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창고. 7

송충이

by 함문평

육군본부가 지금은 대전 계룡대에 있지만 조성복, 엄헌자가 D 초등학교 시절에는 해군본부가 서울 대방동에 있었고, 육군본부가 삼각지에 있었다. 조성복 아버지는 육군 중령, 엄헌자 아버지는 S 중학교 한문 교사였다. 6학년 때 D 초등학교 6학년에서 조성복, 엄헌자, 정율화, 박윤희, 함영구 등이 만났다. 그때 나는 강원도 횡성군 강림면 강림초등학교를 5학년만 마치고 서울 D 초등학교로 전학했다. 6학년 8반 77번이 되었고, 조성복은 8반 반장이었다. 헌자는 6학년 15반 77번이었다. 점심시간에 운동장에서 음악이 나오면 번호순으로 줄을 섰다. 77번 은자와 내가 마주 서면 내 얼굴이 헌자 젖가슴에 묻혔다. 출렁하는 젖가슴에 고향에 계신 어머니 생각이 났다. 눈물이 났다. 헌자가 “왜 울어?” 했다. “응, 네 젖이 내 얼굴에 닿으니 엄마 생각이 난다.”그 시절은 여촌야도(與村野都)라고 투표하면 촌에서는 여당이 이기고 도시서는 야당이 이겼다. 서울로 인구 집중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시골서 서울로 전학을 오면 담임선생이 가정방문을 했다. 가정방문 동안 아버지, 어머니가 함께 있고, 담임이 온 가족이 사는 것이 맞다. 는 보고서가 올라간 후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서울로 오고, 아버지, 어머니가 횡성으로 갔다. 촌닭 관청에 온 것처럼 주눅이 든 상태에서 촌놈이 잘하는 일이 생겼다. 지금은 공군사관학교가 청주에 이전했다. 그때는 현재 보라매공원 있는 곳이 그 시절 공군사관학교였다. 토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6학년 전원이 공군사관학교에서 송충이 잡는 날 행사가 열렸다. 남학생들은 자기가 10마리 먼저 잡아 검사받고 집에 갔다. 송충이가 징그러워 잡지 못하는 여학생은 저학년 시절 남학생 짝을 찾아 잡아달라고 했다. 저학년 시절 짝이 송충이 10마리를 잡아주었다. 나는 저학년을 여학생과 지낸 일이 없기에 70마리를 잡아서 6학년 9반부터 15반 77번은 모이라고 소리쳤다. 엄헌자, 이미정, 송혜령, 박영선, 조윤선, 선지연, 남경희 등이 달려와 10마리씩 나누어주었다. 초등학교 졸업 후에는 여학생 소식을 모르고 지냈다. 남자 중학교, 여자중학교로 배정받은 이후로는 소식을 모르고 지냈다. 내가 서울로 전학 오기 전 강림초등학교 친구 최홍기와 조필원은 각림 고등학교 동기였다. 지금은 강림에 인구가 줄어들어 각림 고등학교가 폐교되었다. 최홍기와 조필원은 각림 고등학교 야구부 투수와 포수였다. 지명은 강림인데 고등학교 이름은 각림 고등학교였다. 이 마을에는 신라 시대에 각림사(覺林寺)가 있었다. 조선 시대 강원 관찰사가 있는 원주 감영에서 관리하는 직할 창고가 이 마을에 있었다. 일본이 조선을 강점하고 토지측량을 했다. 측량기사와 기록하는 말단 공무원이 ‘각(覺) 발음을 할 수 없었다. 가꾸림, 강림을 고민했다. 조선총독부 고급 관리가 강림(講林)으로 하라고 해서 지금까지 지명은 강림이고 고등학교 이름은 각림 고등학교(覺林高等學校)다. 이 지역 유지 김광수라는 분이 군대서 대장으로 전역하고 재산을 학교설립에 기부했다. 전국에 면 단위 고등학교 중에 개인이 재산을 헌납해 학교 건물을 짓고 기부채납형식으로 횡성교육청에 기부했다. 개교와 동시에 야구부도 만들었다. 면 단위 고등학교에서 육군사관학교 합격자가 두 명이나 나왔다. 최홍기와 조필원이었다. 2회 졸업생 2명이 육군사관학교에 합격하자 교문에 축하 플래카드를 걸었다. ‘경축, 최홍기 조필원 육군사관학교 합격’ 현수막이 걸렸다. 그 두 동기생이 한 명은 수도방위사령부, 한 명은 특전사령부 작전 항공 장교였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어렸을 때, 사랑방에서 할아버지가 임진록(壬辰錄)을 읽어주셨다. 할아버지가 30년 전에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무렵 철원읍 대마리 철책을 담당하는 연대 정보과장을 했다. 관보가 왔다. ‘조부 위독 급래요망(祖父危毒急來要望)’ 위독하다는 관보로는 휴가를 보낼 수 없다는 연대장 말에 화가 나지만 참았다. 이틀 후에 ‘조부사망 급래요망(祖父死亡急來要望)’관보가 왔다. 눈물이 났다. 금이야 옥이야 장손이라고 사랑을 엄청 주셨는데, 장손은 임종도 지키지 못하고 사망관보를 받고서야 철책 정보과장을 정보장교와 보안부사관에게 과장 없어도 펑크 안 나게 잘하라는 말을 하고 철원에서 서울행 버스를 탔다. 서울서 원주까지 고속버스로 원주에서 강림까지는 택시를 타고 갔다. 할아버지 염을 마쳤으나 장손이 미도착이라고 장손이 보는 상태에서 입관한다고 다들 기다리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12월 12일 돌아가셨다. 14일 선산에 할아버지를 모시고 가는 영구차 앞자리에 할아버지 영정을 들고 갔다. 할아버지를 선산에 묻고 전방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1년 전에 하신 말씀을 회상했다. 휴가 한번 제대로 가지 못하니 94세 노구를 이끌고 강림서 원주까지 동신운수 버스로, 원주서 서울은 동부고속으로 강남터미널서 동서울 까지 전철로 동서울에서 철원까지 시외버스로 철원에서 철책연대 정보과장 관사까지는 대중교통이 없으니 택시로 오셨다. 할아버지 좋아하시는 보신탕 전골을 안주로 관사에서 할아버지와 손자는 최후의 만찬을 했다. 할아버지 말씀이 내가 아마도 2-3 년을 넘기지 못할 것 같구나. 아마도 내가 가고 30년 후에는 손자 어린 시절 읽어준 ‘임진록’ 같은 일이 조선 땅에서 발생하는데, 경거망동하거나 주술에 휘둘리지 말고 ‘중용의 도’를 지키라고 하셨다. 할아버지야 사서삼경을 통달하고 중산서당(中山書堂)이라고 조선의 마지막 서당을 하셨으니 ‘중용의 도’를 아시지만 나는 사서삼경 책 제목만 시험에 나오니 암기했을 뿐이다.

