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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tie Oct 24. 2020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베드타임 스토리’

엄마의 목소리로 책 읽어 주기


책을 사랑하는 아이

 

새벽 5시. 잠에서 깨어났다. 살며시 이불 밖으로 몸을 빼내고 거실로 나갔다. 물 한 잔을 마시고 스트레칭을 한 뒤 커피를 내렸다. 블라인드를 살짝 올리고 아직 어둠이 짙은 새벽녘 풍경을 잠시 바라본다. 행여나 큰 소리라도 내어 곤히 잠들어있는 아이들을 깨울 까 봐 까치발을 들고 살금살금 조심스레 숨죽인 새벽 세상을 활보한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마루에 놓여 있는 책꽂이에서 책 한 권을 뽑아 들고 소파에 앉았다. 마루에 켜 놓은 전등 빛 때문이었는지 나도 모르게 낸 소리 때문이었는지 초등학생 3학년인 아들이 잠에서 깨어 방문을 열고 나왔다. 몽롱한 상태로 화장실에 들어가는 아이. 다시 방에 들어가서 자겠거니 생각했는데 부엌으로 가 물을 마시고는 내 옆에 기대고 앉는다. 잠시 그렇게 앉아 있던 아들은 이내 책꽂이로 걸어가 책 몇 권을 뽑아 들고 다시 내 옆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10월의 새벽녘. 어둠 속에 가로등 불빛만 별처럼 빛나는 고요한 그 시간. 아들과 나는 작은 담요를 함께 나누어 덮고 각자의 책을 읽어 내려갔다. 블라인드 사이로 서서히 밝은 빛이 들어와 아침을 알릴 때까지 무려 두 시간 동안 우리는 함께 각자의 독서 시간을 즐겼다. 

 

“이 세상에 책이 없으면 얼마나 지루하고 심심할까? 나는 책이 너무 좋아.”

내 아이는 책을 사랑한다. 아이가 직접 그렇게 말하기도 하지만 아이가 독서하는 모습으로도 알 수 있다. 아이가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그리고 잠들기 직전에 하는 행동은 언제나 같다. 책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책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아이에게 이런 독서 습관을 만들어준 것은 무엇일까.

 



절대 빼먹지 않았던 루틴-베드타임 스토리 


 

아이를 낳고 기르는 동안 한 번도 일을 놓아 본 적이 없다. 직장맘으로 아이를 키우다 보면 놓치는 것들이 참 많다. 엄마와 주로 시간을 보내며 안정적인 애착 관계를 형성할 시기에 아이는 하루의 대부분을 어린이집에서 보내게 되고 직장 생활로 바빠 여유가 없다 보니 여러모로 잘 챙겨주지 못한다. 아이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데 그 과정을 온전히 함께 해 주지 못하는 것 같아 엄마는 항상 미안한 마음이 있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을 위해 오직 엄마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꼭 하나는 해 주고 싶었다. 

그것이 나에게는 '베드타임 스토리'였다.

 

몸을 스스로 뒤집지도 못하던 갓난아이 때부터 우리는 매일 잠들기 전 베드타임 스토리 시간을 가졌다. 하루도 거르지 않도록 엄마가 책을 읽어 줄 수 없는 상황에는 아빠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아이들은 베드타임 스토리 시간을 매일같이 설레며 기다린다. 잘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책꽂이 앞을 서성이며 함께 읽을 책을 고른다. 오늘은 어떤 책을 고를까. 어떤 책을 엄마의 목소리로  들으면 좋을까. 어떤 책을 읽으면서 잠들까. 이 시간에 아이들은 마치 아주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순간에 있는 것 마냥 꽤나 신중하다. 고심 끝에 고른 책을 가지고 따뜻한 이불속에 폭 들어가 몸을 누이고 엄마를 기다린다. 모든 준비가 되면 나는 두 아이를 양 옆에 끼고 책을 읽기 시작한다. 

 

언제부터인지 확실히 모르겠다. 베드타임 스토리는 우리 가족에게 너무 익숙하고 당연히 해야 하는 루틴이 되어 마치 불문율처럼 절대 빼먹을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 있었다. 

어떤 날은 너무 피곤한 나머지 한 번 거를 작정으로 그냥 잠든 척했는데 아이들이 정말 울음을 터트렸다. 한창 일이 바쁠 때에는 책을 읽다가 내가 먼저 잠든 적도 있고, 눈이 반쯤 감겨서 이상한 소리로 읽어 아이들의 원성을 산 적도 있다. 하지만 어찌 됐건 베드타임 스토리를 꼭 해주려고 무단히 애를 써왔다. 

이제 우리 아이들은 모두 초등학생이 되었고, 혼자서 글을 읽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여전히 베드타임스토리 시간을 기다리고 나 또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싶다. 그리고 이 시간이 최대한 길게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아이들이 커 가면서 책의 페이지 수가 많아지고, 그림보다 글의 비중이 더 높아져 한 권을 다 읽으면 목이 아프지만, 책의 페이지 수를 확인하고 더 긴 책을 가져오는 막내 아이를 보면 순간 ‘헉’ 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너~무 피곤해서 빨리 ‘The end’를 외치고 싶은 마음에 몰래 두 장을 넘겼다가 바로 걸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는 이 시간이 정말 좋다. 언제까지 해 줄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최대한 오래오래 아이들에게 베드타임 스토리를 해 주고 싶다. 

