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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직구 5.18

09. 전두환과 박경석

by 함문평

전두환과 박경석은 1964년 진해 육군대학에서 정규과정 같은 반에서 공부했다.


육군대학이 계룡대 유성에 이사 왔지만 1964년 진해육군대학의 정규과정은 정말 엄선된 인원들이 공부하였다.


현재는 전방부대에서 육군대학 입교할 장교가 있으면 미리 보내서 인계인수를 해주고 육 대 입교를 한다. 그 시절은 장교가 부족해 연기시키거나 안 보내는 경우도 있고 단기과정 입교 심지어 통신과정도 있었다.


영관 장교의 집체 교육이 1년이라면 학과 과목이나 시간에 있어서 일반 대학교의 석사과정 2년 보다 공부량이 많은 편이었다.


1963년 우리나라 전체 영관 장교가 부족한 상태에서도 1년 과정의 정규 육군 대학 교육생을 엄선했다.


현재의 근무 성적에 소급하여 초등군사반 고등군사반 성적과 자대에서의 근무 성적 표창까지 점검하여 선발했다.


하필이면 전두환과 박경석은 같은 반에 편성되었다.


박경석은 그 학급의 급장 격인 대표 학생장교가 되었다. 그때 계급으로도 박경석은 중령이고 전두환은 소령이었다.


나이는 전두환이 두 살 위였다.


박경석은 육사 선배임을 내세웠으나 전두환은 졸업도 못하고 임관한 선배가 무슨 선배냐고 무시했다.


박경석이 임관도 선배고 기수도 선배라 반장을 했다.


육군방첩부대장이 박영석 장군에서 윤필용 장군으로 교체된 뉴스에 정치군인이 방첩대를 접수했다고 하자 전두환이 박경석에게 대들었다.


박영석 전임 방첩대장은 박경석의 형님이었다.


세월이 지나 전두환이 장군이 되었다.

별 하나 달고 삼성장군 사성장군 부대에 방문하면 골 때리는 일이 별 셋 별 넷이 헬기장까지 별 하나 마중을 나왔다.


이유는 박정희 대통령이 총애한다고였다.


박정희 사후 12.12군사반란과 5.18 광주사태를 평정했다고 거기 가담한 장교들에게 훈장을 수여한다고 했다.


박경석 준장이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차장 직위라 공적조서 책임였다. 훈장이라는 것은 적과 싸워 공적이 있는 사람에게 수여하는 것이다. 광주에서의 시위대가 시위한 것은 잘못이지만 적이 아니고 우리 국민의 일부다. 광주사태를 평정했다고 훈장을 주는 것은 정의의 길이 아닌 것이라고 이의를 제기했다.

그 일로 근복을 벗었다. 예비역 준장이 되었다.


후임이 와서 정호용 등에게 을지무공 훈장을 수여했는데 여의도 국회가 여소야대 시절에 그 훈장들이 박탈되었다.


그 무더기 훈장 수여 훈장 박탈에 굉주국군통합병원장이 포함되었다.


허장환 증언에 의하면 그 병원에서 시체 화장을 많이 해서라고 한다.


이것도 진상조사 똑바로 하고 성공한 군사반란 성공한 쿠데타도 역사가 재심한다라는 것이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교육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2023년에는 <정의와 불의>라는 에세이집을 발행했다. 인생을 살면서 고비고비마다 선택의 어려움을 겪는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선택의 어려움이 있을 때 정의의 길을 갈 것인가?

불의의 길을 갈 것인가?

기준이 될 수 있는 여러 경험담을 들려준다.


여기서 소설집 <백서> 날개에 실린 이야기를 소개한다.


현재는 부산 해운대와 송정이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신시가지지만 1991년 그곳은 200만 평의 탄약창고가 있던 곳이다.


직책이 경비중대장이었다. 걸어서는 도저히 하루에 순찰을 돌 수 없는 울타리라 순찰용 오토바이가 중대마다 한 대씩 있었다.


200만 평 전체에 경보기를 설치하기 전에 400미터 구간에 시험 설치하고 2개월의 평가가 주어졌다.


사람이 지나가도 삑! 개나 고양이나 지나가도 삑! 고라니가 지나가도 삑! 특전사 독수리들이 스티로폼을 자기 몸만큼 오려서 앞을 가리고 침투했다.


특전사독수리가 우리 경비구역 탄약고 수십 동에 폭파 스티커를 부착해고 그해 독수리 훈련에 경계 실패부대가 되었다.


그런 모든 정황을 보고서에 담아 <군납 불가> 보고서를 올렸다.


이미 고인이 된 정작처장에게 군홧발로 채이고 보고서를 <군납 적격> 수정 보고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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