2024년 12월 3일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다. 심야에 계엄을 선포했을 때, 처음에는 가짜뉴스로 받아들였다. 시간이 갈수록 가짜뉴스가 아니라 진짜 뉴스가 되었다. 국회의원들이 국회로 달려갔다. 시민들도 국회로 갔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주변은 아수라장이었다. 중무장한 계엄군이 헬기가 착륙하자 문이 열리고 의사당으로 진입했다. 12월 3일 밤 11시 44분이었다.

최홍기 소령은 수도방위사령부 작전처 작전 항공 장교다. 특전사령부 조필원 소령이 전화가 왔다.

“작전 항공 장교 최 소령입니다.”

“잘 지내지, 조 소령이다.”

“웬일이야?”

“수도방위사령관이 너에게 뭔 말 없었어?”

“응, 없었는데?”

“잠시 후에 내가 P-73 공역 비행 승인요청 공문 보낼 것인데, 거기에 비행 목적, 착륙지점 없이 보낼 거야. 이유는 대외비라서 병사들이 보거나 작전에 관련 없는 사람이 보면 안 되는 것이라서 공란으로 보내니, 비행 목적은 계엄선포, 착륙지점은 여의도 국회의사당이라고 수기로 써서 작전처장과 수방사령관 결재받고 바로 P-73 공역 풀어주라.”

“알았다.”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30분, 대통령은 자다가 봉창을 두드리듯 계엄 선포했다. 미리 특전사령부 조 소령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최 소령은 P-73 공역 승인 요청 공문에 빈칸으로 온 것에 수기로 써서 결재 도장을 찍고 차례로 결재받았다.

수신 : 수도방위사령관

발신 : 특전사령관

제목 : P-73 공역 비행 승인(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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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 일시 : 202412032200 ~202412032400

비행 목적 :

착륙 지점 :

최 소령이 수도방위사령관 결재받고 특전사령부로 답신을 보냈다. 작전명령 충성 8000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707 특임부대는 이천 특전사령부에서 헬기에 팀 단위로 나누어 탑승하고 여의도 국회의사당 마당에 23시에 정확히 착륙했다. 완전 무장 계엄군이 국회의사당을 봉쇄했다. 국회의장과 여당 야당 대표 등 우선 체포 대상 정치인 14명을 먼저 체포하여 방첩사령부로 인계했다. 수방사령관은 B1 문서고를 개방했다. 비상 발전기를 가동했다. 상전 전원도 ON으로 올렸다.

