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하나 죽어야 제도 바뀌는 나라
아주 오래전 이야기다. 작은 아버지는 군대 공병에서 불도저 운전병 출신이었다. 병장 봉급이 4500원 시절 작은 아버지는 불도저 운전으로 부대 신축공사장을 밀면 주변 농지를 가진 어른이 나와 짬나뭔 자기 밭을 경사진 것을 평평하게 해달라고 했다. 그거 해주면 토종닭을 삶아 점심으로 대접했고, 떠날 때는 병장 월급 두 배가 넘는 1만 원을 봉투에 담아 주었다고 자랑했다. 제대 후 중장비 불도저 회사 취직을 하려 했으나 중장비 면허가 없어 취직 못했다. 궁여지책으로 운전면허로 택시회사 운전사원으로 취직했다. 돈은 엄청 벌어도 회사에 납입금을 내면 남는 것이 별로 없자 할아버지에게 택시 한 대를 사달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시골 산을 하나 팔아 택시를 사주는 대신 장손을 데리고 중학교까지만 시키라고 특수임무를 부여했다.
지금도 서울지방병무청 사걸서 성남중고교 가는 길은 언덕길이다. 작은 아버지가 몰던 택시를 모퉁이에 세워두고 화장실 가느라 다방에 다녀온 사이 언덕길을 자전거로 내려오던 학생이 택시를 뱓고 사망했다.
요즘은 도로교통법이 상당히 정교화되었지, 그 시절은 무조건 운전자 잘못으로 입건되어 작은 아버지는 실형을 살았다. 장손을 부탁한 막내아들이 교도소에 가자 그거 해결하느라 할아버지는 남은 산 한 개와 논도 몇 마지기 팔아 해결하고, 소를 팔아 할아버지, 할머니가 서울에 집을 얻어 직접 장손을 돌보셨다.
최근 인천 연수구서 킥보드 사건으로 킥보드 금지구역으로 만든다고 한다. 언제까지 사람 죽어야 제도 하나 생기는 나라 벗어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