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포고문 작성자 노상원
12.3 계엄 선포 시 포고문 작성자가 노상원으로 밝혀졌다. 어쩐지 문구가 수준 이하다 싶었다. 노상원이 계급은 장군으로 예편했지만, 작가가 정보사령부 전투서열장교, 정보분석장교, 신문기정장교로 눈썹이 휘날릴 때는 듣보잡이었다. 육사라고 육체적으로 편한 곳만 찾아다니며, 장군이 되어 정보사에 나타났고, 정보학교장 시절 국군의 날 행사 파견 예행연습 중인 여군을 건드려 불명예 제대했다.
정신상태가 그런 놈이니 사람을 케이블타이로 묶을 생각을 한다. 세상은 2024년인데, 그놈 대가리 속은 1979년 수준이니, 계엄 포고문을 그 시절 포고문을 보고 베꼈다. 육사 교육과 일반 대학 공부의 차이점이 그것이다. 고교까지 사지선다형 시험을 치다가 대학생이 되면 선다형이 아닌 답안지 만주벌판에 나의 생각을 써넣는 시험을 쳐본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가 포고문 같은 문장을 작성할 때 실력차이가 난다.
생도생활 4년을 공정함을 기한다는 이유로 객관식 시험에 길들여진 사람은 평생을 백지에 아무런 참고문 없는 상태에 글 쓰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니 수준 이하 포고문을 세상 21세기에 20세기말 표현으로 한 것이다.
그야말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인데, 1986년 6월 16일 소대장이 되었다. 가자마자 전술훈련을 떠났다. 행군 중에 10분간 휴식 중에 조선시대 한 벼슬했던 무덤 앞이 휴식 장소였다. 하필 대대장 지휘차량이 거기에 섰다. 9,10,11,12중대장은 3사, 육사, 간부후보생 출신이고 학군출신은 없었다. 문인석에 새겨진 글씨를 대대장이 읽다가 막히니 중대장들 보고 읽으라고 하니, 다들 못읽었다. 3사 출신 우리 중대장이 대대장에게 함 소위가 국어교육과 출신이라고, 불렀다. 대대장 앞에서 문인석에 새겨진 한문을 읽고 해석해주었다. 그 일로 대대에서 한문에 대해 모르면 무조건 함 소위를 찾았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초등학고 입학전에 천자문을 가르쳐주신 덕분이었다.
요즘 조카들 교과서를 보면 초등, 중학, 고교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많이 반영되었다. 국어 교과서에 우리는 이해 위주 학습이었는데, 요즘은 이해와 표현 영역이 반반, 아니 표현이 6이해가 4정도의 비율인 것이 다행이다. 교육과정 만든 학자들이 세상 변한 만큼 교육과정에도 변화가 온 것이다. 이런 표현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정의와 불의를 구분하고, 불의에 총칼로 계엄군이 나타나도 맨손으로 막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