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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동훈 Nov 13. 2019

군함도의 유네스코 등재와 해결하지 못한 역사문제

군함도 바로 알기 프로젝트 3

하시마섬의 실체



1. 등장 배경

군함도란 일본 나가사키 현 나가사키 시에 있는 무인도였다. 19세기에 석탄의 존재가 확인되었고, 1890년대부터 미쓰비시 재벌의 소유가 되었다. 석탄 채굴을 위해 주위를 매립하였고 다이쇼 시대 이후에는 철근 콘크리트조의 주택이 건설되었다. 이의 외형이 군함과 같다 하여 하시마 섬은 군함도라는 별칭이 붙게 되었다. 군함도에서는 품질이 좋은 강점탄이 채굴되어 인접해 있는 다카시마 탄광과 더불어 일본의 근대화를 지지해온 탄광 중 하나였다.



1941년에는 중일 전쟁이 일어나고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 석탄을 생산할 인구수가 부족하자, 일본 정부는 한국에 실시된 '국가 총동원법'을 통해 한국의 젊은이들을 강제 동원했다. 그들은 하루 12시간씩 탄광에서 노역을 했다. 1960년 이후 에너지 구조가 석유 중심으로 바뀌어감에 따라 쇠퇴의 길을 걸었으며, 1974년 1월 15일 폐산 한 후, 무인도가 되었다. 일본은 방치해 두었던 군함도를 메이지 시대의 산업화를 일구어 낼 수 있게 초석 역할을 한 역사적인 기구라며 유네스코에 등재시켰다. 이렇게 좋은 목적을 가진 기구가 왜 한국을 비롯해 중국 등의 반대를 받는 걸까?



2. 한, 중 두 국가가 유네스코 등재에 반대하는 이유

한국, 중국이 하시마섬의 유네스코 등재에 반대하는 이유는 바로 산업화를 일구기 위해 자행했던 ‘반인륜적 행위’에 있다. 조선인들과 중국인들을 강제 징용한 데 모자라 임금 역시 제대로 지불하지 않았다. 또한 12시간 강제 의무 노동과 허리를 채 펴지 못하는 통로, 옆으로 기어서 들어가 석탄을 채굴하는 갱도와 열악하다 못해 참담한 노동환경과 인권이라는 것을 존중받지 못하는 학대, 무차별 폭행은 노동자들의 몸과 마음을 병들어 가게 했다. 일본은 산업화라는 찬란한 빛으로 강제 징용의 어두운 면을 감추려 하였고 결국은 성공했다. 이에 울분을 느낀 한국과 중국의 컴플레인에도 불구하고 등재는 이루어져 왔다.

3. 유네스코 등재와 현실



하시마섬의 유네스코 등재에 관해 한국과 일본 정부의 갈등이 심해지면서 유네스코 문화유산 자문기관 ICOMOS ICOMOS : 국제 기념물 유적 협의회

에서는 이 문제로 인한 위원회 내부의 분열을 우려하여 일본에게 강제노역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권고했다. 이에 일본은 등재 이전에는 수긍하는 척하며 조선인 강제노동 사실을 포함시켰지만 등재하고 난 후에는 ‘forced to work'라는 문장은 강제 노동의 의미가 없는 문장이라며 등재 사실에서 조선인 강제노동 사실을 아예 빼버리는 꼼수를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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