 

 

 


 

왜 베드타임 스토리인가 


 

첫째. 내 아이가 평생 독자로 성장한다.


아이가 느낄 감정을 한 번 상상해 보기 바란다. 캄캄한 밤. 방 한 모퉁이에 켜져 있는 노란색 독서 등에서 은은한 불빛이 퍼져 나온다. 폭신한 이불을 덮고 따뜻한 엄마의 품에 안긴다. 사랑한다고 속삭여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따뜻하다. 엄마의 목소리로 책을 들으며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그리고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기분이 좋다. 오늘 꿈속에서는 내가 주인공이 되어 멋진 모험을 펼칠 것만 같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고 보호받고 있는 감정을 좋아한다. 베드타임 스토리 시간을 갖는 아이는 엄마의 따뜻한 품과 목소리를 온전히 느끼며 안락감 속에서 책을 읽는다. 이 시간이 수없이 반복되면 책을 읽는 행위와 엄마와 함께 책을 읽을 때 느꼈던 감정이 하나로 연결된다. 즉, 아이가 성장해 혼자 책을 읽을 때에도 베드타임 스토리에서 느꼈던 그 따뜻한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아이는 그 기분 좋은 따뜻함에 이끌려 책을 더 많이 읽을 것이고 평생 책을 가까이하는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다. 

 

 

둘째. 아이의 듣기 수준과 읽기 수준이 다르다.


아이의 듣기 수준은 읽기 수준보다 훨씬 높다. 즉, 귀로 들을 때 직접 읽는 것보다 더 높은 수준의 텍스트를 이해할 수 있다. 혼자 읽어서는 이해하지 못할 복잡한 이야기도 누군가 읽어 주어 귀로 듣게 되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Read-Aloud Handbook>의 저자 짐 트렐리즈에 따르면 이 두 능력이 같아지는 시기는 중학교 2학년 정도라고 한다. 예를 들어 책을 소리 내어 읽어준다면 지금 초등학생 1학년인 아이는 4학년 수준의 책을 즐길 수 있다. 그러니 듣기 수준과 읽기 수준이 같아질 때까지 최대한 많이 읽어준다면 아이의 어휘력은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다.

 

나는 베드타임 스토리를 할 때 전적으로 아이가 고른 책을 읽지만 일주일 한 두 번 정도는 아이들의  책에 더해 엄마가 읽어주고 싶은 책 하나를 선정하여 조금씩 읽어준다. 그리고 이렇게 엄마가 선택한 책은 거의 대부분 나중에 아이들 스스로가 다시 찾아보는 책 중의 하나가 된다. 위에 언급한 대로 아이의 듣기 수준이 읽기 수준보다 높기 때문에 책을 선정할 때는 언제나 아이의 읽기 수준보다 조금 높은 레벨의 책을 고른다. 글씨가 작고 많을수록, 그림이 적을수록 아이가 스스로 그 책을 직접 고를 확률은 매우 낮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책들은 베드타임 스토리를 통해 조금씩 만나게 해 준다. 그러면 어느덧 그 책은 아이들에게 더 이상 복잡하고 어려운 책이 아니라 재미있는 책으로 다가온다. 

 

 

셋째. 책을 읽는 것은 언어를 배우는 유일한 방법이다. 

 

세계 최고의 언어학자인  크라센 교수는 그의 저서 <크라센의 읽기 혁명>에서 읽기는 언어를 배우는 최상의 방법이 아니라 유일한 방법이며 자발적인 읽기는 유일한 언어 습득법이라고 말한다.  

언어는 규칙이나 단어를 하나씩 익혀서 배우기에는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공부로 배우기가 어렵다고 한다. 문법서와 단어장을 붙잡고 영어 공부를 그토록 해왔건만 아직도 내 영어 수준이 그리 달갑지 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한국어든 영어든 언어를 습득하고 싶다면 읽어야 한다. 그리고 베드타임 스토리는 자발적인 읽기를 이끄는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나는 ‘읽기’를 통해 문법 체계를 습득할 수 있다는 것을 아이가 쓴 글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한국어 문법을 따로 배우지 않았고, 영어 문법도 따로 배우지 않았지만 책을 가까이하고 매일 책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아이가 한국어로 쓴 글과 영어로 쓴 글을 보면 놀랍게도 각각의 언어 문법 체계에 들어맞아 있었다. 

 

한국어 능력이 얼마나 발달되었는지 기초 국어능력 인증시험을 본 적도 없고, 영어 수준을 확인하기 위해 토플 프라이머리 테스트를 본 적도 없다. 그래서 태어날 때부터 만 8세가 될 때까지 해 온 베드타임 스토리의 효과를 객관적인 지표로 입증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이가 한국어든 영어든 언어에 상관없이 책을 가까이하고 즐기는 모습을 매일 보고 있다. 그리고 그걸로 충분하다. 

 



�Image Credit

Image by StockSnap from Pixabay  /Image by 2081671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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