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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문평 Aug 12. 2024

열아홉 여군대령

05. 항공관사의 추억

  신읍 초등학교 병설유치원부터  김포청솔고등학교 때까지 군인아파트를  민영아파트에 사는 학생들이 <거지아파트>불렀다. 처음에는 울었다. 집에 와서  군인아파트 고 민영아파트에 살자고 했다. 아빠는 딸에게 미안해. 딸이 태어나기 전에 돈을 많이 벌었어야 하는데, 군인관사가 전국 어디를 가도 다 있다는 육군본부 말에 속아서  민영아파트 구할 돈을 전부 동기랑 술을 마시느라 구입을 못했다.  친구들이 군인아파트를 거지아파트라고 놀리면 그래, 우린 거지  트에 산다. 거지아파트 살 면서 우리 아빠가 총을 들고 나라 지키는 것에 민영아파트에 사는 부모들이 감사해야 해라고  말해보라고 해. 알았지? 우리 딸! 하면서 안아주었다. 까칠까칠한 수염을 얼굴에 문질렀다.  징그러워, 아 징그러워하면서 엄마에게 도망쳤다. 아빠가 해준 말을 온천지 전학 가는 곳마다 <거지아파트>에 사는 애라고 놀리면 그 말을 해주었다. 신기한 것은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불의는 정의를 이길 수 없다는 아빠말처럼 그 말을 해주면 <군인아파트><거지아파트>로 놀리는 말이 쑥 들어갔다. 

가납리 항공관사 1호는 수영군인아파트, 포천진군 아파 트, 간성동호리 군인아파트, 명파군인관사는 모두 13평이거나 15평이었는데, 가납리 항공 관사 1호는 22평이었다. 넓고 집 주변 잔디밭과 살구나무, 앵두나무, 포도나무, 감나무가 관사에 울타리처럼 있어서 좋았다. 앵두가 빨갛게 익으면 따서 가방에 넣고 가납초등학교 5학년 친구들과 담임 선생님과 나누어 먹었다. 살구가 노랗게 익으면 살구를 따서 나누어 먹었다. 내 인생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가납리 비행장 시절이다.


   어린 시절은 <계급이 깡패> 뜻을 몰랐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계급이 깡패인 것을 터득했다. 똑같은 잘못을 해도 잘 사는 집 애들이거나 부모의 지위가 높은 집 애들은 선생들이 야단을 쳐도 심하게 안 했다. 그놈 진급이 뭔지 아빠와 엄마는 진급을 위해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사람처럼 처신했다. 비행장 안에는 육군 헬리콥터 부대와 아빠가 지휘하는 무인항공기부대가 한울타리 안에 있었다. 아빠도 육군 소령이고 육군항공 중대장도 육군 소령이었다. 다만 육군항공 소령이 4년 선임이었다. 비행장활주로는 2,000미터였다. 비행이 없는 휴일에 아빠가 자전거를 가르쳐주었다. 페달을 밟는 것을 알려주고 뒤에서 잡아줄 테니 힘껏 페달을 밟으라고 했다. 활주로 중간쯤에서 손을 놓은 줄도 모르고 계속 페달을 밟았다. 직진으로 달리는 것만 배웠지 좌우회 전이나 브레이크와 정지를 안 배운 태서 활주로 끝까지 달려 담장을 들이받았다. 다리와 팔이 아스팔트에 긁혀 타박상을 입었다. 대공초소에서 근무하던 군인 아저씨가 중대장님 따님이 자전거로 담장을 들이받아 다쳤다고 의무병은 구급낭을 들고 활주로 북단으로 가라고 보고했다. 아빠도 달려오고 위생병도 달려왔다. 위생병이 응급조치를 마치자 고맙다 고 했다. 위생병이 충성! 하고 돌아가자  딸 미안해. 저쪽에서 회전과 브레이크를 먼저 가르치고 달렸으면 안 다쳤을 텐데 아빠가 자전거 교수법 순서가 틀렸다. 정말 미안해라고 했다. 아니야, 아빠 자전거 빨리 배우게 해 줘 고마워. 나 커도 시집 안 가고 아빠랑 살면서 엄마가 아빠 야단치면 못하게 해 줄게. 약속! 하면서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넓고 긴 활주로를 혼자 힘껏 달리고 힘이 지면 천천히 달렸다. 해가 지고 관사에 왔더니 다리와 팔뚝에 빨강약이 발라지고 거즈를 붙인 것을 보더니 엄마가 왜 그래? 물었다. 자전거를 가르치 는데 앞으로 가는 것만 가르치고 뒤에서 잡아 주다가 활주로 중간에서 놓쳤어. 딸은 혼자 달려 활주로 북단 담장을 들이받고 대공초소 근무자 가 상황실에 연락해 위생병이 조치해 준 거야. 당신 바보야? 뭔 바보? 아니, 생각해 봐? 자전거를 가르치면 안전 주의사항부터 가르치고 직진, 회전, 정지를 가르치고 활주로로 나가야지 직진만 가르치고 활주로로 나가는 게 말이 돼? 엄마, 그만해! 자전거 배운 건 나지 엄마야? 배우는  기쁨에 타박상 에도 아픈 줄 몰랐어. 그리고 아빠가 직진만 가르친 것이 어때서 배우는 내가 잘 배웠으면 최고의 자전거 선생님이지 그런 엄마는 왜 자전거 진작 안 가르쳐주었는데? 워낙 강하게 나가니까 아빠가 크산티페라고 별명을 붙인 엄마도 더 이상 말없이 부엌으로 피하더니 저녁 준비를 했다.

