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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문평 Aug 09. 2024

열아홉 여군대령

02. 태교

  나, 제갈미정은 태어나 보니 아빠는 육군 대위였, 엄마는 중대장 사모님이었다. 아빠 전출명령에 이사를 했다. 취학 전은 상관없었으나 신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 이후 김포청솔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전학은 정말 싫었다. 인생이 꽃길만이 아니라 형극의 길도 있다는 것을 소싯적에 터득했다. 비유하<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기분>이랄까 통일전망대가 있는 명파 군인관사에서 잉태되었다.


 뱃속에서 충성! 소리를 듣고 자랐다. 보통 엄마들은 임신하면 좋은 음악을 들으며 과일을 먹어도 좋은 것 만 먹고 꽃을 봐도 가시 돋친 선인장은 안 보고 예쁜 장미를 본다고 하는명파에서 과일구경도 꽃구경도 못했다. 눈을 뜨면 군가와 충성! 구호 소리를 들었다. 군인 아저씨들이 관사 주변 제초작업 을 하면서 엄마에게 사모님! 하고 부르고 목마르다고 냉수 컵만 주세요라 하면 냉수와 아이스크림을 한  퍼주었다. 소문이 나자 아빠는 9 중대장인데 10중대, 11군인 우리 관사에 제초작업을 하러 왔다. 중대 분을 모르는 엄마는 똑같은 병사로 생각해 물과 아이스크림을 대접했다. 명파관사 장고  아이스크림이 바닐 , 초코 두 종류가 김치 냉장고에 김치보다 많이 있었다. 외할아버가 아이스크림 사에 근무하 에 직원가로 해 보냈다. 뱃속에 50자랐다. 순서가 바뀌었지만 나의 탄생일이 11월 20인데 엄마, 아빠 결혼일은 그해 5월 5일이었 다.  어려서는 모르고 지냈다. 중학생이 되어 과학 시간에 정자와 난자를 배웠다. 수태되고 285일이 출산일이라 는 것을 배웠다. 달력 말년 병장 X표 치듯이 역산으로 285일을 뺐다. 2월 13일이 나왔다. 그렇게 아빠를 쥐 잡듯 하는 엄마가 속도위반것은 충격이었다.  어떻게 물어봐야 엄마가 성질 안 내고 대답을 해줄까 고민하였다. 여자들이 속도위반을  때는 자신도 같이하고서는 나중에 문제 되면 남자에게 뒤집어 씌운다. 어떤 말에도 엄마는 성질낼 것이 뻔했다. 아빠에게 물어봤다. 엄마 없을 때 물었다.


  "아빠 내 생일이 11월 20일인데 어떻게 결혼식은 5월 5일이야?" 

  "딸 과학시간에 285일 배웠어?"

  "배웠으니까 물어보는 거야. 종호는 아직 몰라."

  "그래. 종호에게는 말하지 말고 너만 알고 있어."

  "응."

  "딸 통일전망대 알지?"

  "응, 기 근무할 때 결혼했잖아요?"


그래. 원래는 전년도 10월 2일이 양가 어른들이 정해준 결혼일이었다. 청첩장까지 다 만들었는 데, 철책선 통일전망대를 맡게 되었다. 아빠는 3대대 9 중대장인데, 2 대대장이 보직이 끝나 이취임식을 한다고 3대대가 먼저 철책에 들어가 고 3대대가 내년 4월에 철수하고 2대대가 철책에 들어가라는 사단장 명령이었다.

하는 수 없이 결혼식을 다음 해 5월 5일로 연기했다. 미혼 중대장은 철책 6개월에 딱 1회 외박  데 2월 13일 외박을 나와 엄마랑 경포대에서 보냈다. 그리고 철책에서 철수해 5월 5일 결혼했다. 


  군대에 전설처럼 내려온 말이 사격장에서 '오발은 명중'이라는 말이 있는데 외박 나와 엄마랑 한 것이 명중되었다고 하면 서 아빠 귀가 빨개졌다. 동해바다 푸른 물결과 대청의 높은 정기를 더 받고 싶어도 통일전망대 중대장을 마치고 상급부대 명령에 따라 부산 해운 3 경비 중 대장이 되었다. 부산으로 이사를 했다. 

  요즘은 군인들 포장이사를 하지만 그 시절 은 대한통운 8톤 트럭으로 이사했다. 7번 국를 타  엄마가 운전을 하고 조수석에서 엄마가 물! 하면 물을 챙겨주고 껌! 하면 껌을 챙겨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보통아빠들이 운전하고 엄마가 조수석에 타는데, 우리 집은 뱃속에부터 엄마와 내가 운전석을 차지했다. 

