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총 동문 체육대회에서
2025년 10월 18일 (토)
중대부고 총 동문 체육대회가 있었다. 흑석동은 학교 리모델링 공사 중이라 도곡동에서 했다.
항상 학생 시절은 지각 한번 없었고, 군대 생활 21년 동안은 상황보고, 정보협조회의에 항상 10분 전에 도착한 습관으로 오늘도 10시 개막식이지만 9시 20분에 도착해 80 윤승호 회장이 실어온 물품을 우리 텐트로 함께 이동했다.
반가운 것은 성남중을 마치고 중대부고 배정받은 학생이 몇 명 없었다.
이미 박 OO은 고인이 되었고, 정 OO은 왕년에 암투병 중이었는데 회복했으나 참석 어려운 상태고, 건기는 중학밴드에 있으나 모임에 거의 안 나왔는데 오늘 족구장에서 만나 인사했다.
건기는 작가가 학생시절 이과반인 걸로 아는데, 어떻게 소설가가 되었냐고 물었다. 이미 <백서> 말미에 언급했는데, 1979년 고3시절부터 3 수로 이과출신이 문과로 진로 바꾼 아픈 사연을 막 했다.
1979년 우리는 이 나라에 사라진 마지막 예비고사 본고사 세대였다.
12월 12일 종로학원에서 수학 2 본고사 대비 특강을 듣고, 흑석동 오는 84번(현재 151) 버스를 탔다. 종로에서 서울역을 오니 차량이 주차장이었다. 버스안내양이 어른은 토큰을 학생은 회수권을 나누어주었다. 죄송하다고 버스가 갈 수없으니 걸어서 가라고 했다. 요즘이야 다들 핸드폰이 있으니 연락을 하지, 그 시절은 공중전화로 전화를 덜덜 시절이라 공중전화박스는 이미 줄이 50미터 정도 늘어서서 줄을 서서 내 순서 정도되려면 그냥 걸어가면 갈월동은 갔을 거라고 걸었다. 갈월동 지나고, 삼각지 지나고, 용산우체국을 지나는데, 공중전화 부스가 여러 개라 줄이 짧았다. 집에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으나 버스서 내려 걸어가고 있다. 흑석동에 가면 밤 12시가 넘을 것이라고 했다.
흑석동에 오니 84번 회차지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와계셨다. 거의 남북이산가족 상봉 수준으로 부둥켜 울었다.
꼭 그일 때문은 아닌데, 본고사에 떨어져 재수를 했고, 전두환이 집권하면서 입대 나이를 줄여 3수에 대학생이 안되면 논산훈련소에 갈 판이었다.
82학번으로 ROTC24기가 되었다. 건기, 윤승호, 조홍연은 22기다. 중대부고 총동에서 만나면 야자 하고, ROTC중앙회서 만나면 충성! 한다.
우리가 공부하던 1979년은 남녀공학이 아니었다. 세월이 흘러 중앙대학교 재단이 자금이 휘청거려 두산으로 넘어갔다. 두산은 기업답게 중대부고 터에 중앙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을 지었다. 학교를 도곡동으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강남교육구청이 남학교만 오면 인가 못하고 남녀공학으로 오라고 했다. 부속여고는 17회 남고는 13회라 졸업기수가 틀린데 어떻게 하냐고 교육구청과 서울시교육위원회에 문의했다. 졸업연도 2월 졸업 기준으로 표기하라고 했다. 선배들도 소급해서 동기가 되었다. 서울성남중학교 동기들이 작가를 엄청 부러워한다. 부고 80이라고 표기하면서 졸업한 지 50년 지났어도 남녀학생이 동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선배보다 더 골 때리는 일은 숙명여자고등학교와 중대부속고등학교가 바로 진입로 사이로 경계다. 남녀공학을 숙명여고 학생들이 엄청 부러워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