   가납리 비행장 시절이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으나 아빠는 인생에 가장 힘든 시기였다. 무인항공기는 비행체 한대가 200억이었다. 그런 비행체 5대면 1,000억이 부대 재산이었다. 매년 재산의 10%가 수리 정비 예산이 배정되었다. 요즘도 방위산업비리가 종종 터져 뉴스에 나오지만 뉴스에 나오는 것은 아주 큰 것만 보도되는 것이고, 군대서 쉬쉬하고 넘어가는 것은 보도되는 것의 20배는 된다. 이건 젖 먹던 시절 이야기인데 지금 해운대 송정 아파트단젖병을 물던 시절은 200만 평 탄약부대였다. 그 울타리에 경보기를 설치 기 전에 400미터를 시험평가를 했다. 사람이 지나가도 울리고 개나 고양이가 지나 도 울리고 바람만 불어도 울렸다. <군납불가>로 보고했다가 정작처장 대령에게 군홧발로 차이고 나서 <군납적격> 보고를 했다. 그런 군납비리를 소싯적에 목격한지라 가납리에서도 수리부속 영수증을 가라 정리할까 봐 가슴 졸였다. 임기 2년 동안 수리부속을 정품으로만 구입했다. 상급 지휘관이 수리정비비 차익금을 요구하면 정품구입 영수증과 정품 수리부속 1개를 샘플로 보여주고 차익금 없다고 했다. 그렇게 상급 지휘관과 팽팽하게 지내던 어느날 비행을 잘 마친 무인항공기가 비행장 안으로 복귀하던 중에 항공관사 50미터 전방 논에 추락했다.  50미터 더 날아와 관사에 추락했다면 군인인 아빠와 학생인 나랑 동생은 무사했고, 전업주부 엄마무인항공기 추락사로 희생되었을지 모른다. 즉시 상급지휘관과 군단정보참모에게 보고했다. 

  "충성! 무인항공중대장 제갈 소령입니다." 

  "야. 뭔 일이야? 난 제갈 소령 전화만 오면 겁난다."

  "예. 참모님 비행체 296호기가 비행 마치고 복귀하다 제 관사 50미터 남방 논에 추락했습니다. 지금 꺼내면 지나가는 차량 정체되고 언론에 보도될까 봐 일단 반투명 천으로 가리고 논 임자에게 사정 이야기하고 벼 쓰러진 것은 꺼낸 후 세워주겠다고 하겠습니다."

  "이유가 뭐야? 조사해 봐야 알겠지만 전파간섭 아닐까 의심됩니다. 왜냐하면 100킬로 멀리 촬영 마치고 조종사 내부조종사가 외부조종사에게 통제권 넘겼습니다. 이상 없이 외부조종사 조종간으로 통제했는데 가끔 1초씩 신호가 안 먹힌다고 보고했습니다. 야, 제갈 소령 전파가 눈에 안 보이는데 뭘로 증명하냐? 일단 비행체 꺼내고 전령 전으로 보고하겠습니다. 전령전 받아보시고 통화하시죠?"

  "그래. 해지면 나도 가납리로 넘어갈 테니 절대 언론에 노출 안 되게 잘해라?"

  " 예. 알겠습니다. 충성!"

