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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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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선 Oct 21. 2024

[산문] 걷고 또 걸었어

2024.10.15.

늦잠은 자지만, 바지런한 하루를 보내자, 는 컨셉이었어.

12시쯤 집을 나섰다. 점심을 먹고 카페를 갔다가 운동을 했다. 몸무게가 줄지 않는다. 74. 여기서 다시 제동이 걸렸다. 꾸준히 해나가면 또 줄어들겠지. 아주 약간의 스트레스와 더 큰 성취감.

운동을 마치고 카페를 갔다. 요즘 카페에 쓰는 돈이 너무 많아. 그래도 그게 나를 위한 거라 생각해. 돈보다 중요한 게 있지. 처음 가보는 카페로, 보문동에 있는 한옥카페 까쉬. 너무 좋았어. 보문동 근처에 더홈서울이란 카페가 있다. 좋아하는 곳, 종종 가던 곳인데 마감이 일찍이라 이번엔 패스. 그래서 처음 가게 된 까쉬. 다음에 또 가봐야지.

두어시간 글을 쓰고, 길을 나섰다. 성신여대 앞에도 대학로가 있었어. 처음 보는 거리에 조금 설렜다. 대학시절의 추억이 떠올라, 그날의 분위기, 여기도 있는 싸구려 호프집, 닭한마리 간판 같은 것들. 그리워서 이문세의 옛사랑을 틀었다 ~~

그리고 문득 걷고 싶어졌다. 집까지 걸어가자! 핸드폰 배터리가 8% 남았다. 즉흥적이야, 충전을 했어야지! 어쩔 수 없다. 앱을 다 꺼버리고 지도만 열어두곤 걷기 시작했다. 번화가를 지나 골목골목 언덕을 오르고 또 오르고 보문동에 이렇게 언덕이 많은지 몰랐어. 버티고개보다 많아, 언덕에도 아파트가 있고 사람들이 산다. 작은 동산을 오른 것 같아, 꼭대기에 도착하기 전, 배터리가 나갔다.

택시를 탈까, 언덕 위 택시는 보이지 않았지만, 택시가 타고 싶었어. 지하철로 갈까, 배터리가 나가기 전 봐둔 길로만 가면 지하철역이 나온다. 걸었어, 지하철역으로 가면 버스가 있겠지 싶었어. 분명히 지도에 나온 그대로, 직진과 우회전 죄회전을 해서 왔는데. 역이 없다. 간간이 보이는 행인 중 남자분에게, 여자분들은 무서워할 것 같았어 깜깜한 골목에서 땀을 뻘뻘 흘리는 남자가 나타나면 말야, 물었다. "창신역이 근처에 있나요?" 행인분이 내 뒷편을 가리키면서 "아, 버스를 타고 쭉 가야해요" 지나쳤다. 한숨이 나왔어, 그런데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다시 물어보니, 그 언덕을 반대로 쭉 내려가면 동대문이 나온다 했다. 다시 걸었다. 어두운 골목, 미싱기계 소리만 들리는 동대문의 뒷길, 이주온 외국인 노동자의 거주지.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 그 수많은 미싱기계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타지로 날아와 이 늦은 시각 집으로 향하는 저들은 어떤 삶일까. 밝은 목소리로 통화하는 남자, 바닥을 보고 걷는 남자, 여자. 월급은 얼마나 될까, 결혼은 했을까, 살만할까. 때론 의지와 무관하게 살아야 하는 때가 있다. 살아지는 때, 살아내는 때, 지나가는 때. 각 때의 고통은 순간의 감정이라지만, 그 순간은 참 아파서.

긴 내리막을 지나, 평지가 보였다. 내리막에선 조심해야 해. 다리가 다치지 않게. 내리막에선 조심해야 한다. 삶이 편안할 때, 순탄할 때, 쉽다고 느낄 때 조심해야 해. 늘 부상은 거기에서 오니까.

흥인지문이야. 추억이 많은 자리야. 세월이 지나도 지금도 어김없이 찾아오곤 한다. 이제 20분 정도. 집에 갈 수 있어. 예전의 산책코스를 걸었다. 청구역으로, 그리고 집으로. 90분 정도를 걸었어. 조금 더 일찍일 수 있었겠지만, 길을 헤맸어. 지도 없이 걷고 걸어 목적지에 닿은 게 얼마만이야! 깜깜해도 도착하게 돼있어.

모르는 길을 걷는 게 즐겁다. 처음 가보는 길은 설렘을 줘. 어디로 가야 할지, 얼마나 더 거야 할지, 알지 못할 때 앞으로 가야 하는 길에 대한 설렘이 찾아오지. 그래서 여행이 즐거운 거야. 처음이니까, 새로우니까. 여행지가 익숙해지면 더 이상 여행이 아니게 돼. 가지 않을 거야. 처음은, 그런 행복감을 선사해.

깜깜한 길을 간다. 이 길이 맞는지, 거리와 방향에 대한 개념이 없이. 때론 '다른 길로 갔어야 해!' 후회하고. 그 후회가 적절한지, 다른 길과 지금의 길 중 무엇이 더 옳은지, 분명하지 않아도 후회를 해. 정말 다른 길이 더 좋았을 수 있어, 더 평탄하고 빠른 길일 수 있겠지. 혹은 아닐 수도. 그저 보지 못한 것에 대한 막연한 불안, 후회일 지도. 그런데 있잖아, 결국엔 도착해. 원하는 곳이 있다면 말야, 뭐가 더 좋은진 잘 몰라도, 결국에는 도착한단 거야. 그럼 같은 기쁨을 누리겠지. 성취감과 행복을 얻겠지.

몰라도 물어 물어 헤매다 결국엔 도착하는 거야. 깜깜해도 보이지 않아도 말야.

끝을 정해두어야 해. 가고자 하는 목표 지점이 있듯이 말야. 우리가 어디로 갈지, 얼마만큼의 시간을 소요할지 같은 것에 대해, 끝을 정해야 해. 그럼 괜찮을 거니까. 만약 도달하지 못한대도, 다른 지점에 가있겠지. 거기서 어떤 좋은 일을 만날지 몰라. 우연히 간 카페의 향이 너무 좋았던 것처럼 말야. 슬플지도 몰라, 커피가 다 식어버렸다면, 좋아하는 원두가 없다면, 그래도 그래도. 또 다른 카페가 있어. 재즈가 흐르는 잠이 솔솔 오는.

긴 밤을 보내고 있다. 이 밤이 썩 싫진 않지만, 오래 보고 싶진 않아.

내일은 발치를 한다. 성인이 되고 처음인 것 같다. 조금 무서워. 발치 후 지켜야 할 것들이 더 무서워. 그래도 해야지. 턱선이 조금은 날카로워질까? 원래 잿밥이 맛있지.​

2024.10.15.


그 밤의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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