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계절. 215
나는 한때 엄청 불행했다. 군대서는 중령 진급도 못해 소령으로 사회에 나왔고, 군대 연금 기금은 1년제 아내가 대출을 받아주면 전역 후에 남이 경영하는 회사어서 결제 판들고 안 다녀도 되게 해 준다는 말에 대출받은 것을 전역 전에 갚아야 하는데, 갚지 못한 상태로 전역했다.
더구나 이혼할 때 가정법원 판사가 이혼 후 누구와 살고 싶냐? 는 물음에 아이들이 엄마를 선택하자 막내가 만 20세 되는 12월 31일까지 매월 130만 원의 양육비를 이혼한 아내계좌로 보내지 아니하면 함문평 씨 계좌 압류추징할 수 있다고 겁을 주었다.
법도 개불알 같지만 판사 판결도 개거시기 같다고 판사를 향해 소릴질렀다. 말이 되는 법이야? 군대 연금기금도 대출받았으면 어떻게 노력해 변제야지 변제 못해 21년 청춘 바친 기금을 일시불로 받아 과욕을 부려 단지 내 최고평수 아파트를 구입해 원리금 감당이 안되어 풍비박산이 되었다. 군대서 정보장교로 북한군 전차가 몇 대 전투기 훈련이 박천 비행장서 어랑으로 몇 대 이동해고, 서해함대 동해함대는 잠수함이 몇 척 이동했는가만 추적하던 사람이 사회에 나와 어떻게 현역 소령만큼의 돈을 벌겠는가? 도둑질하거나 마약장사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을 시키고, 못한다고 이혼했다. 그래도 매월 130 보낸 것은 두 달뿐이지만 전국을 떠돌면서 일감 있는 곳은 정말 가기 싫은 강원도 화천, 인제, 원통까지 다니면서 200벌 면 100, 160 벌면 80, 100을 벌면 50을 보냈다. 막냐가 만 20세를 지나 이제는 양육비 보내는 일없이 적은 돈을 벌어도 혼자 사는데 이상 없다.
나이 90 고모에게 와서 흘러간 고모 인생이야기를 들었다. 고모도 내 사연을 알기에 이 시간 이후는 좀 독하게 마음먹고 너 자신을 사랑하면서 살라고 하신다. 고모부는 월남전 참전전우였다. 월남전 마치고 귀국해 원래부대는 전방 백마부대인데, 고향 경상도로 재배치되어 영덕, 강구 일대서 상사로 은퇴했다. 은퇴해서 철물점을 운영하다 20년 전에 사망했다. 고모는 혼자 두 딸과 아들 하나를 키우셨다. 90 인생 이야기를 들으니 눈물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