TV 생중계로 계엄을 선포한다는 대통령의 방송이 KBS, MBC, SBS, JTBC, YTN, 연합뉴스 TV, CNN, BBC, NHK 등이 합동으로 중계했다.

국회의장이 체포되어 계엄 해제 결의를 시도 못 하고 국회가 점령당해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인 조성복 대장이 포고문을 낭독했다.

계엄사령부 포고문(제1호)

자유대한민국 내부에 암약하고 있는 반국가세력의 대한민국 체제 전복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2024년 12월 3일 23:00부로 대한민국 전역에 다음 사항을 포고합니다.

1.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 활동을 금한다.

2.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전복을 기도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고, 가자뉴스, 여론조작, 허위 선동을 금한다.

3.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

4. 사회 혼란을 조장하는 파업, 태업, 집회 행위를 금한다.

5.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이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 시에는 계엄에 의해 처단한다.

(중간 생략)

이상의 포고령 위반자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계엄법 제9조에 의하여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 제14조에 의하여 처단한다.

2024. 12. 3(화) 계엄사령관 육군 대장 조 성 복

계엄은 성공했고, 국회의사당 밖에 계엄을 반대하는 시민이 응원 봉을 들고 에워쌌다. 계엄군은 육군헬기 부대를 동원해 시위군중에게 상공에서 최루탄을 살포했다. 헬기에서 지상으로 기총 소사하듯 최루탄을 발사했다. 국회의사당을 에워쌌던 시민들은 눈물범벅이 되었다. 많은 군중이 해산되었다.

1980년 12.12 군사 반란은 하나회를 주축으로 반란군은 실패하면 죽음이라고, 부당한 명령이지만 물불 안 가리고 수행했다. 경복궁 30 경비단에 모인 하나회 장군들과 삼각지 육군본부에 정식화 참모총장이 연행되고 참모차장이 지휘하는 내란 진압 세력과 싸움에서 군사 반란 세력이 이겼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세계적 금언을 깨고, 대한민국은 여의도 국회의원이 여소야대 시절에 성공한 군사 반란 12.12와 성공한 쿠데타 광주 5.18 민주화운동 진압에 대한 책임을 소급하여 처벌했다. 국회의사당에 전두 환과 노태우가 번쩍거리는 장군 계급장이 달린 정복이 아니라 죄수 복장으로 청문회에 불려 나왔다. 청문회 국회의원 질문과 답변을 생중계했다. 그렇게 5공 청문회로 대한민국은 세계사에 보기 드문 성공한 군사 반란, 성공한 쿠데타도 소급하여 처벌하는 무서운 나라가 되었다.

대통령은 기세등등하게 계엄사령관 조성복 대장의 보고를 받았다. 문제는 조성복 대장이 합동수사본부장 정율화 방첩 사령관 보고에 의하면 용산 대통령집무실 민정수석실을 압수수색 중에 금 거북이 30돈 자리 4개가 나왔다. 조심스럽게 대통령에게 민정수석실에서 금 거북이 4개 발견되었습니다. 보고하니, 민정수석을 하다 보면 금 거북이를 받을 수도 있지, 참 기자 놈들이 말이 많네?라고 한 것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조성복 대장은 조심스럽게 대통령님, 저는 더 계엄사령관을 할 수 없습니다. 사직서를 수리해 달라고 했다.

다음 날 조성복 대장은 전역했다. 후임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에 엄헌자 대장이 임명되었다. 파격이었다. 대한민국 최초 여성 4성 장군이었다. 엄 대장은 육군사관학교가 남녀공학이 되던 해 1호 입학생이다. 육군사관학교 수석으로 입학 수석으로 졸업했다. 소대장은 백골로 소문난 3사단 철책 소대장을 했다. 대위로 진급하고 중대장 시절에는 유명한 대로 받고 말로 퍼부었다는 5사단 531 GP를 담당했던 수색 중대장이다. 세월이 흘러 여군 최초 장군이 되었으면, 사단장을 마치고 3성 장군으로 교육사령관을 하는 중에 계엄이 발령되었다. 솔직히 계엄에서 교육사령관은 한직이라면 한직이라 유성에 유명한 피부과에서 피부가 가무잡잡한 것을 좀 희게 만들려고 갔다가 얼굴에 손도 못 대고 4성 장군 진급 신고와 전임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인계·인수했다. 엄헌자는 육군사관학교를 갔고, 조성복은 연세대학교 국문과를 갔다. 거기서 ROTC를 했다. 승승장구하여 4성 장군이 되었고, 계엄사령관을 하다가 민정수석실의 금 거북이를 발견하고, 양심에 선택의 곤란함으로 전역했다. 조성복은 후임자 엄헌자 대장에게 조용하지만 엄숙한 어투로 물었다.