운전을 부대 운전병이 해준다는 이유로 엄마가 했다. 면허증은 있으나  엄마가 운전하고 아빠는 조수석에 앉았다. 운전하는 여자에게 귤을 까서 입에 넣어주는 것을 반대 차선에서 보거나 옆차선에서 보는 사람은 운전을 얼마나 잘하기에 여자에게 운전을 시키고 좌회전, 직진, 우회전, 브레이크라고 주둥이로만 하고 귤이나 까서 입에 넣어 감탄과 부러움을 더해 시기심으로 보겠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들려주겠다. 


 대학생 시절 아르바이트로 건설일용직 현장에서 11명 타는 승합차에 10명을 태우고 당진으로 일을 갔었다. 일하는 중간에 팀장이 음주 운전으로 면허취소가 되었다. 계약된 일감을 포기할 수 없었다. 팀에 한국인은 팀장과 아빠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외국인 근로자였고 운전 면허증도 없었다. 운전면허만 있지 도로연 했다고 하니 팀장이 옆에서 코치해 준다  걱정 말고 운전하라고 했다. 남구로 인력 사무 실에서 당진까지 내려가는 것은 그럭저럭 내려갔다. 주민등제출하고 혈압을 측정해서 11명 모두 공사 현장 출입승인을 받았다. 일요일은 공사감독을 할 사람이 없다고 쉬고 월요일에 오라고 했다. 숙소에서 토요일 밤과 일요일을 보내고 월요 일에 공사현장에 갔다.

  서울서 당진까지 내려오는 고속도로와 국도를 운전하고 서울 시내를 빠져나간 운전이 도움이 되었다. 서울 빠져나가 고속도로 진입한 것에 비하면 당진 <우리장 모텔>에서 공사현장까지 운전은 식은 죽 먹기였다. 운전이 맘에 들어 는 지 팀장은 조수석에 외국인 근로를 앉게 하고 팀장은 간격이 넓은 중간 석으로 이동했 다. 숙소를 떠날 때는 맑았는데 현장에서 출입 카드를 찍고, 아침을 먹고, 안전 조회 장으로 갔다. 안전과장이 이동식 앰프와 무선 마이크를 들고 안전조회장으로 왔다.  안전 조회장에 철근, 비계, 동바리, 목수 1, 2, 3팀, 해체, 정리, 하스 리, 직영까지 오와 열을 맞추고 체조를 마쳤다.

  조용하던 하늘이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내렸다. 현장소장이 마이크를 잡고 지하에서 일하는  제외하모두 퇴근하라고 했다. 근로기 법에 의거 0.5 공수를 준다고 했다. 0.5 공수 11명 일당을 받고 숙소로 오는데 팀장  이 시간에 숙소로 가봐야 할 일이 없다고 해변 회센터로 가자고 했다. 언덕을 올라 내리막에서 중간에 빨간불을 만났다.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것이 급한 맘에 악세레터를 밟았다. 하필 앞차는 1톤 트럭이었는데 유리를 실어 유리 공사를 해주는 납품업자였다. 얼마나 세게 받았는지 승합차 라디에이터가 찌그러지고 유리를 실은 적재함 앞으로 찌그러 들었고 밧줄에 묶인 대유리 가 금이 갔다. 차량이야 보험 처리를 했지만 유리 값과 그 차랑 수리 마칠 동안 일 못하는 것을 신고된 연수입을 일당으로 환산해 물어 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던 것은 같은 공사현장 유리업자였기에 덤터기를 안 쓰고 실비만 받았다.


 그 후로는 운전면허증 갱신만 했지 운전을 안 했다. 정비공장에 1톤 트럭 수리비 정산을 하고 합의하기 위해 갔는데, 정비공장에 승합차와 대각으로 주차한 흰색 소나타를 후진으로 받았다. 그것도 팀장이 물어 주었다.

  부산 수영군인아파트는 13평이었다. 전방 독립중대장 관사는 관사 옆에 공터도 많아 살림살이를 외부에도 보관해서 좁은 줄 모르고 살다 가 수영군인아파트는 좁아서 살림살이를 다   수가 없었다. 먹고사는데 필요한 그릇만 몇 개 꺼내고 나머지는 방 한 칸에 그냥 쌓아놓고 살았다.  나, 태어나기 전에 이사하다 보니  이삿집을 풀어 한 번도 사용 안 한 것을 다시 싸는 경험을 했기에 이사 박스에 이름표를 부착하고, 이름표만 보면 풀어서 사용할 것인지 박스로 보관하다 이사갈 때 박스로 실을 것인지 판단다. 이사할 때마다 그릇 몇 개와 거울 한 개는 깨졌다.

  처음에는 깨진 그릇 깨진 거울에 화를 냈으나 몇 번 이사 후에는 적응이 되어 득도한 스님처럼 그릇이 깨져도 거울이 박살 나도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모르는 사람 엄마천사 사모님으 생각했다. 아빠와 나만 <선우선미>라고 쓰고 <크산티>로 읽는다. 하여튼 엄마는 아빠를 너무 쥐 잡듯이 잡았고 아빠는 늘 당하고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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