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태클을 걸지 마
내 인생 태클을 걸지 마
ㅎ대중가요 중에 내 인생에 태클을 걸지 마하는 노래가 있었다.
내 인생에 태클을 건 사람이 박정희, 김재규, 전두환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강릉 함 씨 우리 할아버지에게 나는 장손이라서 횡성의 땅이며 산이면 소 30마리까지 팔아서라도 장손은 경기고등학교를 보내야 한다고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로 위장 전학을 시켰다.
그냥은 서울시 인구 억제 정책으로 받아 줄 수 없기에 안흥면장에게 2만 원 대방 2동 동장에게 3만 원의 봉투를 주고 성공했다.
2~3만 원 담뱃값으로 여기면 안 된다. 1972년 3년 시기의 2만 원은 9급 공무원 월급보다 많았다.
경기고 원서를 내려고 성남중 3학년을 찾아오신 할아버지 때문에 담임선생님은 이미 박지만 고교입시부터 서울은 뺑뺑이를 설명하느라 애를 먹었다.
고3시기에 10월 26일 김재규가 박 대통령을 시해해서 나는 울었다.
정말로 할아버지 할머니가 우시기에 장손이라 그냥 같이 울었다.
우느라 공부 못했는데 한 달쯤 지나서 전두환이 정승화 참모총장을 잡아들이느라 교통이 막혀 영문도 모르고 종로 2가 모 학원 특수반 수업을 마치고 오다가 서울역부터 버스가 갈 수 없어 걸어서 한강다리 건너 흑석동에 왔다.
다리가 아파 공부도 못하고 잤다.
대학 떨어진 것은 나의 실력이 부족해서라고 치자 만약에 서울시 평준화가 안되었다면 장손의 인생 알 수 없는 노릇이고 12.12와 10.26 없었다면 얼마나 더 좋은 대학을 졸업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화가 나서 내 인생 태클건 자를 등장인물로 소설을 써서 복수할 거다라고 재수 시절에 결심했다.
대학입학하자 데모의 연속이라 교수님들은 휴강을 하고 중간고사 대신 리포터로 시험을 대체한다고 했다.
부지런히 리포트 제출을 하고 남는 시간에 소설을 썼다. 나름 잘 썼다고 신문사 신춘문예에 보냈으나 뽑아준 곳은 한 곳도 없었다.
10.26을 다룬 의인 12.12군사반란을 다룬 기미정란 신군부 등장과 국보위 백서를 다룬 백서 등을 써서 온천지 신춘문예공모하는 곳은 다 보냈으나 낙방이었다.
세윌이 40년 흐른 뒤 현대시선이라는 문학잡지사에서 부적으로 등단하고 책을 냈다.
요즘은 다른 소설가들의 최신 작품을 읽고 나의 새로운 소설 구상을 한다.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가 박정희를 시해했을 때는 곧 나라 망하는 거 아닌가 걱정했는데 반대로 김재규가 박정희를 시해 안 하고 유신이 더 길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더 끔찍이다.
1979년이 고3이라 유신반대 데모하지는 않았는데 대학생이 되어 선배 형 누나들이 왜 데모했나 공부를 했다.
공부해 보니 데모할 이유가 차고도 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