“헌자야, 감당하겠어?”

“뭔 감당?”

“금 거북이 4개가 문제가 아니야, 아직 자세한 것은 합동 수사본부에서 수사를 마쳐야 알겠지만, 민정수석이 비자금 800억 원을 조성했다고 방송인 김허준이 나팔 불고, 역시 방송인 장미선 기자가 영부인이 경복궁 어좌에 앉아 사진 찍은 것을 공개하겠다고 예고편을 방송했다. 더구나 이맹수 기자와 정찬수 PD는 양평 공흥 지역 개발에 양평군이 충은 산업개발에 편리를 봐주었다고 난리야. 충은 산업개발이 이름은 임충식의 ‘충’ 자와 박은순의 ‘은’ 자를 한자씩 모아 ‘충은 사업개발’이라고 했단다.”

“어떻게 하지? 대장 진급과 계엄사령관 보직을 받고 바로 사표 내면 세상 사람들이 다 욕할 것이고, 그런 항간에 흘러 다니는 소리를 계엄 언론통제로 막으면 풍선효과로 다른 곳에서 터질 것이고?”

“좋은 생각이 있는데, 계엄사령부를 네가 혁명사령부로 바꾸고 혁명위원회 간판을 용산 집무실 말고 삼청동 옛날 국보위 자리에 걸고, 혁명으로 대통령과 영부인, 건망 법사, 만공 이병호, 임충식, 박은순, 임진우, 임진한 등을 다 잡아드려서 혁명재판소에 넘겨라. 은자 너는 대통령 하지 말고 새로운 헌법으로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출까지만 관리하고 군 본연의 자세로 돌아간다면 1961년 5.16에 박정희가 이루려던 소박한 꿈을 엄은자 대장이 대신 이루어주었다고 온천지 언론이 칭찬할 거다.”인수인계를 받고 조성복 대장은 계엄사령관실을 떠났다. 내일 있을 전역식 준비에 들어갔다. 엄 대장은 합동수사본부장을 불렀다.

“충성! 합동 수사본부장입 나다.”

“민정수석실에서 금 거북이가 나온 것이 사실이오?”

“예, 금 거북이도 금 거북이지만 비자금 장부가 나왔습니다.”

“금액은?”

“정확한 수사를 마쳐봐야 알겠지만 500억 원 정도입니다.”

“그 돈을 누가 냈어?”

“재계 서열 1위부터 29위까지입니다.”

“수사 부담되지요?”

“계엄으로 하면 대통령을 수수할 수 없습니다. 은밀하게 혁명사령부로 간판을 바꾸고 한시적으로 혁명적 조치를 하고 군으로 원대 복귀하시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알았습니다. 혁명사령부 간판이 걸리기 전에는 비밀입니다.”

“예, 역시 조성복 장군님보다, 엄헌자 장군님에 강단이 있으십니다.”

“성복이 그렇게 물러터진 남자가 어떻게 장군이 되었나 모르겠어?”

대한민국 현대사는 민주주의가 좀 될 만하면 군부의 개입으로 무산되고, 전국비상계엄과 해제의 연속이었다. 1952년 전쟁으로 정부가 부산으로 피난 간 상황에서도 이승만과 원용덕의 친위쿠데타가 발생했다. 1960년 4. 19 혁명으로 나라가 민주화되나 싶더니 박정희가 5.16 군사쿠데타를 하고는 학생들에게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5.16을 혁명이라고 교과서에 반영하고 가르쳤다. 그런 교육과 하나회라는 끈끈한 사조직이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가 독재자 박정희를 시해하고 1980년 ‘서울의 봄’을 맞이할 듯하였으나 12.12 군사 반란으로 무산되었다. 계엄은 국가 위기 상황을 타개할 목적으로 발령되었으나 국가폭력을 정당화하는 나쁜 무기였다.

엄헌자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 난국을 어떻게 해결할까? 엄 장군은 군대서 자기가 진급에 누락되거나 부대에 나쁜 일이 생기면 난곡우체국 사거리 푸른 한의원에 갔다. 한의원에서 보약 지어먹는 것은 기본이고 인생사 상담했다. D 초등학교 동창인 푸른 한의원 원장은 별명이 초등학생 때부터 관악산 산신령이었다. 머리가 초등학생 시절부터 흰머리가 반이 넘더니 중학생이 되어서는 올백이 되었다. 한의사라 환자치료를 기본적으로 잘하고, 정신의학 공부도 많이 해서 심리상담을 잘해주었다.

