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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 시절의 추억. 66

국어 선생님 두 분

by 함문평

졸업한 중학교는 일본강점기에 생긴 학교였다. 학생시절은 지나쳤는데, 졸업하고 난 후에 설립자 두 분이 친일파라고 교문을 들어서면 좌측에 흉상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학교가 오래되다 보니 중학교 입학식에 이사장 김석원 장군은 80이 넘었고, 교장 교감은 60 직전, 부장 선생님은 50대, 평선생님은 40대, 유일하게 중학교, 고등학교 연속 졸업에 서울대를 졸업한 미술선생님만 30대였다.


국어를 가르치면서 특별활동 문예반을 지도하던 선생님은 58세였다. 매년 11월만 되면 서울 5대 일간지에 소설 신춘문예 투고했으니 1월 1일 신문을 꼭 보라고 하셨는데, 안타깝게 선생님 소설은 낙선만 했다. 3학년 마지막 문예반 수업에서 정말 비장하고,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아쉬움을 제자 중에 시인이나 소설가가 나오면 작품을 내 무덤에 올리고 막걸리를 부어다오. 하셨다.


중학을 졸업하고 추첨으로 고등학교를 갔다. 같은 재단 고등학교 올라가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인생은 뜻대로 안 되었다. 2월 어느 날 흑석동 학교에 입학금을 내고 거스름돈 250원을 받았다. 학교 정문 앞 서점에서 책구경을 하다 <쌈짓골>을 꺼내 몇 쪽을 읽다가 다시 서가에 꽂았다. 구레나룻이 임꺽정처럼 나서 무서운 사람이 학생 몇 학년 몇 반이야?

저 대방동 S중학 졸업하고 여기 배정받아 아직 반은 모르고 예비소집일에 반을 알려준다고 했습니다. 핵생 돈이 없어? 예. 그 구레나룻이 임꺽정 수준인 분이 저 신입생에게 <쌈짓골> 주시오하고 나가셨다.

책을 서점주인에게 받고, 저분 누구시죠? 물었다. 아~신입생이라 모르겠구나? 저분이 이 학교 국어선생님이고 이 책 쌈짓골 작가라고 했다. 시실 주머니에 입학금 내고 거스름돈 250원 있었다. 그 돈은 해 질 무렵 중대입구 <그린하우스>에서 여학생과 미팅 약속이 있어서 그 돈을 쓸 수 없었다.

그렇게 미팅을 하였고, 입학 후에 서점에 250원을 갚으려고 하니, 이미 선생님이 내셨다. 고민이 되었다. 250원을 선생님께 갚아야 하나 일단 250원을 주머니에 넣고 <쌈짓골>을 들고 교무실로 갔다. 책에 저자 사인을 받았다. 한자로 <청출어람>을 써주셨다. 소중히 간직하고 열 번도 더 읽었다. 군인으로 21년 3개월에 17번 이사했다. 가장 먼저 중1부터 써온 일기장과 <쌈짓골>을 우선 짐을 쌌다. 전방연대 정보과장 시절 수해로 관사가 반파되었다. 일단 부대 내 교회로 피신했다가 물이 빠진 후 관사로 왔다. 상당한 살림과 책을 다 버렸다. 16년 동안 쓴 일기와 <쌈짓골>도 버렸다. ㅠ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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