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꼬락서니 참 거시기 하구나

내가 군바리라면 넌 민바리야. 35

by 함문평

군대생활 21년 3개월 하면서 분노한 것이 한 번이 아니었다.

정말 세상 불공평한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신라시대는 성골, 진골, 육두품에 두품 축에도 못 들어가는 무두품도 있었다.


옛날에 (고) 정주영 회장이 전두환, 그전에는 박정희에게 정치자금 뜯긴 것이 분하다고, 자기를 대통령 당선시켜 주면 1억 넘어가는 아파트를 집 없는 국민에게 2,000만 원에 공급하겠다고 했다.


강원도 촌구석에 근무했을 때 정주영 후보가 유세 온다고 해서 사복을 입고, 얼굴도 알아보지 못하게 복면처럼 뒤집어쓰고 유세를 들었다.


여러분! 전라도 푸대접이라고, 김대중 찍어달라고 하는데, 전라도 푸대접보다 더 한심한 곳이 어딘 줄 아십니까?


강원도 감자 바우, 암하유불 동네 강원도는 푸대접도 없는 무대접이라고 했다.


요즘도 권력 있거나 돈이 있거나 인기 좀 있다는 놈들이 공익으로 빠져 똑바로 근무도 안 하고, TV에 나오는 놈을 보면 미국 이름 스티브 유를 보는 느낌이다.


병무 부조리 원조는 초대 헌병사령관 지낸 원용덕이다. 당시 육군사관학교 합격하려면 만 18세라야 합격이었다.


원용덕 아들 원창희는 육사 2기로 응시했다. 나이 미달로 떨어뜨려야 하는데, 원용덕 백으로 합격시켰다. 당시 육사 교수부장이 그럼 17세로 성적은 좋은데, 나이 미달로 합격 보류된 박경석 군도 합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대전고등학교 졸업반 담임에게 떨어졌다고 낙심하던 박군은 뒤늦게 합격했다고 대전 온천지 자랑했다. 인생살이 새옹지마라고 육사 2기생 은 1년 공부하다 말고 6.25가 터졌다.


원용덕 아들 원창희는 부산으로 명령 났고, 박경석 소위는 전방에 가서 북한군 10 사단장 전문섭 부대에 포로가 되었다.


박 소위는 포로가 되었지 육사 2기생은 전방 가자 마자 2/3가 전사했다. 전문섭 사단장이 하도 얼굴이 앳된 것이 군관 계급장을 하고 있으니, 가짜 군관 아니냐고 신문했다.


나이는 어리지만 육사 2기로 공부하 다 당신들이 쳐들어 와서 내래 군사학 공부 반도 못하고 군관이 되었어요라고 했다.


전문섭이 소위가 기백이 있어 좋다고, 자기 전속부관 중위가 있었는데, 박 소위를 해방군관으로 각별하게 예우하고 은근히 전항해 인민군 군관이 되면 자신이 승승장구하게 뒤를 봐준다고 했으나, 거절하고 탈출했다.


박 소위가 월남전에 중령 대대장으로 참전했다.

노태우, 전두환도 참전했다.

박 중령은 왕년에 전문섭 인민군 10 사단장을 따라 전선 시찰 다닌 기억을 더듬어 베트콩을 잘 잡았다. 훈장을 너무 많이 왼쪽에 달다 보니, 어깨가 왼쪽이 처졌다.


전두환은 왜 박경석만 훈장이 많냐고 투덜댔다.

이 글은 작가가 현역시절 박경석 중령이 월남전 참전 경험으로 <그날>이라는 몇 권 대하소설을 대위 봉급 다 털어 구입했다.

총각 대위라 구입해 이사 다니다가 전방부대에 기증했다. 정말 나라꼬리지가 가관도 아니다. 전국 학군단 ROTC지원자가 미달이다. 육사, 해사, 공사는 입학했다가 자퇴가 많아 졸업생 반 자퇴생 반 반반이다. 반반은 양념과 후라이드 치킨이나 반반이 좋지, 장교 양성집단이 반반이 말이 안 되잖아요?

군대도 안 마친 것이 겁대가리 상실하고, 병장 18개월에 200만 원 질렀으면 하사, 소위, 9급 군무원도 고려해아지, 18방 국방장관은 뭐 하는 놈인지, 병무비리를 잡나, 장교 수급을 해결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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