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16
요즘 산불로 각 지역 소방대원과 의용소방대원이 고생이다. 해마다 입춘이 지나고 청명, 한식 무렵이 산불의 전성기다. 한식 이후는 모든 싁물에 새싹이 돋아 불을 내도 크게 번지는 일이 없다. 또 기상도 봄비에서 여름철 장마까지 비가 점점 마낳이 와 자동 진화도 된다.
그럼 왜 꼭 이 시기에 산불이 많은지 작가는 경험으로 안다. 철책선 정보과장 시절 경험담이다. 민통선 이북에서 영농을 하려면 우리 경계책임구역은 27 정보과장에게, 옆 책임구역은 36 정보과장에게 사진 2매와 주민등록증을 제출하고 영농출입증 신청을 하면 사단정보참모에게 보고했다.
그렇게 영농출입증을 발급하기에 관리가 철저히 되었다. 우리 책임지역을 순찰을 도는데 오토바이탄 영농인이 급하게 달렸다. 나는 운전병에게 오토바이를 추격하라고 했다. 아스팔트에서는 지프가 오토바이 추격 힘들지만 전방 비포장에 경사가 급한 도로는 4륜구동 군용 지프가 최고다. 오토바이를 가로막고 영농증 검사를 했다. 본인 사진은 맞지만 사진을 부착하고 영농증 코팅이 사단 정보처 코팅기로 한 것보다 세련된 코팅이었다. 잠시 따라오라고 했다. 가장 가까운 초소 312 전화기로 교환, 또 교환을 연결해 사단정보참모에게 전화했다. 영농 민 수상한 사람을 발견했다. 영농증 번호를 불려주고, 영농지 지번을 알려달라고 했다. 당신 영농지 지번이 어디냐? 물으니 대답을 못했다. 그 순간 난리가 났다. 전방에 산불로 119 헬기가 물 항공마대에 물을 담아 우리 책임구역에 뿌렸다. 의용소방대와 우리 예비대대 병사도 산불진화에 동원되었다. 경찰서는 산불 범인 색출을 했다. CCTV도 없던 시절이라 오토바이 맨이 민통선 들어간 시간, 오토바이 세운 위치, 초병 관측보고로 추궁하니, 산불을 자백했다. 알고 보니, 영농증을 돈 주고 사서, 원 영농 민 사진을 떼고, 자신 사진을 부착하고 민통선을 들어가 산불을 냈다. 이유는 산불난 땅에 타 죽은 나무와 잡풀이 거름이 되레 한식 이후 산나물이 어마어마하게 잘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직업이 산나물, 산약초 채취꾼이었다.
우리나라 산림법 산불 낸 처벌이 너무 약하다. 산불 낸 자 형벌을 사형, 무기 내란죄 수준으로 올리지 않는 한 119는 영원히 고생하는 3D직업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