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인연

희망의 계절. 229

by 함문평

(고) 박화엽 교수에게 배운 인연


할아버지 재산이 횡성한우 99마리라서 시골 친구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금이야 옥이야 컸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보내려면 횡성이나 원주로 보내 하숙이나 자취를 해야 했다.


군대서 공병 불도저 운전병으로 병장 제대한 막내 삼촌이 처음 직장은 한양중기였는데, 할아버지에게 소를 몇 마리 팔아 택시를 사달라고 했다.

소는 장손 교육용인데, 택시를 사주는 대신 장손을 횡성이나 원주로 보내 하숙을 하느니 신혼이지만 조카를 데리고 살라고 했다.


서울로 위장전학을 했고, 택시 운전하다 서울 성남중고등학교에서 병무청 사거리로 내려오는 길에 택시를 정차하고, 담배를 피우는 사이 자전거로 내려오던 학생 자전거 브레이크가 안 들어 택시를 들이받고, 자전거는 자전거대로 떨어지고, 학생도 중상을 입었다.


요즘은 도로교통법이 사실관계를 수사해서 처벌하지만 그 시절은 완전 100% 자동차 잘못이었다.

형사 책임, 민사 책임지느라고 횡성 한우가 아니라 할아버지 산을 2 정보짜리 두 개를 팔아 해결하고, 작은 아버지는 더 이상 운전을 직업으로 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운전으로 군대서 단련되고, 하고 싶은 운전을 하다 돌발사고로 회사에서 맘에 없는 일을 1년 하고, 할아버지에게 또 차를 사주세요 할 수 없어 시외버스 운전, 고속버스 운전하다 마지막으로 서울시내버스 운전으로 정년 퇴직했다.


멀리 대방동에서 수유리 신일중고등학교 근처에 신혼방을 새로 구해주고 대방동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장손 뒷바라지를 오셨다.

대방동서 대방초, 성남중을 졸업하고 추첨으로 흑석동 중대부고로 배정되었다.


할아버지는 우리 장손은 왕년에 경성 제1학교 경기고에 보내야 하는데, 박지만 그놈 때문에 장손이 경기고 못 갔다고 하셨다. 나중에 대학생이 되어 우리나라 교육변천사를 공부하면서 할아버지 말씀이 잘못 안 것을 알았지만 할아버지께 말씀드리지는 않았다.


골 때리는 것은 4대문 안 공동학군에 대방동 중학교 출신도 경기, 서울, 양정, 휘문에 2-3명씩 갔다.


성남중에서 성남고는 300명이나 갔다. 흑석동도 중대부중 출신이 중대부고 300 명이나 올라왔다.


그러니 반장선거에 성남 중 출신이 흑석동에 6명이 가서 아무리 공부 잘하고, 인물이 출중해도 당선될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현실즉시파였다. 어차피 방 하나 전세살이 대방동서 흑석동 등하교 시간에 장손이 공부는 더 안 해도 잠이라도 더 편히 자는 것이 이득이라고 흑석동으로 이사했다.


전세금 30만 원 소 한 마리 값 26만 원에 4만 원 보태는 것에 맞추다 보니 연못시장 끝집에 방을 얻었다. 밤이면 취객들 고함에 술 취한 남자 유인, 유혹하는 아가씨 때문에 이거 계속 있다가는 서울지역 예비고사도 떨어진다고, 복비를 감수하고 두 달째 이사했다.


이사한 곳이 지금 중앙대학교가 민가집을 매입하여 교수회관 신축한 곳이다.


1979년 12.12군사반란일에 영문도 모르고 학원수업 마치고 귀갓길에 서울역에서 흑석동까지 걸어왔다. 그 후로 인생이 꼬여 4 수하라고 할아버지가 한우 4마리 판 돈을 농협통장에 넣어주신 것으로 청주사대 국어교육과 합격하고, 등록금도 그 돈에서 내고 아버지, 어머니에게는 장학생이라 아버지 입학금 걱정 마시라고 했다.


교육학 개론 박화엽 교수가 거기 계셨다. 할아버지와 친한 분이 자기 조카가 서울대 교수라고 속독법 책을 할아버지에게 자랑한 것을 할아버지가 종로서적에서 구해주셨는데, 속독에 대한 특별한 설명도 없고 동그라미만 잔뜩 있어 처박아 두었던 을 찾아서 교수님 저자 서명을 받았다.


할아버지께 보여드렸다. 서울대교수에서 재임용 탈락으로 촌학교 교수가 되었다고 했더니, 어이구 이것 또한 장손이 서울대 못 간 대신 북두칠성 우주의 기가 장손 잘되라고 그리된 거라고 하셨다.


전두환 시절 서울대학교에서 속아낼 교수 명단에 들어 서울대 교수 재임용에 탈락되어 내가 서울대 못 가고도 그분 수업을 받았다.


교육학 개론을 수강하면서 플랙시보 효과를 알게 되었다.

막내 이모가 공부 잘하고 싶으면 아무도 모르게 누에 토실토실한 놈으로 두 마리 먹으면 머리가 좋아져 계산도 빨라지고, 암기도 잘된다고 했다.


가족 모두가 잠든 시간에 혼자 누에 키우는 방에 들어가 가장 토실토실한 두 마리를 꿀꺽했다.


정말 신기했다.

지금은 학생 시험이 중간고사 기말고사뿐인데, 그 시절은 매월 시험이었다.

1등 하던 미연이나 종석을 누르고 내가 1등은 물론이고, 학년 불문 국민교육헌장을 1등으로 외웠다.


5, 6학년 선배들이 창문 너머 가장 먼저 집에 가는 나를 부러워했다. 그것이 박화엽 교수에게 수업을 들어 플랙시보 효과라는 것을 알았다. 설에 고향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산소에 <백서> 다음 준비하고 있는 <에이전트 오렌지> 초안을 보여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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