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마음 하얀 마음 8

잊지 못할 국어 선생님

by 함문평

횡성에서 자연 체험 교육도 잠시 장손은 무조건 서울로 가서 공부시켜야 한다는 할아버지에 의해 6학년 때 서울 D초등학교로 전학을 왔다.


강림초등학교는 6학년 58명에서 내가 전학을 가서 57명이 되었는데 서울 D초등학교는 15반까지 있었고 8반까지 남자반 9부터 15반까지는 여자반이었다.


전학 와서 77번인데 9반부터 15반 77번은 키가 우리 엄마보다 컸다. 점심시간에 남자반 여자반 일렬로 번호순으로 서서 포크 댄스를 추면 여자들 젖가슴이 얼굴에 닿았다. 기분이 묘했다.


금세 일 년을 보내고 중학생이 되었다. 요즘 말로 표현하면 재량 수업 교과서를 던져버린 수업을 했는데 오래전에 자고 하신 전재수 시인이 국어 선생님이셨다.


교정에 목련이 하얗게 핀 날 봄비가 내리면 모두 교과서를 덮으라고 하시고 봄비를 그냥 보는 것이 수업이었다.


반장이 수업 마치는 차렷 경례 직전에 하시는 말씀이 오늘 봄비 바라본 소감을 시로 쓰는 사람은 원고지 2매 산문으로 쓰는 사람은 원고지 8매에서 10매로 써오라고 하셨다.


60명 중에 59 명이 원고지 2매 시를 제출했는데 혼자 10매를 냈는데 그걸 수업 시간에 읽어주시고 잘 썼다고 노력하면 이양하 수필을 능가하는 수필가가 될 것 같다는 극찬을 해주셨다.


그 말 들은 이후로 집에 오면 영어 수학 국어 숙제가 있으면 국어부터 했다. 그런데 딱 한 학기만 가르치시고 S고등학교 교사로 올라가시고 K선생님이 오셨는데 이 분은 그런 추억 없이 교과서 진도만 나가셨다.

중학 2학년 때 국어선생님은 곧 환갑을 바라보는 연세인데 부장교사 교감 승진을 거부하고 평교사이면서 문예반 지도와 학교교지를 이십 년 동안 만들어 오신 분이었다.


매년 추석 무렵이면 신춘문예 응모하신다고 우리들에게 말씀하시고 신년 신문을 잘 보라고 하셨으나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생 시절에도 신춘문예 당선자 명단에 선생님 성함이 나오나 기대를 가지고 봤으나 없었다.


하지만 그런 국어선생님에게 배웠기에 옆에서 누가 원고지에서 쌀이 나오느냐 돈이 나오느냐 갈구는 아내의 잔소리를 한 귀로 듣고 흘려보내 마침내 소설가로 등단했다.


누군가 나의 글을 읽고 작가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중학시절 문예반 20명에게 L선생님이 한 말씀을 해주고 싶다.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고 싶은 사람은 무조건 쓰기부터 하라. 좋은 글감이 생기면 쓴다고 글감 찾아 삼만리 돌아다니는 사람은 평생 글감 찾다가 한 줄도 못쓴다.


처음부터 명문장은 두보나 이태백도 못썼다. 일단 쓰고 고치고 또 고쳐서 명문장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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