엄 대장은 푸른 한의원에 전화했다. 포근한 목소리가 들렸다.

“푸른 한원입니다.”

“원장님, 엄헌자입니다. 오늘 저녁 약속 있나요?”

“아이고, 약속 있어도 계엄 사령관님이 부르시면 달려가야지요?”

“계엄사령관이 되니 온천지 가는 곳에 다 사진기자가 따라붙어서 그러는데, 한의원 간호사들 다 퇴근하고 난 시간에 한의원으로 음식 배달시켜서 조성복, 정율화, 원장님과 넷이 식사하면서 집단지성을 빌릴 수 있나 해서요?”

“뭐, 푸른 한의원에 혁명사령부 간판이라도 달려고?”

“역시, 관악산 산신령이십니다. 어떻게 내 몸속에 들어온 것처럼 말씀하십니까?

그럼 오늘 7시 30분에 한의원으로 가겠습니다.”

1979년 12.12 군사 반란은 잘못된 명령이라도 상관이 명령하면 따랐다. 2024년 12월 3일 계엄 명령은 대통령 명령이더라도 국방부 장관, 계엄사령관, 방첩사령관, 특전사령관, 수방사령관 등 장군들만 명령을 들었고, 대령 이하 이병까지는 그 명령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명령이고 정당한 명령인가를 각자가 생각했다.

난곡우체국 사거리 허름한 건물 2층 푸른 한의원 좁은 복도를 올라가면서 운전병과 전속부관은 옆 건물 아래 ‘양자강’ 중국집에서 알아서 시켜 먹으라고 돈을 주었다. 정확히 7시 30분에 주문한 배달 음식이 오고 인원도 다 모였다.

김 대장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솔직히 계엄사령관이라 대통령을 내란 세력으로부터 보호하고 헌법을 수호해야 하는데, 정율화 합동수사단장이 보고한 것만으로도 민정수석 가장 깨끗해야 할 곳에서 금두꺼비를 받고, 수사하려고 해도 수사 방해 세력이 많아서 진행을 못 한다고 하니, 관악산 산신령님 지혜 좀 빌립시다.”

“나도 합동수사본부가 수사하면서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겠구나? 생각했는데, 이 난국을 타개하는 방법은 혁명밖에 없다고 생각해.”

“1960년 4.19 혁명은 5.16 쿠데타로 실패했고, 1979년 10. 26 탕! 탕! 혁명은 12.12 군사 반란으로 좌절되었고, 애국가 가사에 하느님이 보우하사라는데, 하나도 이 나라는 하느님은 없고 하나님만 있는 나라 같아.”

“지금까지 쿠데타만 있고, 혁명이 없었는데, 이번에 제대로 준비해 혁명 한 번 하시지요? 엄 계엄사령관님? 혁명을 하려고 해도 엄두가 안 나요?”

“일단 적폐 청산은 언론에 매일 보도되는 양평 고속도로 일명 바나나 고속도로부터 파헤치고, 민정수석 금두꺼비와 대기업이 비자금 제공했고, 민정수석이 여야 국회의원, 언론사 주필을 뇌물로 대통령에게 양평 처가 쪽에 우호적인 기사를 작성한 놈들을 잡아들여야 합니다.”

“영부인이 경복궁에서 조선 시대 임금님이 앉던 어좌에 앉았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그것뿐이야 주가조작도 주가 조작한 일당에게 이익금 40%을 주었다. 국민은 1980년대도 아니고, 계엄사령부를 혁명사령부로 전환하면 광주 5.18 민주화운동 같은 저항이 일지 않을까? 걱정되어 마음은 당장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싶은데, 못하고 있어.”

“12월 12일 계엄사령부를 혁명사령부로 전환한다고 발표하고, 모든 정치활동을 금한다. 언론도 혁명사령부 언론대책반 검열한다고 하고, 언론대책반장은 시인 백윤석을 시키면 잘할 것이야. 백윤석 보다 김순진이 더 잘할걸?”

“아니야 김경수가 우리 초등학교 나오고 아버지가 외교관이라 일본으로 가서 일본 문화에 동화된 점은 있지만 일본 문화 특히 일본 주술에 잘 아니까, 강남 점집에서 압수한 아마테라스 그림과 거기 심취한 영부인에 대해 일반인이 체포해도 공감할 수 있게 먼저 신문에 게재하도록 하면 문제없을 것이야.”