  정보참모 정상수 대령은 아빠에게 귀인이었다. 군대생활하면서 아빠가 바르게 일하고도 욕먹는 일이 생기면 팔을 걷어붙이고 제갈상길 소령을 응원했다. 가장 큰 도움은 정보사령부에 있을 때였다. 요즘 정보사령부 흑색요원들 명단이 북한으로 넘어갔다고 난리다. 정보사령관 소장과 흑색요원 최고 책임자 준장 사이에 맞고소군대가 개판이다. 제갈상길 대위가 정보사령부에 전입을 갔다. 인사처장과 인사과장이 흑색요원으로 보직을 부여하려고 했다. 정보처에 근무하던 정상수 중령이 제갈상길 대위는 소대장과 중대장은 두 번에 군수사령부 의장대장까지 지휘관으로만 지낸 장교를 흑색요원으로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하면 되겠냐고 해서 흑색정보요원을 화이트 정보를 시켰다. 흑색으로 갔다면 아빠 인생도 <흑금성> 옆 <자금성>이나 <양자강>이 되었을지  모르고 나도 다른 여자 몸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정 대령은 아빠의 귀인도 되고 나의 귀인도 되었다.

   논에서 무인항공기 비행체를 꺼냈다. 양주경찰 서에 의뢰해서 논에 비행체가 추락한 것을 꺼내 야 하는데 군인이 차량 통제하면 민간인들 거부 감 생길지 모르니 한 시간이면 꺼내고 벼를 세워 줄 수 있으니 통제 부탁드린다고 전화를 했다. 불시착이라고 보고했다. 우리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무인항공기 추락>보다는 <무인항공기 불시착>이라고 하면 어차피 논바닥에 떨어졌다는 이지만 받아보는 상급자들이 덜 놀랄 것이다. 긴급상황에 이런 표현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면 엄마가 맨날 원고지만 쓰면 뭐 하냐고 군인이 군대서 진급할 노력을 해야지 원고지에서 쌀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고 야단치것은 몰라도 너무 몰랐다. 

  무인항공기 논에 추락해 경찰 도움을 받아 꺼내는 이 상황에 <무인항공기 추락 보고>라고 보통 사람이 보고할 것을 <무인항공기 불시착 보고> 얼마나 멋있고 안정감 주는 보고인가? 난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였지만 원고지에서 쌀도 안 나오고 돈도 안 나오지만 원고지에 초안 쓰는 아빠가 멋있었다. 이건 청주사대 국어교육과 졸업생이라고 다 이런 표현 나오는 것이 아니다. 구룡문학 에 <대홍수>로 입상한 력 있으니 경황없는 상황에도 그런 제목뽑을 있었다. 


수신: 군단장

참조: 정보참모

발신: 정보대대 무인항공중대장

내용: 무인항공기 불시착(보고)


200X 년 7월 27일 무인항공기 296호기를 오전 10시에 이륙 기 보고 드린 임무구역 흑금성. 자금성, 자이언트, 린다김 구역을 촬영하였습니다. 복귀하던 중 11시 48분 가납리 비행장 남단 항공관사 전방 50미터 지점 논에 불시착하였습니다. 정보대대장과 군단정보참모에게 유선 보고하고 언론에 노출 안되게 무인항공기를 논에서 꺼내 정비고에 보관 중입니다.


건의사항

내부조종사와 외부조종사 간에 조정통제 인계인수는 이상 없었으나 외부조종사가 원거리에서 비행장 상공까지 거리를 좁히는 중에 1초씩 2회 신호중단 경고등이 켜졌습니다. 비행체를 한국항공우주산업에 보내 정비 후 시험비행 합격 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1초씩 2회 신호중단이 있었기에 정보통신부 주파수점검단에 의뢰 가납리 비행장 주변 주파수 점검 후 무인항공기가 사용하는 주파수 대역과 근접한 주파수 허가된 것이 있으면 재교부하여 멀리 이격 바랍니다. 끝.


보고자 군단정보대대 무인항공중대장  소령 제갈상길 (서명)


이 얼마나 불시착은 죄송하지만 주파수 감사를 안 할 수없게 하는 한 장의 보고서가 너무 감탄스러웠다. 군단으로 보낸 공문을 기초로 육군본부에서 국방부를 경유 가납리 일대 주파수 삼사가 내려왔다. 9월 1일  정보통신부 산하 전파관리소 주파수 감사단이 미니버스로 가납리 비행장에 도착했다.


  부대 현관에서 감사관들을 영접했다.


충성!

