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군바리면 넌 민바리야. 7
나를 차버린 여자 4명에 대해서는 여기 브런치에도 있고 <백서>에도 이름 한 자만 바꾸어 나온다.
대위 진급하고 중대장반 교육받으면서 광주 화정동에서 하숙을 했다. 코골이가 심해서 다른 대위들이 방을 함께 쓸 수 없다고 해서 주인집 아들 공부방을 내가 쓰고, 아들이 안방으로 왔다.
그해 대학시험에 전기 전남대 떨어지고, 후기 우송인지 동신인지도 떨어졌다.
나도 왕년에 3수 경험이 있어 인생은 길다. 재수는 필수고 3수는 선택이다고 덕담을 했는데, 이놈이 술이 떡이 되어 부모에게 행패를 부렸다.
지가 공부 노력 부족으로 떨어진 것을 공부방 함 대위에게 주고, 고3이 공부방 없어 떨어졌다고 했다. 곰곰 생각하니 화가 났다.
함 씨 4촌 이내만이면 죽통을 날렸을 텐데, 고군반 끝나면 전화 한 통 안 할 집이라 참았다.
하숙집 아주머니에게 1월 13일 수료하면 바로 방을 뺄 테니, 아들 14일부터 공부방으로 쓰라고 했다. 1주일 전에 결석 감점 각오하고, 금요일 결석하고 전방을 갔다. 새벽에 상봉터미널에 내리니 중년 부부가 보따리 5개를 택시에서 내렸다. 두 분이 두 개씩 들고 하나 남은 것을 어쩔 줄 몰라했다.
내가 가서 번쩍 들었다.
한 손에 장교 007 가방, 한 손에 촌스런 보따리를 들어 대합실 안으로 이동했다.
요즘은 상봉이 전철만 서지 그 시절은 전방 가는 시외버스로 버글버글 했다. 그분들은 화천 27사 아들 신병수료식 가는 길이고, 난 차후 보직 위치 알고, 방을 구하러 간다고 했다.
차 출발 시간 30분 여유가 있어 커피를 마셨다. 결혼했냐? 물어서 대학시절 연애는 했는데, 4명에게 차였다. 대위 진급하고 맞선 봤으나 5공 청문회로 군인 이기 없어 맞선이 끝이다라고 했더니, 독산동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주고 중대장 자리 잡히면 연락하라고 했다.
1월 13일 수료, 17일 중대장 취임을 3사 19기 강학수 대위에게 인수받고, 강 대위는 상급부대 전투지원 중대장이 되었다. 18일에 밤새 눈이 엄청 내렸다.
문을 여니 눈 때문에 중대장실에서 나갈 수가 없었다. 화장실도 못 갔다. 하는 수 없이 중대장실에 신문지를 깔고, 소변은 플라스틱 병을 칼로 상단을 자르고 거기에 보고, 대변은 신문지 위에 보았다.
행정병이 제설작업으로 나를 구한 후에 가장 먼저 신문지와 플라스틱통을 처리했다.
12중대 11중대는 대대 철조망 울타리 외부 독립중대라 9, 10중대가 연병장을 반반 나 누에 제설작업했다.
본부중대는 인원이 몇 없어 대대장실과 참모부만 제설작업하고, 2개 중대가 부대일지 교육훈련란에 <제설작업>네 글자만 일주동안 썼다.
제설작업 후 중소대전술, 대대전술, 연대전투단훈련 마치니 4월 1일 만우절이 되었다.
독산동에 전화를 했다.
반갑게 통화하고, 그분 친목계 계원 중 한집 딸을 맞선을 보게 했고, 횡성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상견례 후 그해 10월 2일이 길일이라고, 청첩장을 찍어 돌렸다.
6개월 주기로 철책선을 담당하는데, 순서는 2대대가 철책 들어가고, 1대대 철수인데, 사단장 업무보고에 철책선에서 2 대대장 이취임식을 할 수 없으니, 3대대가 철책선 들어가고 4월 말에 철수하면 2대대를 철책으로 보내라고 서명했다.
실제상황이고 긴급 타전을 했다. 횡성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처가는 처가 대로 청첩장 바로 찢게 하고, 1991년 5월 5일 11시로 결혼식을 못 박고, 장소는 육군회관으로 했다.
고항어머니 말씀이 군인은 결혼도 맘대로 못한다니~~였다.
끝 너를 충청도 돌 굴러가 유~~ 처럼 빼는 것은 강원도 태백산맥 영서지방 사투리다.
속으로 엄청 화는 나지만 당신에게 화낼 수 없으니 제삼자에게 넋두리식으로 던지는 어투다.
지금은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다 돌아가시고 혼자 소설을 쓰다 머리 식힐 때 이런 회상을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