“그래, 그럼 일단 12월 12일 0시를 기하여 계엄사령부를 혁명사령부로 전환한다고 하고 혁명위원은 누굴 뽑지?”

그 명단은 조성복 예비역 대장이 작성해 준다고 말했다. 혁명위원 짤 거면 조 장군이 계엄사령관 시절 하지 왜 사표 내서 나를 힘들에 하는 거야? 나, 솔직히 계엄사령관으로 있을 때는 전혀 생각이 없었는데, 막상 전역 지원서 던지고 나니 아차, 이런 생각을 왜 못했지? D 초등학교 출신으로만 혁명사령부를 구성하면 출신 고등학교가 다 다르니까 국민이 멍청하게 ‘충암파’라니, ‘용현파’라는 소리 들어가며 일도 참 멍청하게 하는데, 우리 D 초등학교 출신이고, 현역 장군이거나 예비역 장군 중에 기본 인격 갖추어진 인원과 서울법대 출신 중에 판사, 검사로 또는 변호사로 평판 좋은 사람으로 혁명위원을 구성하면 일단 군인 장군 출신으로 혁명위원회 구성한 것보다 거부감이 덜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회를 정지시키면 국회를 대체하는 입법기관과 사법부 정지시키고 사법부를 대체하는 혁명재판소도 있어야지? 입법기관은 국회의원 5 선하고 S 중․고등학교 재단 이사장을 하는 김인환에게 부탁하고 혁명이 완수되고 군인들 원복 때, 영등포구 갑 국회의원 후보 보장으로 하고, 당선하면 6선으로 국회의장 시키면 잘할 것이야. 사법기관은 현재 정율화 합동수사본부장이 짜라고 했다. 그렇게 푸른 한의원 만찬을 마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푸른 한의원에서 계엄사령부를 혁명사령부로 간판을 변경하는 협조 회의는 기막히게 비밀이 준수되었다.

12월 11일 밤 12시, 12월 12일 0시에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계엄사령부를 혁명사령부로 변경하는 방송을 했다. 오늘 밤 12시 계엄사령관 시국 담화 발표라고 모든 방송에 자막을 내보냈다. 사회는 구독자 600만 명을 자랑하는 ‘겸손은 아주 쉽다’를 진행하는 방송인 김허준이 맡았다. 머리는 산발이고 수염은 거의 임꺽정 수준인 그가 국내와 26개의 방송 카메라 앞에 섰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엄헌자 계엄사령관 특별담화 진행을 맡은 김허준입니다. 그럼, 엄헌자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을 앞으로 모시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사전 공지는 계엄사령관 특별담화로 하였지만 현 시간 12월 12일 0시를 기하여 전국계엄이 선포된 상황에서 계엄사령부를 혁명사령부로 전환합니다. 정직한 공지를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마이크 옆을 나와 90도로 허리 굽혀 인사)

그동안 전임 계엄사령관이신 조성복 육군 대장이 계엄사령관을 하면서 합동수사본부가 민정수석실에서 발견된 금두꺼비를 수사하려고 했으나 대통령이 반대하여 수사를 못했습니다. 저 역시 계엄사령관을 맡고 금두꺼비 수사를 보고했으나 재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조성복 대장은 사임했지만 저는 임명받은 잉크도 마르기 전에 사임하면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되어 혁명하기로 했습니다. 계엄사령부 상태로 죄질이 불량한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결재받아 일을 하다가는 영월 엄 씨, 조선시대 엄흥도 어르신께 저승에 가서 뵐 면목이 없을 것 같아 계엄사령부를 혁명사령부로 변경했습니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처럼 민정 이양을 약속하고 군복을 벗고 넥타이를 착용하고 대통령을 18년씩이나 하는 양아치 짓은 안 할 것입니다.

합동수사본부에서 한남동 대통령관저에 수사관을 보내 대통령과 영부인을 체포했고, 관저에서 키우던 개와 고양이는 과천동물원으로 보내 사육사가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서울 양평 고속도로를 바나나로 휘게 만들었던 전임 국토교통부장관과 4급 7급 9급 공무원과 용역업체 사장과 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가담자와 공흥지구 부정 편법 관련자 전원을 합동수사본부가 전원 구속했습니다.

국민 여러분!