무인항공중대장 소령 제갈상길입니다. 부대방문을 전장병과 함께 환영합니다. 반갑습니다. 정보통신부 주파수 관리과장 서기관 정흥재입니다. 직원들 소개하겠습니다. 주파수 기획담당 사무관 정일성입니다. 이분은 주파수 측정 담당 이흔정 주사입니다. 이분은 주파수 충돌시험 담당 서석배 주사입니다. 이분은 주파수 승인담당 김길수 주사입니다. 이분은 행정업무 배순훈 주사입니다. 이분은 신규주파수 관리 강학수 주사입니다. 정일성 사무관이 소대장님 여기 계십니까? 저 전령하면서 사단음어대회 1등 한 정일성입니다. 반갑습니다. 버스에서 중대장님 어디서 뵌 분 같은데 생각했는데 명찰보고 전설의 제갈상길 소위인 걸 알았습니다. 정 서기관님 제가 철원서 군대생활할 때 우리 소대장입니다. 소대장 오자마자 음어판을 먼저 외우고 저보고 외우라고 하더군요. 음어판 보고 무전만 치면 되지 왜 외우라고 하나 하면서도 소대장님이 먼저 외웠다고 자랑하는데 일병이 안 외울 수 없어 외웠어요. 그런데 한 달 후 사단 음어대회가 있다고 공지한 겁니다.

  서로 음어를 외웠으니 군가도 음어로 쓰고 국방일보 사설도 음어로 쓰고 바로 채점이 되는 겁니다. 일병이 사단 음어대회 나갔는데 다흔 연대나 직할대는 다 병장이 선수인데 일병이 1등 했어요. 포상휴가 다녀오니 소대장님은 신병교육대로 전출 가셨더군요. 주파수 감사단은 점심을 부대식당서 함께 먹고 하루 종일 가납리 비행장을 통과하는 모든 주파수를 체크했다. 공군 레이더 부대서 발사되는 주파수가 무인항공기 사용주파수와 근접 대역인 것을 찾았다. 감사관 2명이 바로 공군 레이더 부대로 갔다. 레이더 부대의 송출 주파수를 다 측정하고 왔다. 주파수 감사단이 돌아가고 회신 공문이 왔다. 공군레이더부대의 인가된 주파수를 취소하고 새 주파수를 무인항공기 사용 대역과 멀리 떨어진 대역으로 인가했다는 내용이었다. 힘든 무인항공기부대장을 2년을 하고 3 군지역의 근무한도가 차서 1군으로 이동했다. 강원도 양양에서 중학 1학년이 되었다. 선우선미는 이 촌구석에서 공부시키면 애들 인생 망치는 엄마가 된다고 서울에 전세를 얻어서 애들 공부시킬 테니 당신 혼자 양양군단에 근무하고 휴가 때나 서울 올라오라고 했다.

  남매는 서울에서 비교적 전세가 싼 강북구에 방 2개 부엌이 있는 단독주택 아래층에 전세살이를 했다. 제갈상길 소령은 양양 일출 아파트를 반납하고 독신자 숙소 하나를 배정받았다. 양양에서 서울로 이사 오는 것은 아빠 전출 명령과 관련 없는 이사라 이사비용을 자비로 했다. 여기서도 전학 온 다음날 학교 1짱이 수업 마치고 남으라고 했다. 남았다. 1,2,3 짱들과 구경꾼 일반학생들이 학교 등나무 그늘로 모였다. 학교 경비와 청소하는 분이 사용하고 세워둔 플라스틱 빗자루와 쓰레받기 대형 종장제 봉투가 등나무 그늘 입구에 있었다.

  태권도를 좀 배웠는지 발차기를 좌우로 하니 구경하는 애들이 와~했다. 뒤로 물러서면 약하게 보이기에 다가섰다. 발차기는 나도 발로 막았다. 손으로 머리를 끄집으려는 것을 그녀 손목을 잡아챘다. 일단 잡아보면 안다. 나보다 악력이 약하다는 것을 감이 왔다. 손목을 잡아끌고 등나무그늘 입구 대형 쓰레기 종량제 봉투에 밀어 처박았다. 라스틱 빗자루를 거꾸로 잡고 왕년에 파랑새 검도장에서 죽도 휘두르듯이 머리와 손목 옆구리를 골고루 팼다. 말없이 항복할 때까지 팼다. 제갈상길 소령이 소대원 왕선임이 이실직고하고 구타의 명소로 안내받았듯이 그냥 말없이 팼다. 아빠는 보통은 천사표 소대장이나  화가 나면 악마도 그런 악마가 없듯이 팼다. 누가 신고했는지 경찰차가 왔다. 강북경찰서에 잡혀갔다. 1 짱은 정형외과로 119 앰뷸런스로 실려갔다.

