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횡성군 강림면 강림리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강림인데 조선시대와 구한말 일본인 토지조사 말단 공무원이 토지조사를 하기 전까지는 강원도 관찰사가 직접 통제하는 강원 감영 직영 창고가 있던 마을이다.
지금도 강림 1.2.3.4.5 리로 부르는 한 동네는 강림 몇 리 보다 창말이라고 부른다. 강원 감영이 중요한 양곡 군량미와 전쟁에 쓰는 무기를 보관하던 창고가 있어서 한자로 곳간 창이 들어간 마을이라고 그리 불렀다.
신라시대부터 각림사라는 절이 있었다. 그래서 조선시대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배 전까지는 원주목 각림촌이었다. 왜냐하면 각림 사가 신라 고려 조선이 망하기 전까지는 전국 사찰 크기로 따진다면 50위 안에 드는 큰 사찰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태종 이방원이 소싯적에 이 마을에서 운곡 원천석에게 천자문 소학 사서삼경을 배웠기에 임금이 되어 인의예지신이 별도로 동대문 서대문 남대문처럼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의에 귀결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통치자였다.
우리나라 역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까지 태종이 원천석을 통해 깨우친 인의예지신이 동대문 서대문 남대문 중간 어디가 아니라 의에 귀결되는 것을 아는 통치자가 몇이나 될까.
남들보다 2주 늦게 1학년 입학하는 아들을 위해 아버지가 횡성 시장에서 책기방을 사 오셨다.
검은색은 다 팔렸고 빨강만 남아 어쩔 수 없이 사 오셨다고 했다.
남자가 어떻게 빨간 가방 메고 다니냐고 차라리 책보를 이용하겠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사랑방에서 부르셨다.
장손 빨강 가방이 창피하냐고 물으셨다.
그렇다고 대답하니 장손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라고 하셨다.
초등학생이 고정관념 그 어려운 말을 이해할 수 없어 대답도 못하고 멍하니 있으니 할아버지 말씀이 이 세상 사람들 눈을 의식해서 장손 하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것도 체면 치례로 살면 평생 1등 한 번 못해보고 2등 3등 인생 된다고 어린이에게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셨다.
결정해라.
빨강이라도 내일 학교에 메고 갈래 그냥 보따리에 책 싸서 다닐래 하는 말씀에 아니라고 하면 바로 사랑채 아궁이로 들어갈 기세여서 빨강 사용하겠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학교 애들이 얼러리 갤러리 놀리고 내 짝 여자애 황현정도 빨강에 그림도 화투장 이 메주그림 가방이었다.
친구들이 장난치느라고 가방을 바꾼 것을 모르고 집에 오니 현정이 이름이 공책에 쓰여 있어서 난감했다.
문제는 숙제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되고 엄마에게 말했다가는 눈이 있니 없니 혼날 것이 뻔해 그냥 그녀 공책에 숙제를 했다.
다음날 숙제검사에 내공책을 보니 그녀는 숙제를 안 했다.
담임 선생님이 숙제 안 했다고 때리셨는데 글씨 악필인 것 보고 눈치를 채셨는지 살살 때렸다. 기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