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구경
한강다리가 38개가 넘으면 통일
믿거나 말거나지만 한강에 다리가 30개가 되면 남북이 왕래하고 38개가 되면 통일이 된다고, 할아버지께서 중학생인 장손과 친구들에게 하셨다.
고인이 되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통천을 떠날 때 아버지 소 한 마리 몰래 팔아 남하한 것에 변제 개념으로 소 천마리를 몰고 방북했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그 시기가 한강수계에 다리가 30개를 넘길 시기였다.
2025년 6월 한강수계 다리를 세지는 아니했어도 일산대교, 마곡대교 근처에 다리를 만들기 위한 교각을 설치하는 것을 보면 흐뭇하다.
왜 ? 당장 통일은 어려워도 남북 왕래의 시점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중학생 시절 문예반을 담당한 국어 선생님은 38선으로 남북을 그었을 때 북한 땅 인민학교 교사였다.
남으로 내려와 북에서의 교사를 인정 안 해 야간대학 국문과를 마치고 국어선생님이 되었다.
주변 선생이 모두 SKY출신이라 학생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교수안 준비를 했고, 문예반 지도교사도 했다.
문예반에서 정말 글쓰기에 다른 학교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학습을 했다. 토요일에 모두 문예반은 도시락을 싸 오라고 하셨다.
그 시절 선생님 봉급으로 짜장면 200원 곱하기 30명 금액이면 월급 절반 이상이라 사모님이 허락할 범위가 넘었기에 도시락을 싸 오라고 하신 것으로 나이 육십 중반이니 추측이 된다.
문예반 교실서 같이 도시락을 먹고 우리는 관악산으로 갔다. 지금은 관악산에 서울대학교가 야금야금 건물이 늘어났고, 자연보호 운동으로 깨끗하게 정비되었는데, 1975-6년 관악산은 온천지 굿판이 많았다.
선생님은 우리 문예반원에게 굿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소감문을 원고지 10장에 써서 다음 주 특별활동 시간에 제출하라고 했다.
문예반 30명 글을 읽고, 2편을 뽑아 작성자에게 낭독을 시켰다.
그때 1년 선배와 2학년 나의 글을 낭독했다. 솔직히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30명 반 원 글 중에 2편 고른 것에 나의 글이 뽑혔다는 감격에 그날 잠을 자도 잠이 안 왔다.
선생님 말씀이 지금은 남과 북이 이념 이데올로기고 견원지간이지만 여러분이 60 노인이 되면 손자 손녀 손목 잡고 금강산 구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