신' 소장의 모습에서 비트에서 달리는 오토바이에서 손을 놓고 눈을 감는 '민'의 모습이 오버랩되더군요.)
‘서울의 봄’을 보며 이렇게 분노했지만... 지금도 특정집단의 이익을 위해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시대의 부조리에 대해서… 나의 편의를 위해 침묵하거나 무시하고 있는 건 아닌지 씁쓸하게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