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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호박

by 함문평

늙은 호박과 호박죽이 그립다

어려서 할아버지가 장손이라고 귀엽게 봐주신 것도 있지만 대머리가 격세 유전인 집안이라 할아버지 6형제는 모두 대머리였다. 반대로 아버지 3형제는 대머리가 없다. 나와 내 동생이 대머리고 막내는 대머리가 아니었다.


할아버지와 일단 대머리가 동급인데 식성까지 호박죽을 좋아했다.


지금은 고속버스터미널이 반포 세화여고 근처에 있지 나의 학생시절 1970년대는 동대문에 고속버스터미널이 있었다.


아마 이 정도였을 것이다. 중학교 3학년 고입연합고사는 마쳤고 학교 수업일수 때문에 등교는 했지만 이미 고입연합고사 합격선 이상 돌파한 학생은 학교수업은 여벌이고 명문학원의 고입 예비반에 우수반에 들어가 국, 영, 수에 대해 선행학습을 한다고 학원 종합반 수강표를 담임에게 제출하면 오전 수업만 하고 오후는 학원에 가는 것이 보편화되었던 시절이다.


주인집 아주머니가 시골에서 전화가 왔는데 이번 주 토요일에 쌀과 반찬을 가지고 시울 어머니가 올라올 예정이니 동대문 고속버스 터미널에 오후 3시에 마중 나오라고 했다.


금요일 수업을 마치고 학원 담임선생에게 내일은 시골서 어머니가 짐을 많이 가지고 와서 마중 나가느라 결석한다고 보고를 했다.


어머니는 쌀 한말에 고춧가루, 참기름, 들기름, 늙은 호박, 김장김치를 가지고 오셨다.


동대문에서 대방역까지 전철로 대방역에서 집까지는 택시 타자고 했더니 어머니는 택시비로 라면을 사면 온 식구가 몇 끼를 먹을 돈이라고 머리에 이고 보따리를 들고 걸었다. 난 늙은 호박을 들고 어머니 옆에서 걸었다.


지금도 서울지방병무청이 그 자리에 있지만 거기서 우리 학교 진입로는 언덕이었다. 늙은 호박을 땀을 흘리며 들고 가다 길바닥에 던져버렸다. 호박은 박살이 났고 어머니는 힘들면 쉬어가자고 말을 하지 왜 죄 없는 호박을 내동댕이치냐고 하셨다.


엄마, 이거 호박 들고 올 노동력이면 대방시장서 사 먹는 것이 싸다고 했다. 어머니는 시장에서 사먹는 것과 우리가 횡성서 재배한 호박이 같니? 하시면서 깨진 호박을 보자기에 디 주워 담아 집에 가지고 가서 잘 씻어 호박죽을 만들었다.


벌써 12월 올해도 다 가고 마지막 달럭을 보니 어머니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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