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군바리면 넌 민바리야. 27
군대생활 하면서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 말 가는 곳 소도 간다는 각오로 근무했다.
원래 초등학교 58명 정원에 50 명 뽑는 합창단 에도 떨어진 음치이고 음악, 미술, 체육은 거의 <양>이거나 <가>로 초등학교를 마쳐서 난 동기 들 사이에 선착순 하면 거의 마지막이었다.
육체적인 것보다 더 참기 어려운 것이 영혼을 팔거나 양심을 팔게 상관이 요구할 때 가장 힘들었다.
거기에 충족 못해주면 정말 왕따 아님 인간적 모멸을 느껴야 했다. 그것도 꼭 대위에서 소령 진급 대상 첫해 소령서 중령 진급 대상 시기의 3 년 동안 가장 괴로웠다.
난 진급 못 해도 나의 영혼을 팔거나 양심을 팔지 않으려고 애썼다. 반대로 아내는 양심 좀 팔고 다들 그런 방법으로 진급해 떠났으면 우리도 진급해 떠나자는 주의였다.
과유불급이라고 기무부대의 동향 보고에 나의 아내가 격에 안 어울리게 사단장, 참모장, 정보참모 사모님을 자가용에 태워 고가의
명품 파는 서울 백화점 쇼핑 다닌다는 보고가 올라간 것을 전역해서 알았다.
나도 전역했고, 기무부대 그 사람도 전역햐고, 동대문 시장에서 옷을 사다가 만났다. 그간 서로 안부를 물었고, 소주 한잔하러 식당에 갔다.
거기서 들은 이야기가 함 소령이 중령 진급 최종 심사에서 떨어진 것은 아내가 분수에 넘치는 사치스러운 선물을 상관 부인에게 했다고 기무부대가 작성한 동향보고 때문이라고 했다.
그 말에 아니다,
내가 진급 못한 이유는 군대 상관 중에 매국노 같은 놈이 많아 진급 못했다. 사회인이 되어 지금도 군대 대령, 장군 출신을 그다지 존경이 아니라 상종 자체를 안 한다고 했다.
군생활하면서 여러 번 상관이 매국노짓을 시켰다. 그때마다 졸업한 학교 교훈이 의에 살고 의에 죽자라 판단의 기준을 <의>로 삼았다.
가장 먼저 허접한 군납비리를 경험한 것이 부산 해운대, 송정 탄약부대 3 경비중대장 시절이다.
200만 평 탄약고를 점점 출산율이 낮아지기에 병력이 아닌 첨단장비로 경계망을 구축한다고 전구간 설치 전에 400m만 3 경비중대에 설치하고, 시험평가하고, 평가보고서를 작성하라고 했다.
사람이 지나갈 때 삑! 울리는 것은 좋았다. 개나 고양이가 지나가도 삑! 울렸다. 비가 오고 바람이 세게 불어도 울렸다.
11월이라 독수리훈련이 있었다. 특전사 몇 공수인지는 모르는데, 동기생 조윤래 대위가 독수리 팀장이 되어 13명이 침투했다. 우리 구역에 첨단 경보장치가 설치되었다는 것을 알고 독수리 13명이 스티로폼을 자기 몸 가릴 정도 후대하고 철조망을 넘었다. 첨단장비라는 것이 1990년대 수준은 첨단인데, 요즘 레이저 줄자만도 못한 첨단이었다. 독수리 13마리가 넘어도 삑! 소리가 안 울렸다.
나를 살린 것은 이글루 탄약고였다. 고가탄약, 전시 미군이 쓰려고 한국군에 위탁저장한 탄약은 그 시절에도 한여름에 탄약고에 들어가면 시원했고, 반대로 겨울에 들어가면 경비중대 연병장은 아이 추워를 연발하는데, 이글루 안은 장갑을 벗어도 될 온도였다.
그 이글루 탄약고는 탄약창 내 또 철조망이 있었다. 그걸 모르고 침투한 동기생 조윤래 팀장 일행은 밤새 철조망을 넘었는데, 또 철조망이 있어 넘은 상태서 순찰도는 3 경비중대장에게 잡혔다.
어이, 독수리 동무들?
동작 그만!
현 위치에 K-1 총을 땅에 놓는다. 실시!
독수리 팀장만 본 경비중대장 앞으로 나오라!
명찰을 보니, 조윤래 대위였다.
한 번도 교육을 같이 받은 이력은 없지만 24기 명단에서 본듯한 이름이라, 독수리 팀장 나는 ROTC24기다. 귀관은 몇 기인가?
저도 같은 24기입니다.
오케이 동기라서 포로 신문 심하게 안 하고, 아침 라면 특식을 제공하겠다.
무전을 쳐서 탄약중대장에게 이글루 377 탄약고에 독수리 13마리 꺼내야 하니, 즉시 오토바이 타고 3 경비에 와서 탄야고 문을 열라고 했다.
독수리를 사병식당에 데리고 가서 취사병에게 캡틴 특수명령을 하달했다. 라면 13개, 계란은 26개, 파는 쏭쏭 썰어 푸짐하게 해 주라고 했다. 독수리 13명은 군대생활 중 가장 맛있고, 푸짐한 라면 대접받았다고 칭찬하고 떠났다.
그런 사례를 열거하고 보고서에 <군납불가>로 보고했다. 정작처장 대령에게 불려 갔다. 군홧발로 차이고 <군납적격>으로 보고서를 다시 썼다. 처장은 군수사령관 3성장군이 다 군납받기로 하고 시험평가하는 것인데, 대위 나부랑이가 불가가 뭐야? 너 몇기야?
알오티씨 이십사깁니다!
이 새끼야, 그러니까 군대서 바보티씨라고 욕먹는거야, 임마!
하는수 없이 군납적격 보고했다.
다음은 국군심리전단 군수과장 때 일이다. 정보자산 장비의 수리부속을 일본 도시바 정품으로 사면 한 개당 6,600원이나
하는 것을 2 천, 3천 하는 모조로 교체하고, 영수증 정리는 정품으로 하고 차액금을 상납하라고 했다.
겉 모습은 말랑말랑하게 생겼지만, 서울성남중학교 교훈이 의에 살고 의에 죽자였다. 고등학교 설립자 임영신 박사가 돌탑에 건학이념을 새긴 어록이 참에 살고 의에 죽자였다.
정당하지 못한 명령에 응할 함 소령이 아니었다.
정보자산 정비 군무원 5급,6급, 7급, 9급들에게 다 물어보았다.
한 장비에 200개 들어가는 부속을 비급제품으로 교체해도 되냐고?
군무원 말이 과장님 우리에게 묻지 말고 테스트하세요?했다.
장비 하나는 200개 정품으로 하고 한쪽은 200개 비품으로 하고 천둥 번개 한번만 맞아보면 됩니다.
나는 테스트했다.
과연 정품 쓴 장비는 200개 중 5-6 개 나갔고 비품 쓴 곳은 200개 중 80 개가 터졌다.
그래서 난 목에 칼이 들어와도 매국노 안 된다고 과거의 관행을 깨고 진급 포기하고 전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