 진술서 쓰라고 해서 썼다. 강원도 양양 촌구석에서 전학 왔다. 이 학교 1 짱이라고 수업 마치고 남으라고 해서 남았다. 태권도를 배웠는지 발차기로 내 얼굴을 가격했다. 얼굴에 신발자국을 보라. 마침 등나무 그늘 입구에 쓰레기 대형 봉투와 플라스틱 빗자루가 있어 파랑새 검도장에서 전국 어린이 검도대회 우승 실력을 모처럼 발휘했다. 처벌하려면 1짱과 나를 함께 처벌하라. 그거 아니면 우리 아빠 고향이고 할아버지가 계신 강원도 횡성군 강림면 강림중학교로 전학을 가겠다고 진술했다. 1 짱의 아버지는 검사였다. 아버지가 검사라는 위세로 1 짱 깜량도 안 되는 것이 강북구에서 초등학생 시절부터 중학생까지 깝죽거리다 에게 처음으로 혼난 것이다. 하필 그때 동해안 잠수정 사건이 터져서 경찰서에 1 짱 아버지 검사는 왔는데 제갈상길은 못 오고 선우선미 여사가 경찰서에 왔다. 경찰서에서 진술서를 보고도 경찰 놈은 맞은 애 아버지가 검사라고 나를 죄인 취급했다. 선우선미 가 여보세요? 전학 온 학생에게 싸움 건 애가 잘못이지 우리 미정이는 법적 용어로 정당방위야. 여기서도 무검유죄 유검무죄니 어디 한번 대법까지 가자? 하면서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미정이가 전학 오자마자 여기 1 짱이라는 애와 싸워서 강북경찰서에 잡혀왔는데, 맞은 애 아버지가 검사라고 경찰이 미정이를 완전 죄인 취급하는데 당신 서울 좀 올래요? 뉴스도 안 봐? 강릉 잠수정 침투 시건으로 강원도 전체가 <진돗개 하나> 발령인데 어떻게 가? 미정이 경찰서 진술이 어디 한둘이야? 전학 가면 바로 일주일 내에 경찰서를 가서 진술서 쓰고 부모가 합의하고 신원보증하고 데려왔지? 이번에는 맞은 애 아버지가 검사야 검사? 검사 할아비라도 우리 미정이가 먼저 때릴 리가 없이 일단 한 대 맞아주고 손목 부러뜨린 것은 대법원 가도 이겨! 니기미 강북구도 유검무죄 무검유죄냐? 강남이면 모를까 못 사는 강북구도 유검무죄 무검유죄병에 걸렸어? 검사 새끼에게 말해 미정이 아버지 제갈상길 정보소령이라고 니들 검사 놈들 파렴치를 웬만한 것은 다 알고 있다고. 정보장교라고 <흑금성>만큼은 아니지만 북한 통치자와 남한 통치자의 비밀을 검사나부랭이보다 많이 알고 있다고. 니들 마약장사 뒷배 봐준 거 다 알지만 입 다물고 지내는 정보장교라고 말해봐? 북한 잠수정이 꽁치어망에 걸려 물개들이 호랑이, 여우, 늑대가 활개치고 하늘에는 독수리가 날아다니는 육상으로 도망갔다. 아빠는 북한군이 해군이지만 도주거리를 하루 16킬로미터로 한정한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해군이지만 정찰국 소속이라 육군의 특수훈련을 다 받은 후에 잠수함에 탔다. 우리나라 공수부대원이 가벼운 배낭에 소총만 휴대하고 도주할 만큼의 거리를 포위망으로 설정해야 한다고 했으나 양양군단 정보참모와 군사령부에서 특파된 대령들 말에 신문기술정보장교 아빠의 말은 묵살되었다. 잠수함에서 탈출한 20여 명은 신출귀몰하게 우리 군에서 그어놓은 포위망 1킬로미터 밖에서 약 올리듯 민간인이나 군인을 사살하고 북으로 북으로 도주했다. 휴전선이 빤히 보이는 무명고지에서 북을 향해 절을 하고 집단 자살을 했다. 그렇게 해야 잠수함 침투한 군인의 가족들이 혁명열사집안 대우를 받기 때문이었다.

  강릉무장공비 잠수함사건이 종료되고 아빠는 동부전선에서 서부전선으로 전출 명령이 났다. 더 이상 소령에서 중령으로 진급 기회도 없고 이번 전출이 군대 마지막 보직이라 생각했다. 서부전선 인사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다. 20년 동안 인사청탁 한번 없이 근무했는데 이번 서부전선으로 가면 마지막 군대생활일 것입니다. 정보병과 라 군단급 이상 정보처에 보직이 마땅합니다만 이 나이에 결재판 들고 잔소리 듣기 싫으니 철책선부대 부대대장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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