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소 99마리를 팔아서라도 4수를 시키겠다고 하셨는데 앞 글에 ㄴ ㄱ ㅁ 들어갔듯이 전두환이 집권하면서 징집 나이를 줄여 82학번이 안 되면 군대를 가야 해서 전기 서울대는 아니고 만만하게 본 의과대학에 떨어져 후기는 의과대학 고집하다 떨어지면 군대 가는 것이 싫어 고등학교 이과반에서 수학귀신 별명이 무색하게 무심천 대학교 국어교육과를 갔다.
면접에 교수님이 왜 이과반이 문과로 왔냐기에 의과대고집하다 떨어지는 거 보단 국어교육과 안전하게 지원했다고 답변했다.
덧붙여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제가 이과지만 국어 너무너무 잘해서 문과반 국어 조태휘 선생님이 함문평은 7반에 있지 말고 문과반 8.9.10반 중 한 반에 와서 국어는 이렇게 공부하는 거야 시범을 보이라고 해서 제가 문과반 공공의 적이었습니다라고 했다.
정말 뒤늦게 나이 60에 작가가 되었지만 인연은 우리가 그때는 몰라서 그렇지 있다.
청록파 시인 박목월의 마지막 제자 시인이 전재수 시인인데, 이분은 시인이 되고 싶어 문과대를 가고 싶었으나 집안 형편상 집에서 학비 안 대고 전액 국가장학금으로 공부하는 공군사관학교에 가서 빠이롯드가 되었다.
전혀 시인과 안 어울릴 것 같은 조종사 잘했으나 공사 출신이라 대령까지는 갔으나 장군은 또 다른 선발 뭐가 있어 다음 기회를 접고 사립학교 국어교사가 되었다.
물론 국어교사 지원은 이미 오래전에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 추천으로 시인이 된 자신감이 있으니까 지원했고, 당당하게 국어 수업은 교장, 교감 어느 누구도 내 맘대로 수업할 테니 건들지 마시라 고였다.
대령에서 장군 진급이 안되자 전역을 하고 우리 S중학교 국어를 가르쳤다.
봄비가 내리면
야! 교과서 덮어!
하시고는 그냥 58명에게 유리창 밖에 내리는 봄비를 그냥 구경하고 숙제 시는 원고지 3매 이하 산문은 원고지 10매 이하로 제출하게 했다.
우리 1학년 560명 중에 559명이 원고지 3매 냈는데 나 혼자 10매를 제출했다.
그 10매를 국어시간에 전 반을 수업 들어가 낭독하시는 바람에 공공의 적이 되었다.
요새 중학교 국어선생님이 전재수 시인처럼 수업했다가는 바로 학부모들이 들고일어나겠지만 하여튼 나는 체험학습, 인성교육 도입 훨씬 이전 1974년 그런 수업울 받았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제갈미숙은 원주여고를 졸업했고 미정이는 강릉여고에 합격했는데,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강림서 강릉이 얼마나 먼데, 학비도 학비지만 생활비 때문에 보낼 수 없다고 등록을 포기하고 가까운 횡성여고를 보냈다.
횡성여고는 대환영이었다. 강원도 여고 중에서 최상급에 속하는 강릉여고 합격성이 횡성여고에 입학한다니까 개교 이후 서울대 한 명도 못 보냈는데, 잘 지도하면 서울대 갈 수 있겠다는 희망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인생은 알 수 없는 것, 인생은 미완성 쓰다만 편지라고 여고 1학년때 <국군 장병 아저씨께>하는 위문편지를 보냈는데 답장이 학교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