이번 군인들이 계엄사령부를 혁명사령부로 전환한 것은 이 나라 역사에 4.19 혁명 후에는 5.16 쿠데타가 1979년 10. 26 탕! 탕! 혁명은 12.12 군사 반란으로 민주화가 될 뻔했으나 실패한 경험을 교훈 삼아 우리 군이 이번 계엄사령부를 혁명사령부로 개칭한 이후의 일정에 대해서는 혁명사령부 대변인 허대은 정훈병과 대령이 발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마치고 허대은 육군 대령이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십니까? 혁명사령부 대변인을 맡은 허대은 대령입니다. 2024년 12월 12일 0시를 기해 혁명사령부가 출범했습니다. 12월 12일부터 2025년 1월 31일까지 현재 대통령과 처가와 관련된 수사를 완료하겠습니다. 2월 1일부터 3월 31일 기간에 각종 부정 비리 국민들 민원을 접수 처리하겠습니다. 4월 1일부터 5월 31일은 새로운 헌법을 만들겠습니다. 현재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시기가 달라 항상 정권 초기와 정권 말기의 불협화음을 없애기 위해 새 헌법은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임기를 4년으로 통일하겠습니다. 6월은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선거를 동시에 하겠습니다. 6월 10일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마치면 혁명사령부에 파견 나온 모든 군인은 6월 11일 개표방송이 끝나면 12일 0시를 기해 원대 복귀하겠습니다.

다음은 혁명사령부 각 위원과, 정지된 국회를 대신할 혁명 입법 위원 발표는 김인환 S 중․고등학교 재단이사장 김인환이 하고, 정지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를 대신할 혁명재판소 재판관 명단은 혁명사령부 합동수사단장이 정율화 소장이 발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인환 전 의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지금부터 혁명 입법위원을 발표하겠습니다. 발표는 직책 생략하고 이름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계흥석, 구자흥, 구본무, 김건기,.... 사공 춘추 이상 52명입니다. 계엄사령부를 혁명사령부로 전환시켜 정지된 여의도 국회의원 300명의 활동을 중지시키고, 혁명 입법위원들이 입법업무를 하실 것입니다.

이상 입법위원 발표를 마치고 다음 혁명재판소 재판관을 정율화 합동수사단장이 하겠습니다.”정율화 합동수사단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십니까? 혁명사령부 합동수사단장 육군 소장 정율화입니다. 계엄사령부에서 민정수석 수사 중 발견된 금 두꺼비를 수사 방해한 대통령을 구속하기 위해 계엄군으로는 할 수 없어서 혁명사령부로 전환했고, 민간과 군인 모든 수사를 총괄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대법원에서 판사들이 부적절하게 고급 살롱에서 향응을 접대받고 판결을 피해자에게 오히려 가혹한 판결 내리는 등 국민들이 사법부에 대한 불만과 원한이 하늘을 찌르기에 12월 12일 0시를 기하여 1심 재판부터 3심 재판 모두를 정지시키고 다음 발표하는 혁명재판관들이 1심, 2심을 나누어 실시할 것입니다. 혁명 기간은 3심 재판은 없습니다.

혁명사령부가 새로운 헌법에 따라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선출하고 나면 소정의 공모를 통해 대법원을 꾸리기 전까지는 아래 발표하는 혁명재판관이 1심과 2심을 나누어할 것입니다. 혁명재판관 명단입니다.

먼저 1심 재판관입니다. 강두연, 강영훈, 권혁문, 금동해, 김경조, 남효주, 최철호, 함홍근.... 이상 40명입니다.

다음 2심 재판관입니다. 강석기, 강근수, 강미정, 나맹우, 남맹우, 이윤구, 박돈곤, 박윤수, 주인현, 성석모, 차인식, 함 웅, 함 진, 함 달.이상 24명입니다.”

혁명 사령관 엄 대장은 2024년 12월 13일부터 2025년 4월 30일까지 위원회는 정치 일정을 밝혔다. 현재 수사 중인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외압, 서울 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등 국정을 발목 잡고 있는 사건과 여의도 국회의원 300명에 대해 전수조사로 공천이나 선거에 부정이 발견된 국회의원은 모두 혁명재판소에 기소한다고 했다. 아울러 2025년 5.1~6.30 사이에 입법위원이 제9공화국 헌법을 만들고 그 헌법에 따라 대통령과 국회의원 동시 선거를 7월 17일 전국 동시 선거를 한다고 밝혔다. 현재의 헌법과 각종 선거법은 대통령의 임기와 국회의원 임기의 차이로 매번 선거마다 집권 초기는 각종 임명직이 버티기를 하고, 집권 후기는 레임덕이 빨리 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혁명사령부는 오차 없이 최초 발표한 그대로 정치 일정을 준수했다. 2025년 7월 17일 대통령선거와 전국 국회의원 선거를 했다. 7월 18일 개표방송이 끝났다. 혁명사령부는 해체되었다. 혁명사령부 파견되었던 모든 군인은 원대 복귀했다.

