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단계 높은 챕터북으로 넘어가는 비결
아이들의 영어 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상상력의 천재라 불리며 최고의 어린이 책 작가라는 찬사를 받아 온 ‘로알드 달’의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혹은 이름을 모르더라도 로알드 달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대해서는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초콜릿 공장 주인 윌리 웡카, 그리고 초콜릿 속 골든 티켓을 발견한 다섯 명의 어린이가 초콜릿 공장에서 겪는 기상천외하고 유쾌한 모험을 그린 영화. 실제 이 영화에서 괴짜 윌리 웡카의 역할을 메서드급으로 연기했던 배우 조니 뎁도 로알드 달 작가의 열렬한 팬이라고 한다.
우리 집 거실에 있는 책꽂이에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로알드 달의 전집이 식탁 위의 센터피스(centerpiece)처럼 진열되어 있었다. 영어 동화책에 푹 빠져있을 당시, 시간이 날 때마다 영어 서점에 들러 책들을 구경하는 것은 나의 취미였다. 대부분의 서점들은 일 년에 한두 번씩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책들을 구매할 수 있는 이벤트를 진행하였는데 나는 그때마다 그동안 봐 두었던 책들을 한꺼번에 구입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로알드 달의 전집이 할인 진열대에 놓여있는 것을 보았고,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전집을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왔다.
당시 아이는 <Nate the Great>, <Black Lagoon Adventures> 시리즈와 같은 쉬운 수준의 초기 챕터북을 혼자서 즐겨 읽는 단계였고 <Ready, Fredy!> 시리즈 등의 책을 읽어 주면 재미있게 듣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한 동안 그 정도 레벨의 책을 다양하게 읽어왔기 때문에 이제는 조금 더 수준이 높은, 진정한 의미의 챕터북으로 진입할 시기라고 판단하였다.
나는 단연 책장 가운데 항상 자리 잡고 있는 로알드 달의 책을 생각했다. 아이가 로알드 달의 상상력의 세계로 빠져 들어 그 작가의 스토리에서 만날 수 있는 아주 독특한 유쾌함과 짜릿함을 느껴보기를 원했다. 그리고 며칠 뒤 베드타임 스토리 시간에 조금씩 읽어줄 생각으로 그나마 다른 책에 비해 덜 두꺼운 <Fantastic Mr Fox>을 가져와 아이에게 보여 주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쓴 로알드 달 아저씨의 다른 책이라고 소개한 뒤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은 기대감을 한껏 주려고 책의 커버를 보여 주며 막 읽어주려고 하는데 아이는 내 손에 있던 책을 툭 가져가더니 쭉 훑어보고 말했다.
재미없을 것 같아. 다른 책 읽어 줘.
아이들에게 영어 독서를 시킬 때 엄마의 활약이 가장 중요한 시기는 그림책에서 초기 챕터북으로 넘어갈 때와 초기 챕터북에서 글밥이 아주 많은 챕터북으로 넘어갈 때이다. 글씨는 작아지고, 그림의 비중은 확 줄어들고, 책의 두께는 두꺼워지니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거부감을 느낀다. 왠지 지루할 것 같고, 모르는 단어도 너무 많을 것 같고,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너무도 당연한 반응이다. 성인들도 아주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 종류의 책만 읽어 온 사람한테 갑자기 어려운 고전을 들이밀면 거부감이 느껴진다. 그때는 두 가지 대안이 있다. 그 책을 안 읽거나 그 고전을 쉽게 풀이한 해설서 혹은 성인보다는 어린 독자를 대상으로 쉽게 쓰인 책을 먼저 읽는 등의 전략적 접근을 취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경우는 어떠할까?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아이가 전략적 접근을 취하여 어려워 보이는 책을 스스로 읽는 경우는 드물 것 같다. 그냥 안 읽는 것을 택하지 않을까? 그러므로 이때에는 엄마가 전략적으로 가이드를 해 주어야 한다.
한밤 중 이불속에 폭 들어가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 건 언제나 재미있다. 그리고 로알드 달의 스토리는 언제나 긴장감과 유쾌함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 금세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을 갖고 있다. 나는 매일 밤 로알드 달의 책을 한 챕터씩 혼자 읽고 아이들과 침대에 누워 그 날 읽은 챕터에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 한국말로 재미있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을 때, 아이들의 반응이 나타났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아이들은 다음에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무척이나 궁금해했다. 내가 이야기해 주던 책을 직접 갖다 주면서 빨리 다음 챕터를 읽고 이야기해 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다음에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궁금해서 못 견디겠다는 표정으로..........
그러면 그때마다 나는
“알았어, 다음에 무슨 내용이 나올지 진짜 궁금하다. 엄마가 한 번 읽어볼게.”
라고 말한 후 소리 내어 책을 읽어 내려갔다. 베드타임 스토리 때 거부했던 책들을 자연스럽게 READ ALOUD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그렇게 매일 밤 로알드 달의 책을 읽고 이야기해 주었다. <Fantastic Mr Fox>, <Magic Finger>, <The Giraffe and the Pelly and ME>, <George's Marvellous Medicine>, <James and the Giant Peach> <Matilda>까지 꽤 많은 책을 읽고 나니 아이는 전집에 있는 다른 책들에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학교에서 선생님이 로얄드 달의 책을 아이들에게 읽어주셨는데 엄마와 매일 밤 함께 읽었던 작가의 책을 선생님께서 읽어주신 게 매우 신기하고 기쁜 일인 것 마냥 학교에서 오자마자 책꽂이로 달려가 그 책을 뽑아 들었고, 선생님께서 읽어 주시지 않은 뒷부분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어느 날 오후, 아이가 소파에 엎드려 혼자 책을 읽고 모습을 보았다.
아이의 손에는 로알드 달의 책 <Matilda>가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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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amkhor from Pixabay / Sofía López Olalde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