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아니 아편 장사를 해서 번돈의 1/3은 김 구 선생에게 군자금에 보태 쓰시라고 드리고 1/3은 항일빨치산 88 여단 김일성의 전령 전문섭을 통해 전달했다. 나머지 1/3로 만주서 먹고, 마시는 최소 경비를 남기고 연락책 김광수를 통해 횡성 아내 송혜령에게 전달했다. 모르는 사람들은 김일성에게 왜 군자금을 보냈냐? 고 할아버지에게 비난했지만 그 당시는 김구 선생이나 김일성이나 노선이 다르지만 일본 놈 패 죽이자는 목표는 같았기에 그 돈이 전혀 아까운 돈이 아니라고 하셨다. 동아일보에 김일성이 보천보 습격 사건이라거나 백선엽의 간도특설대와 88 여단이 싸운 것이 사실이니까. 세월이 흘러 방정희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백선엽, 박정희 간도특설대의 친일을 숨기고 왜곡을 했지만 진실을 영원히 땅속에 묻을 수는 없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상상도 못 했을 때 덜컥 일본이 항복하고 만주와 조선땅에서 물러갔다. 아편 장사로 20대를 보낸 할아버지는 그 맛을 알기에 귀국해서 한동안 힘들어하셨다. 다른 일은 시시해서 못하겠더라고 손자에게만 털어놓으셨다. 더구나 이승만이나 박정희가 반공을 국시로 하고 때려잡자 공산당 정치구호에 겁이 나서 김구 선생에게 군자금 드린 것도 비밀로 하고 사시면서 장손자인 나에게 당신이 돌아가시고 30년이 되면 글을 쓰라고 하셨기에 지금 초안을 쓴다. 할아버지는 1994년 12월 14일 돌아가셨다. 그해 7월 8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일성 주석이 서거했는데 2024년 북쪽에서 대대적인 추모행하를 하듯이 나도 2024년 12월 14일 가경선생 추모문집에 이글 북 디자이너가 된 공주를 완성해 출판해야 한다.
지금도 마약으로 유명 연예인이나 재벌 3세들이 검찰에 잡혀간다. 검찰이나 경찰에 안 걸리거나 걸려도 빼줄 백이 있으면 가장 돈벌이 빠른 것이 마약장사다. 만주서 귀국하면서 아편을 팔아 전부 금으로 사서 횡성에 정착한 후에 금을 다 팔아 소를 사니 99마리가 되었다. 요새도 횡성 한우 99 마리면 부자인데 해방직후 할아버지는 횡성유지가 되었다. 국회의원 출마자들은 여당이고 야당이고 어르신만 믿는다고 해서 신민당이고 민주공화당이고 정치헌금을 균등하게 냈다.
할아버지는 4남 2녀를 두셨다. 아버지 제갈선호, 월남전 참전수훈자 제갈봉호, 큰고모 제갈봉순, 작은 고모 제갈영순, 막내작은아버지 제갈근호, 큰아버지 제갈천호는 공산주의 사상에 심취해 조선민주주의인민군 대죄로 노병이 되었다. 아버지가 둘째지만 장남노릇을 했다. 나 역시 자동으로 할아버지 장손이 되었다.
작은 여동생만 보면 눈물이 난다. 내가 장남이라 제갈상일이고 큰 여동생이 제갈미숙, 작은 여동생 제갈미정, 가운데 남동생 제갈상철, 막내가 제갈상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