D 초등학교 19회 동창회장 서원석에게 문자가 왔다.

<알림>

D 초등학교 19회 엄헌자(嚴憲子) 육군 대장 전역식에 초대합니다.

-일시 : 2025년 12월 12(금), 10:00

-장소 : 계룡대 연병장

-내용 : 참석자는 금일 17:00까지 동창회 밴드에 참석 댓글 달기 바랍니다.

참석인원 25 명 이상이면 관광버스(관악산관광)로 이동할 것입니다.

서울 D 초등학교 19회 동창회장 서 원 석 드림

나, 함 소령은 군대서 열쇠부대 정보과장 시절 DMZ 수색 중대 동반 수색 정찰 중에 북한 땅에서 폭우로 떠내려 온 목함 지뢰가 터져 수도통합병원에서 18개월 치료받고 전역했다. 잠시 고민했다. 초등학교 시절 송충이 10마리도 무서워 못 잡은 그녀가 대통령과 영부인은 물론 국회의원, 부정비리에 연루된 대법원 판사까지 혁명재판소에 넘겼다. 공정하게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관리해 주고 군인으로 돌아가 전역한다는 것이 믿을 수 없었다. 계급이 높으면 연금도 많으나 예비역 소령연금으로 빠듯하게 살아가고 있다. 서원석 D 초등학교 동기회장은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회장님, 헌자 전역식에 몇 명이나 가요?”

“헌자라니? 예비역 소령이 예비역 대장에게 대장님 해야 하는 거 아니야?”

“회장님, 제가 아무리 지방대학 출신이지만 국어교육과 전공이거든, 재향군인회장 초대장이면 엄헌자 대장님이 맞는데, D 초등학교 동창회장 초대장이라 헌자가 맞습니다. 우리 국어에 ‘격(格)’과 ‘장(場)’이라는 것이 있는데, 천자문도 모르고 돈만 많거나, 직급만 높은 인간들이 격과 장을 모르고 설치거든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제가 송충이 10마리 잡아준 수고비를 헌자 대장에게 받아내야 합니다.”

“예비역 함 소령 고맙다. 네가 전화 와서 딱 25명 되었다. 운전하는 박호영이 포함하면 D 초등학교 26명이 축하 사절로 간다.”

관악산관광은 초등학교 동창 박호영이 1인 사장으로 관광 모집 영업 운전을 혼자 하는 회사다. 출발은 사당역 13번 출구에서 했다. 버스 안은 나이 60 넘은 남녀가 야, 자 반말이었다. 서 회장이 인원 점검을 하고 25명 이상 출발! 외쳤다.

계룡대 육군본부 연병장은 군악대 연주가 흘러나오고 의장대, 군악대 뒤로 전역식 행사 병력이 도열했다. 초등학교 동창 참석자 명단이 미리 알려진 상태라 보안 조치는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서원석 D 초등회장은 엄헌자 대장에게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전역을 축하드린다고 덕담을 나누었다. 헌자는 다리를 절뚝거리는 나에게 달려와 부축해 주었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초등학교 시절 헌자는 이름이 헌자라 동생은 ‘새자’냐? 놀림을 받았다. 양주란은 기둥 주(柱)를 동직원이 계(桂)로 잘못 올려 ‘양계란’이 되었다. 삶은 계란, 찐계란 놀림을 받아 학교를 퇴교하고 호적을 양주란으로 바로잡은 후에 검정고시로 대학에 갔다. 초등학교 때는 헌자, 새자 놀렸는데, 중학생이 되어 한문을 배우고 헌자 이름이 ‘헌자’, ‘새자’가 놀림감이 아니고 정말 귀중한 헌자(憲子)라는 것을 알았다. 헌자 아버지 이미 고인이 되신 엄태흥(嚴台興)이 나의 S 중학교 은사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설날에 세배를 가서 알게 되었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전역을 축하한다!”

“예비역 함 소령, 송충이! 고마웠다.”

“그걸 기억해?”

“그럼, 그 징그러운 송충이 10마리 잡지 못하면 집에 못 가는데, 번호가 77번이라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

“송충이 10마리도 무서워 못 잡던 은자 어린이가 어른이 되니 인간 송충이 105 명을 잡았더군?”

“ 무슨 105명이야, 말 똑바로 해 300명이지?”

옆에 있던 관악산 산신령 푸른 한의원 원장과 방첩사령관 정율화가 300명은 여의도 송충이이고, 서초 송충이까지 합치면 400명도 넘는다고 했다. 은자는 D 초등학교를 빛낸 인물이다. 아무도 이루지 못한 혁명 사령관 육군 대장에서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와 존경받는 유일한 지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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