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우(百牛) (7)

by 함문평

1980년 5.18 사태는 정부에서 발표한 것처럼 김대중의 사주를 받은 불순분자들이 폭동을 일으킨 것일까? 아니면 지만원의 주장대로 북한군 광수 600명이 내려온 것일까? 아니면 김 반장이 쓴 수기 <무등산은 말이 없다>에 쓴 것처럼 홍석철 대령이 광주 시내에 은거하면서 편의대를 기획 조정 통제 했고 특전사는 광주 시민과 학생이 분노하도록 과잉진압한 것이 사실일까?


1979년 12월 12일 군사반란부터 5.18 광주사태와 27일 진압과 동시에 국보위 설치 안 건의 및 재가 8월 16일 최규하 하야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이 장충체육관에 모여 99.99999%의 찬성을 얻는 김일성 수령의 100%에 0.000001% 부족한 대통령 선출은 세계에 코리아는 사우스나 노스나 단일민족임을 세계만방에 보여주었다.


1983년 3월 18일 고려대 경제과 4학년 다니다 서 중령이 대령이 되어 전두환에게 보고한 녹화사업 대상이던 김두한이 군대서 죽었다. 군복 주머니에서 대학노트 한 장을 뜯어 쓴 유서라는 시 같은 유서를 발견했다.


유 서


기다림밖엔

그 무엇도 남김 없는 세월이여

끝없는 끝들이여

끝없는 가없는 모습도 없는

수렁 깊이 두발을 묻고 하늘이여 하늘이여

외쳐 부르는


(이하생략)


남김 없는 죽음에서 일어서는

외침의 칼날을 기다림밖엔

끝없는 끝들이여


김 반장은 이 글을 읽고 또 읽어 암기할 정도였다. 눈물을 억지로 참았다. 김 반장은 이 죽음은 자살을 가장한 타살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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